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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神曲



 Inferno (지옥 편)


         by
Dante Alighieri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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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

단테 Dante:
        이 작품의 작가 겸 주인공. 자신이 쓴 시 속에 등장하여 지옥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인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을 가엾게 여기나, 결국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버리는 인물.

버질 Virgil:
        단테의 지옥 여행 안내자. 기원전 1세기 이태리 북부 출신의 시인. Aeneid의 저자. 예수 전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의 영혼은 지옥에 머물게 됨.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

베아트리체 Beatrice:
         단테의 지옥 여행을 돕는, 천국에서 축복받는 영혼. 단테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실존 인물. 단테가 젊은 시절 사랑한 여인. 신곡에서 보여주는 단테의 사후 세계 여행은 베아트리체를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음. 영적 사랑을 나타내는 인물.

카론 Char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케론강의 뱃사공. 영혼들을 강 건너 지옥으로 도하 시키는 늙은 뱃사공.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Paolo and Francesca da Rimini:
        제2지옥에서 고통받는 한 쌍의 연인. 란스롯(Lancelot: 아서 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용사. 아서 왕의 측근으로 원탁의 기사 중 한 인물)과 기니비어(Guinevere: 아서 왕의 왕비. 고귀하고 도덕적이나 또한 악하고 기회주의적인 반역자로 기록되는 인물. 아서 왕의 이야기에서는 그녀의 간통을 이야기하고 있음)를 읽고 불륜에 빠지는 남녀.

루시퍼 Lucifer:
        얼굴이 세 개인 지옥의 왕자로 Dis라고도 불림. 제9지옥에 거주. 그의 거대한 몸통은 땅의 중심부를 관통하여 서 있음. 말을 하지 않으며, 세 개의 입은 각각 예수의 배반자 유다, 줄리어스 시저를 배신한 로마 원로원 의원 카시우스, 시저 살해자 블루투스를 씹고 있음.

미노스 Minos:
        그리스 신화 속의 크레테 왕. 제2지옥 문 앞에서 죄를 지은 영혼들의 처벌을 결정하는 괴수. 죄의 자백을 듣고, 자신의 긴 꼬리를 감음. 감는 횟수에 따라 영혼은 그에 해당하는 지옥으로 감.

교황 Pope Boniface VIII;
        교황 보니파스 8세(서기 1294-1303). 부패로 이름난 교황. 가톨릭 교회의 정치권력을 강화한 자로 정교 분리를 주장했던 단테의 정적.

파리나타 Farinata:
        황제당원(중세 이탈리아에서 황제편을 들어 교황당 Guelphs에 맞섰음)으로 단테 시대의 정치 지도자. 제6지옥에서 이단자들과 함께 처벌받고 있음. 플로렌스 정치로 인해 끊임없이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영혼.

플리기아스 Phlegyas:
        단테와 버질을 태워 스틱스강(Styx: 저승강)을 건네주는 뱃사공. 신들을 모독한 죄로 처벌을 받는 Ares(전쟁과 용기의 신)와 Chryse(코린트 왕자 Almus의 딸) 사이의 아들(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나, Aeneas 기록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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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편:
        인생의 반을 보낸 단테는 아직도 “진리의 길”을 찾지 못해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해서 그 길을 잃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무섭고 어두우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계곡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마치 높은 봉우리가 어두운 계곡으로부터 그를 구하겠다는 듯 솟아 있었다. 그 높은 봉우리 위 태양이 비치고, 단테는 그 빛을 향해 올랐다. 곧 분노한 세 야수를 만났으니 바로 표범과 사자와 암 늑대이다. 그는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절망 속에 어두운 계곡으로 되돌아오던 중 단테는, 숲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만났다. 그 형상이 말하기를, 자신은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버질의 영혼이라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만났다는 기쁨에 단테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세 마리 야수들을 만난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 이에 대해 버질은, 그 암컷 늑대는 접근하는 모든 것을 죽이지만, 조만간 위대한 사냥개가 나타나 지옥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 늑대 때문에 산 정상에 오르는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기 전, 먼저 영원한 징벌의 곳인 지옥을 통과해야 하고, 그다음은 연옥을 통과해야 하느님의 도시인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힘을 얻은 단테는, 그의 안내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제2편:
        단테는 이승으로 되돌아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뮤즈(Muses: 그리스 신화. 시와 예술의 여신. Zeus의 딸)에게 기도했다. 그는 버질과 함께 지옥의 문에 이르렀으나, 지옥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사후 세계를 다녀온 이들은 오직 사도 바울과 아에네아스(Aeneas: 그리스 신화. 트로이의 영웅. Anchises와 Aphrodite 사이의 아들)두 사람뿐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제3천국을 다녀왔고 아에네아스는 지옥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이며, 자신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겁쟁이로, 지옥을 경유하며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버질은 단테의 소심함을 책망한 다음, 자신이 단테를 만나 그의 여행 안내자가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국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단테를 가엾이 여기며 도우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베아트리체로서 살아생전 단테의 연인이었다. 지금 은혜 받은 자들과 함께 영광의 장소에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역시 천국에 있는 성 루시아로부터 단테가 처한 곤경을 알았고, 성 루시아는 성 처녀 마리아로부터 가엾은 단테에 대해 들었다. 이 세 성녀들은 천국으로부터 단테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버질의 말에 따르면,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처한 불행을 슬퍼하며 그를 도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버질은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단테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가 천국에서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말에 크게 안도했다. 그는 그녀와 버질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버질을 따라 지옥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제3편:
        버질의 안내로 단테는 지옥 문 앞에 섰다. 문 위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라는 명문銘文이 쓰여 있었다(단테의 지옥은 열 개의 원형 지옥이 상하로 포개진, 깔때기 모양의 구조). 문안으로 들어서자 곧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버질이 말하기를 이 울음은 이승에서 사는 동안 도덕적 선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선행도 하지 않고 악행도 저지르지 않은 영혼들이 내는 울부짖음이라고 했다. 따라서 천국이나 지옥으로부터 거부당한 영혼들이라고 했다. 이 영혼들은 실제로는 지옥이라고 할 수 없는 연옥에 머무르며, 하얀 깃발을 따라 쉬지 않고 걷고 있다고 했다. 파리떼와 벌떼가 끊임없이 그들을 물어뜯고,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을 꿈틀거리는 구더기들이 핥고 있다고 했다. 의식적인 죄를 짓지 않은 영혼들은, 사탄 편도 하느님 편도 아닌 중립적인 천사들로부터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버질을 따라 단테는 아케론강(Acher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하를 흐르는 다섯 개 강 가운데 하나)에 이르렀다. 아케론은 큰 강으로 지옥과 경계를 이루는 강이다. 죽어 이곳에 온 새로운 영혼들이 도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늙은 뱃사공 카론이 젓는 한 척의 배가 다가왔다. 그는 단테가 죽은 자가 아님을 알아보고, 죽은 자들로부터 비켜서라고 했다. 버질이 자신들의 여행은 천국의 명에 따른 것이라고 대답했다. 카론은 강 건너 지옥으로 울부짖는 영혼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버질과 단테가 배에 올랐을 때, 겁에 질린 단테에게 버질이 말하기를, 카론은 오직 저주받은 영혼들만 배에 태우므로 자신들을 태우기 꺼려했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 일고 강풍이 불며 땅으로부터 불길이 솟았다. 단테가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제4장:
        천둥소리에 단테의 의식이 돌아왔다. 긴 잠을 잔 듯했고, 이미 강을 건너 배에서 내려 있었다. 눈 아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제1지옥 또는 림보(Limbo)라고 불리는 지옥이었다. 뒤이어 버질의 설명이 있었다. 원형의 이 지옥은 도덕적인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의 강림 이전에 태어났거나(따라서 하느님의 영광을 모르는 자들이다) 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의 영혼이 벌을 받는 곳이다. 그 연옥을 떠나 천국으로 간 영혼이 있는지 단테가 묻자, 버질은 구약성서상의 인물인 노아와 모세를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부활할 때까지의 기간에 지옥으로 내려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셨다고 했다(에베소서 4:9, 사도행전 2:24 등).

        그러나 아직도 많은 영혼들이 연옥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버질 자신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고, 잠시 그곳을 떠나 단테를 안내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무리의 시인들이 다가와 자신들과 같은 시인인 버질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호머(Homer: Iliad and Odyssey를 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레이스(Quintus Horatius Flaccus: 기원전 1세기 이태리 시인), 오비드(Publius Ovidius Naso: 기원 1세기 로마 시인), 그리고 루칸(Marcus Annaeus Lucanus: 기원 1세기 로마 시인)이었다. 그들이 일곱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안으로 단테를 안내하여 많은 위인들의 영혼을 만나게 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에네아스, 라비니아(Lavinia; Latinus와 Amata의 딸로 아에네아스의 마지막 아내)를 비롯하여 수학자 유클리드, 천문학자 프톨레미 등의 영혼도 만났다. 버질의 안내로 성을 벗어난 단테는 또다시 어둠 속의 길로 나아갔다.

제5편:
        단테와 버질은 제2지옥으로 내려갔다. 제1지옥보다 작았지만 벌은 더 가혹했다. 그들은 괴물 미노스(Minos: 그리스 신화. 크레테 섬의 왕. Zeus와 Europa 간의 아들. 죽은 후 지옥의 심판관이 됨)를 보았다. 미노스는 끝없는 대열을 이루고 있는 죄인들의 영혼을 심판하고 있었다. 미노스 앞에서 죄를 자복하면 그는 긴 꼬리를 자신의 몸에 감았고, 그 영혼은 그 감는 횟수에 해당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카론과 마찬가지로 미노스는 단테가 죽은 자가 아님을 알고는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지만 버질의 말에 따라 그들은 다시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단테와 버질은 끊임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광풍이 몰아치는 어두운 곳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저주받은 영혼들이 바람 속에서 소용돌이쳐지는 곳이다. 육욕의 죄를 저지른 영혼들이 처벌받는 지옥이다.

        단테는 그러한 죄를 저지른 자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버질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렌(Helen: 트로이 왕자 Paris가 납치한 스파르타의 왕비. 이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발함)을 비롯하여 클레오파트라 등 많은 인물들이 있다고 했다. 사랑 때문에 저주를 받는 그 영혼들에 대해 단테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단테는 버질의 허락을 받아 그 영혼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프란체스카(등장 인물 참조)의 영혼은 단테가 이승의 사람임을 알고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늙고 불구인 남자와 결혼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의 동생인 파올로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파올로와 함께 아더 왕이 이야기를 읽던 중, 란스롯과 기니비어 간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은 바로 자신들의 비밀스런 사랑을 말하는 듯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의 로맨틱한 장면에 이르러, 그들은 서로 키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의 탈선을 알아챈 남편이 자신들을 죽였다고 했다. 이제 그녀는 파올로와 함께 제2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단테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제6편:
        단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3지옥 앞이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똥과 오물이었다. 악취가 사방으로 가득했다.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루스(Cerberus: 지옥의 왕 Hades의 개)가 그들의 앞을 막았지만, 버질이 한 덩이의 흙을 던져 주자 길을 내주었다. 단테와 버질이 제3지옥에 들어서니 탐욕 때문에 처벌받는 영혼들이 오물의 비가 쏟아지는 땅바닥에 누어 있었다.

        한 영혼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테에게 다가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하자, 자신은 키아코(Ciacco: 돼지를 일컬음)라고 했다. 플로렌스에서 이승을 보냈다고 했다. 플로렌스의 정치적 미래를 말하며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단테가 플로렌스 출신의 훌륭한 정치인들의 이름을 대며 묻자, 그들은 지옥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바닥에 누우며 단테에게 이승에 가서도 자신의 이름을 잊지 말라고 했다.

        제3지옥을 떠나면서 단테는 버질에게 “최후의 심판” 후 영혼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버질은, 그때 가면 하느님의 창조가 완벽하게 완성될 것이므로 처벌도 끝이 날 것이라고 했다.

제7:
        버질과 단테는 제4지옥으로 내려가 플루투스(Plutus: 그리스 신화. 부의 신. 눈이 멀어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신. 시력을 되찾은 후 다시 부와 재앙을 받을 자를 판단하게 됨)를 만났다. 한마디 말로 그를 제압한 후 그들은 지옥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커다랗고 둥근 성벽을 따라 도랑이 파인 모습을 보고 단테가 놀라 소리쳤다. 도랑 속에서는 두 무리의 영혼이 노여움과 고통 속에 무거운 추를 밀고 있었다. 한 무리가 다른 무리 속으로 밀고 들어가면, 그다음엔 납짝해진 밀린 쪽 무리가 밀고 나오는 식이었다. 말을 타고 하는 창시합인 듯 그들은 영원히 이 같은 징벌을 받는다고 했다. 이승에서 탐욕과 방탕, 돈을 낭비한 죄를 범한 영혼들이 받는 처벌이었다.

        단테는 아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버질이 말하기를 이러한 벌을 받는 영혼들은 부패한 성직자, 교황, 추기경들로, 그 벌로 인해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버질은 또한 탐욕과 방탕에 빠진 자들의 공통점은 운명의 여신이 주는 재화를 우습게 여긴다는 점이다. “운명의 여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테가 버질에게 물었고,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사람과 사람 간, 나라와 나라 간에 재화를 이동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인간은 여신의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재산을 잃더라도 여신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버질의 설명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진 단테는 그를 따라 제5지옥으로 갔다. 그곳은 진흙탕 물이 흐르는 스틱스 강에 면해 있었다. 처벌을 받는 영혼들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강둑에 웅크리고 앉아 서로를 때리며 물어뜯고 있었다. 이승에서 분노를 못 이겨 정신을 잃고 살았던 영혼들이었다. 이곳에는 또 다른 영혼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버질이 주의를 주었다. 다름 아닌 스틱스 강의 맨 바닥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바로 “불평”의 영혼들이었다. 그 영혼들은 이제 질퍽한 강의 검은 진흙 위에서 숨이 막혀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제8편:
        제5지옥의 둥근 벽을 돌아 그들은 강둑 위 높다란 탑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탑의 꼭대기에서는 불꽃이 타고 있었다. 그곳에서 버질과 단테는 뱃사공 프레기아스를 만났다. 그의 배를 타고 버질과 단테는 스틱스 강을 서둘러 건넜다. 그곳에서 단테는 필리포 아르겐티(Filippo Argenti: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13세기 교황파 플로렌스 정치가. 장신의 그는 매우 거칠고 괴이한 성격에 쇠주먹으로 유명했음)를 만났다. 그에 대해 단테는 동정심이 없었다. 다른 영혼들이 그를 찢어발기는 모습을, 단테는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그들은 루시퍼의 지옥(Dis-Lower Hell)으로 가고 있다고 버질이 말했다. 그 문에 이르자 한 무리의 타락한 천사들이 외쳐 물었다. 왜 그곳으로 들어가려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버질이 그 이유를 설명했으나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이제 처음으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을 봉쇄당할 처지였다. 그들이 문을 닫았고, 그 문에 버질의 얼굴이 부딪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제9편:
        그 광경을 지켜본 단테가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버질은 누군가를 초조히 기다리며 단테를 위로했다. 그때 반은 여인, 반은 뱀의 모습인 복수의 여신들(Furies)이 나타났다. 단테를 보자, 그들은 웃고 떠들며, 메두사(Medusa: 그리스 신화. 머리털이 뱀으로 된 여신. 그녀의 눈과 마주치면 돌로 변함.)를 불러 단테를 돌로 변하게 하려고 했다. 버질이 황급히 단테의 눈을 가렸다.

        복수의 여신들 뒤로부터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버질과 단테가 눈을 들어 보니, 하늘로부터 사자使者가 내려와 스틱스 강을 건너 다가오고 있었다. 사자의 앞뒤로 영혼들이 파리 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자가 문에 이르러 여행자들을 위해 문을 열라고 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곧 문이 열렸고, 버질과 단테는 제6지옥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는 속에 무덤들이 즐비했다. 이단자들이 처벌을 받는 곳이다.

제10편:
        단테와 버질은 화염 속을 걸었다. 이단의 하나인 쾌락주의자(Epicurean)들에 대해 버질이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육체가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죽는다는 믿음으로, 이승에서 일생동안을 쾌락을 추구하며 산 자들이라고 했다. 그때 한 무덤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단테가 투스카니 (플로렌스가 속한 이태리 북부 지방)사람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버질이 보니 단테와 같은 시대의 정치 지도자 파리나타였다. 버질이 단테에게 그와 대화를 해 보라고 했다.

        단테와 파리나타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단테의 친구인 기도의 아버지 카발칸테의 영혼이 끼어들었다. 왜 자신의 아들과 함께 오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아마도 기도가 버질을 싫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단테가 대답했다(기도가 하나님이나 베아트리체를 경멸하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번역한 학자도 있다. 이에 관해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역자 주). 단테의 말을 곡해한 그 유령이 크게 화를 내며,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것으로 알고 무덤 깊숙이 사라져 버렸다.

        파리나타는 계속해서 플로렌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그와 단테는 분명 정치적 적대관계였지만 서로 정중하게 대했다. 파리나타와 그 주변 영혼들의 발언으로 보아 그들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사건들을 아는 듯했다. 파리나타는 예언을 할 수 있었고, 단테가 플로렌스로부터 추방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파리나타가 말하기를, 이교도 영혼은 미래의 일만 알 뿐 현재의 일은 알 수가 없고 그 또한 형벌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버질이 단테를 불러, 그들은 제6지옥의 남은 부분을 통과했다. 파리나타의 예언에 따라 단테는 플로렌스로부터 추방당할 때까지 남은 시간에 대해 고심했다. 그러나 버질은 좀 더 상황이 좋은 곳에 이르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제11편:
        제7지옥이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심한 악취가 풍겨왔고, 그 냄새에 적응코자 버질과 단테는 교황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 399-401 간 재위)의 무덤가에 잠시 주저앉았다. 버질이 남은 세 개의 지옥에 대해 설명을 했다. 제7지옥은 폭력의 죄를 처벌하는 곳으로, 이웃에 대한 폭력, 자신에 대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의 죄가 그러한 죄라고 했다. 그러나 폭력의 죄보다 더 나쁜 죄는 기망의 죄라고 했다. 이 죄는 사람들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사랑이라는 지고의 도덕률을 무너뜨리는 죄라고 했다. 나머지 두 지옥은 “속여서 취하는” 죄를 벌하는 곳이라고 했다. 제8지옥은 사람들 간 당연히 지켜야할 믿음을 깨는 죄로, 위선과 아첨 같은 “저지르기 쉬운 죄”를 처벌하는 곳이고, 제9지옥은 디스 신(Dis Pater: 로마신화. 지옥의 신. Dis는 부를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 Dives의 약자)이 다스리는 지옥으로, 반역의 죄 같은 특별한 신뢰관계를 깨는 죄를 처벌하는 지옥이라고 했다. 이러한 죄로는 혈족에 대한 배신, 나라에 대한 배신, 은인에 대한 배신, 고객에 대한 배신이 있다고 했다.

        버질의 설명을 들은 단테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많은 죄인들의 영혼을 그에 합당한 지옥에서 못 보았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왜 그처럼 지옥이 구분되어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버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말하는 철학 때문이라고 했다. 즉, 니코마스 윤리학이 말하기를,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는 죄로 무절제, 적개심, 무자비가 있고, 그 가운데 무절제는 거역하는 정도가 가장 낮기 때문에 Dis 지옥에서 벗어나 관대한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버질의 이 말에 단테는 왜 고리대금이 죄가 되는지 물었다. 그것은 근면과 기술(창세기 31:4~5)이 아닌, 돈 자체로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고리대금업자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기술” 과 세상을 설계하신 그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제7지옥의 첫 번째 구역으로 갔다.

제12편:
        제1구역에 이르는 길은 깨어진 바위틈 사이로 난 계곡이었다. 그 계곡 끝에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그리스 신화. 인간의 몸에 황소 머리를 한 괴물)가 발광을 하며 버티고 서 있어, 그를 피해 갔다. 계곡을 내려가면서 버질은, 지난번 여행 때 매달려 있던 그 깨어진 바위가 아직도 지옥 밑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제1구역으로 들어서니 피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웃에게 폭력을 가한 죄인들이 끓는 피 속에서 벌을 받고 있었다. 한 무리의 켄타우르스(Centaurs: 그리스 신화.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인 괴물)가 강 언덕에서, 강 언덕을 기어오르는 영혼들을 향해 활을 쏘고 있었다.

        단테가 이승의 사람인 것을 안 그들의 우두머리인 키론(Chiron: 그리스 신화. 타이탄 Cronus와 대양의 요정 Phlyra 사이의 아들. 지혜와 의술에 관한 지식으로 헤라클레스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 영웅들을 가르침)이 활을 겨누었다. 이를 본 버질이 물러나라고 소리치자, 이에 순순히 복종했다. 깨진 바위 조각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으므로, 버질은 켄타우르스에게 피의 강 언덕을 안내하라고 했다. 네수스(Nessus: 그리스 신화.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자네이라를 강간하려다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음)가 단테를 등에 업었다.

        강 언덕을 안내하며 네수스는, 그곳에서 벌을 받고 있는 알렉산더(아마 알렉산더 대왕을 뜻하는 듯), 디오니수스(Dionysus: 그리스 신화. 포도주의 신), 훈족의 아틸라 등 유명인의 이름을 말했다. 독재자로 살면서 백성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은 피의 강 가장 갚은 곳에서 벌을 받는다고 했다. 피의 강 가장 얕은 곳을 건너자 네수수는 사라졌고, 버질과 단테는 제2구역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제13편:
        제7지옥의 제2구역에 이르러 버질과 단테는, 뒤틀린 검은 색깔의 나무들이 무성한 이상한 숲으로 들어갔다. 자살자의 영혼이 처벌을 받는 지옥이다. 여기저기서 고통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버질이 나뭇가지를 꺾어 보라고 했다. 단테가 나뭇가지를 꺾자 놀랍게도 비명 소리와 함께 꺾은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이 구역은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을 박해(자살과 낭비)한 영혼들이 나무로 변하여 처벌을 받는 곳이다.

        버질이 가지가 꺾인 나무에게 사연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단테가 그 이야기를 이승에 전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이에 그 나무가 말하기를, 그는 살아 있을 때 프레데릭 대왕의 신하 피에르(Pier della Vigna: 13세기 초 이태리 시인 겸 법률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Frederick II세의 고문. 후일 반역죄로 투옥되어 눈알을 빼는 형벌로 장님이 됨. 자살로 생을 마침)였고 매우 도덕적이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한 자들의 음모에 걸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나무가 되었느냐고 단테가 묻자 나무가 말하기를, 미노스가 처음 영혼을 가져와 그곳에 뿌렸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내렸고, 새끼를 치게 되었다고 했다. 하피스(Harpies: 그리스 신화. 얼굴은 여자, 몸은 새)가 끊임없이 쪼아대어 상처를 입는다고도 했다. 가지가 꺾이면, 사지가 잘리는 아픔을 겪는다고 했다. 모든 영혼들이 몸을 되찾는 때가 오더라도 자신들은 그렇게 못할 것이, 자신들은 스스로 몸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신이 찾아오더라도 나무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자신이 이승에서 자살로써 거부한 육신의 모습을 회상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자코모(Jacomo da Sant'Andrea: 자살로 생을 마감한 13세기 초 이태리 귀족)를, 뒤따라온 사나운 개들이 덮쳐 찢어발기고 있었다. 숲(역시 영혼인)이 말하기를, 플로렌스가 당초의 수호신 마스(Mars: 로마 신화. 전쟁과 농업의 신)를 세례 요한으로 바꾼 뒤 덮친 흑사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자신도 플로렌스 사람으로서 목매어 죽었다고 했다.

제14편:
        단테는 떨어진 나뭇잎을 모아 숲의 영혼에게 돌려주었다. 그와 버질은 제7지옥의 제3구역 끝에 이르렀다. 피에 젖은 뜨거운 모래벌판 위로, 불티가 비처럼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제11편에서 버질이 말한 것처럼, 이 구역은 또 세 개의 작은 지옥으로 나뉘는데, 하느님께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처벌받는 곳이다. 이 세 작은 지옥은 모두 불비가 내리고 있었다. 첫 번째 작은 지옥은 신성모독을 행한 죄인들로, 그들의 영혼은 모두 이곳 모래 언덕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한다. 불의 비로 인해 뜨거워진 언덕은, 그곳에 엎드린 영혼들의 배와 등어리를 모두 태우고 있었다. 그 죄인들 가운데 테베(Thebes: 나일 강 유역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의 도시)를 포위 공격한 카파네우스(Capaneus: 그리스 신화. 거대한 신체와 강력한 힘을 갖춘 용사)가 버질의 눈에 띄었다. 카파네우스는 지옥의 고문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은 피가 흐르는 또 다른 강에 이르렀다. 지옥을 흐르는 강들에 대해 버질이 설명을 했다. 크레테 섬의 산 밑 지하에, 어느 늙은이의 동상이 깨어진 채 묻혀 있다고 했다. 그 동상이 흘리는 피눈물이 흘러 아케론(Acheron: 그리스 신화. 비통의 강), 스틱스(Styx: 그리스 신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 플레게톤(Phlegethon: 그리스 신화. 가장 깊은 지옥으로 흐르는 강)강들을 이루고, 마침내는 지옥의 맨 아래에 있는 코키투스( Cocytus) 호수에 이른다고 했다.

제15편:
        버질과 단테는 그 강을 건너 제7지역의 제3구역, 두 번째 작은 지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수간獸姦을 한 자들의 영혼이 불의 비를 맞으며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자연법칙에 대해 폭력을 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영혼들 가운데 라티니(Brunetto Latini: 13세기 이태리 투스카니 귀족. 교황 지지자로 학식이 있고 웅변가였음)가 단테를 알아보고는, 잠깐 대화를 위해 모래밭 가까이 함께 걷자고 했다. 그가 예언하기를, 단테는 정치적 공적으로 크게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에 대해 단테는, 운명의 여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16편:
        두 번째 작은 지옥의 수간자들 가운데서, 한 무리의 영혼들이 단테를 동향 사람으로 알아보고 다가왔다. 불길로 녹아내린 그들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다고 하니, 그 영혼들은 각각 이름을 말했다. 이름을 듣고 보니, 자신과 같은 시대 플로렌스 사람들이었다. 단테는 그 영혼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들은 플로렌스가 아직도 예의범절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물었고, 이에 대해 단테는 그렇지 않다고, 오만과 불손이 넘쳐난다고 대답했다.

        그곳을 떠나기 전 버질은 이상한 요청을 했다. 단테가 매고 있는 허리띠를 달라고 했다. 허리띠를 주자, 그는 그 한 끝을 검은 물이 가득한 바위틈 사이로 던졌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 앞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제17편:
        사람의 머리에 몸은 뱀인 괴물이었다. 털이 수북한 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피해 그와 버질은 제3구역의 세 번째 작은 지옥으로 내려갔다. 버질은 그 괴물과 대화를 위해 단테를 먼저 보냈다. 단테가 앞서 가 보니, 그곳은 예술에 대해 폭력을 가한 자들이 처벌받는 곳이었다. 목에 지갑을 걸고 불의 비를 맞으며 고통받는 고리대급업자들의 영혼이었다. 그 지갑들에는 그 출신을 표시하는 표지가 있었다. 그들의 눈은 배고픔으로 지쳐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기피했기 때문에 단테는 다시 버질에게로 돌아왔다.

        한편, 버질은 그 괴물의 안내를 받아 제8지옥으로 내려갔다. 단테는 두려웠지만 안내를 믿었기 때문에 그 괴물의 등에 탔다. 버질은 그 괴물을 게리온(Geryon: 그리스 신화.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셋인 또는 머리 하나에 몸통이 셋인 괴물)이라고 했다. 게리온이 뒷걸음을 치더니,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올라 원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제8지옥 앞에 도착한 것이다.

제18편:
        말레볼제(Malebolge)로 알려진 제8지옥 앞이었다. 단테가 설명하는 지옥은, 열 곳의 지옥들이 동심원을 이루어 깔때기 모양으로 쌓여 있는 구조이다. 각각의 지옥은 둥근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원형의 깊은 함정이 있다. 각 지옥의 벽과 그 가운데 함정 사이를 같은 크기의 산등성이가 흐르는데, 이 등성이에는 “함정”이라고 불리는 열 개의 지옥이 있고, 이 지옥들에서는 “저지르기 쉬운 죄”를 범한 영혼들이 처벌을 받는다. 버질의 안내로 단테는 첫 번째 “함정”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버질과 단테는 한 무리의 영혼들이 두 “함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음을 보았다. 긴 채찍을 든 괴물들이 다가오는 그들에게 매질을 하면 그들은 되돌아서는 것이다. 단테가 안면이 익은 이태리 사람을 보고 말을 걸었다. 그는 볼로냐 출신으로, 여동생을 귀족에게 팔아넘긴 죄로 그곳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지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을 속이는 뚜쟁이나 색마들이 처벌을 받는 곳이다. 버질과 단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저 악명 높은 제이슨(Jason: 그리스 신화.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Argonauts 원정대 대장)을 보았다. 그는 메데아(Medea: 그리스 신화. Jason이 황금 양털을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여인. 그와 결혼한 지 10년 후, 제이슨은 Creon의 공주 Creusa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버린 죄로 그곳에서 벌을 받고 있었다.

        버질과 단테는 두 번째 “함정”으로 갔다. 심한 악취와 함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똥으로 가득 찬 구덩이였다. 그곳으로 많은 영혼들이 내던져지고 있었다. 아첨꾼들의 영혼이었다. 잠시 후 버질이 그 같은 광경을 그만 보자고 했고, 그래서 그들은 세 번째 “함정”을 향해 갔다.

제19편:
        세 번째 “함정”에서는 면죄부와 성직을 사고 판 성직매매자들이 처벌받고 있었다. 단테는 그들을 꾸짖었다. 그들은 모두 다리를 거꾸로 올린 채 곤두박질을 하고 있었다. 함정 안에서는 그들에게 계속 도리깨질이 가해졌고, 그들의 발은 영원한 불길 속에 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더 붉은 불길 속에 타고 있는 영혼이 있었다. 단테가 가까이 다가 가서 말을 걸었다. 그는 교황 니콜라스 III세(Nicholas III: 가족 등용으로 악명 높았던 교황)로, 단테를 보니파스(St.Boniface: 7세기 프랑크왕국의 앵글로-색슨 지역(지금의 독일)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로 착각하고 있었다. 단테가 아니라고 말하자, 그는 자신이 관직매매의 죄를 저지른 교황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였지만, 이승에는 아직도 자신보다 더 나쁜 죄를 지은 자들이 많고, 그들이 더 중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단테가 말하기를, 성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나 지상의 자리(교황의 직)를 받은 대가로 예수님께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했다. 단테는 니콜라스의 죄가 중함으로, 그러한 벌은 당연한 것이니 그를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그런 다음 단테는, 모든 부패한 교역자들은 우상숭배자로서 세상을 망치는 자들이라고 외쳤다. 단테의 마음을 이해한 버질은 그를 데리고 네 번째 “함정”으로 갔다.

제20편:
        네 번째 “함정”에서 단테는 마치 교회 안에 서 있는 신자들의 행렬처럼 힘들게 걸어가는 한 무리의 죄인들을 보았다. 분명 벌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 단테는 이 끊임없이 걸어가는 행렬을 가까이 가 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의 목이 뒤로 뒤틀려, 흘리는 고통의 눈물이 엉덩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단테가 연민의 눈물을 흘리자, 너무 동정심이 많다고 버질이 꾸짖었다.

        네 번째 “함정”을 지날 때 버질은 점성가, 점쟁이, 마술사가 그곳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 가운데 한 죄인은 이승에서 앞날을 점치는 사악한 짓을 했는데, 이제 그는 앞날이 아니라 영원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버질과 단테는 여자 점쟁이 만토(Manto: 그리스 신화. 장님 예언자 Tiresias의 딸)도 보았다. 그들은 다섯 번째 “함정”으로 갔다.

제21편:
        그곳에 도착하니 칠흑 같은 검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베니스 사람들이 배를 수선할 때 칠하는 역청(타르)비슷한 것이 뜨겁게 끓고 있는 “함정”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단테가 손을 대려고 하자, 버질이 큰 소리로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그때 “함정” 옆의 바위 위에 악마가 나타나, 영혼을 하나씩 잡아 그 검은 “함정”으로 내던졌다. 던져진 영혼이 숨을 쉬기 위해 위로 오르자, 밑에 있던 말라브란케(Malabranche: 부패한 정치인의 영혼을 끓는 역청의 호수에 내던지는 일을 하는 지옥의 악마)가 갈고리로 찍어 계속 아래로 잡아당겼다.

        앞 길을 알아보기 위해 협상을 할 터이니 잠시 바위 뒤로 숨어 있으라고 버질이 단테에게 말했다. 말라브란케는 처음 말을 안 들었지만, 그 여행은 천국의 뜻이라고 하자 길을 열어 주었다. 더구나 “함정”을 연결하는 다리 하나가 무너져 내렸으므로, 안전을 위해 열 명의 악마를 호위병으로 붙여 주겠다고 했다. 말라브란케의 대장 말라코다(Malacoda: 악마의 꼬리를 뜻함)는 19시간 전에 그 다리가 무너졌으니, 그 다리 옆의 길로 가면 된다고 했다.

제22편:
        호위병과 함께 일행은 앞으로 나아갔다. 단테는 대화 상대자를 찾기 위해 “함정”의 표면을 살피며 갔다. 그러나 표면으로 솟아 오른 영혼들은, 곧 아래로부터 꼬챙이가 잡아당겨 끌어내렸으므로 그들과 대화가 불가능했다. 마침내 버질이 한 영혼을 만났다. “함정”밖에서 고문을 받는 영혼이었다. 그 영혼이 말하기를, 자신은 생전 스페인 나바르라 왕국 바울트 왕의 가신으로, 뇌물을 받은 죄로 그곳에서 처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때 키리아토(Ciriatto: 코끼리처럼 긴 상아를 가진 지옥의 악마)가 나타나 그 영혼을 구멍으로 몰아댔고, 따라서 대화가 중단될 찰나였다. 그 끓는 “함정” 속에 어떤 이태리 사람이 있는지 버질이 물었고, 일곱 사람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영혼이 대답했다. 가까이 있던 악마가 말하기를, 그 영혼이 고문을 피해 고통이 조금 덜한 지옥으로 도망치려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영혼이 바로 “함정”으로 돌아가 뛰어들었다. 화가 난 두 악마가 그의 뒤를 쫓았으나, 곧 끈끈한 역청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다른 악마들이 그 둘을 구하는 동안, 버질과 단테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제23편:
        악마들을 떼어놓고 온 것이 그들을 화나게 하여, 화근이 되지 않을까 하고 단테가 걱정을 했다. 버질도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때 뒤로부터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뒤처졌던 악마들이 미친 듯 쫓아오고 있었다. 버질이 재빨리 단테의 팔을 잡은 다음, 제8지옥의 여섯 번째 “함정”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쫓아오는 악마들을 따돌릴 수가 있었다.

        여섯 번째 “함정”에는, 모자와 두건을 쓰고  소매 없는 어깨 망토를 걸친 한 무리의 영혼들이 원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영혼이 단테의 어투를 알아듣고는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생전에 이태리 사람들로, 위선자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펼쳐 십자가를 만들었고, 다른 영혼들이 그를 밟고 지나갔다. 십자가로 누운 그 영혼은 본디오 빌라도 총독하의 고위 성직자 카이아파스(Joseph ben Caiaphas: 14 BC-46 AD.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유대 고위 성직자. 예수님을 재판한 Sanhedrin 재판관)였다. 버질이 다음 지옥으로 가는 길을 한 영혼에게 물었고, 말라코다가 알려준 길이 거짓이었음을 알았다. 그 영혼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일곱 번째 “함정”으로 향했다.

제24편:
        그 길은 많은 위험이 따랐다. 다리가 무너져 내려, 위험한 바위 사이를 통과해야 했다. 버질은 인간인 단테가 위험하지 않도록 조심하여 안내를 했다. 단테는 때때로 숨 쉬기가 어려웠지만, 버질의 재촉 하에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길고 긴 오르막을 지나 벽을 타고 내려가, 일곱 번째 “함정”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뱀 떼가 벌거벗은 죄인들을 쫓고 있었다. 그들의 손과 발을 뱀들이 칭칭 감고 있었다. 죄인의 어깨를 무는 뱀의 모습이 단테의 눈에 들어왔다. 영혼들에게는 끊임없이 불이 붙어 타고 있었으며, 타고 난 재로부터 영혼이 되살아나 뱀의 “함정”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버질이 한 영혼과 대화를 했다. 투스카니 출신으로, 성물을 훔친 후치라는 자였다. 단테가 아는 자였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본 단테에게 노하여, 단테가 정치적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제25편:
        추잡한 행동으로 하느님께 욕설을 퍼부은 후치는, 곧 뱀으로 전신이 감긴 채 끌려갔고, 그 광경을 본 단테는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버질이 앞으로 더 나아가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바로 앞에 세 영혼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영혼을 발이 여섯 개인 거대한 뱀이 칭칭 감아, 뱀과 영혼이 한 몸체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두 영혼이 그 광경을 겁에 질려 보고 있자, 다른 뱀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중 한 영혼을 집어삼켜 씹었다. 이제 뱀은 서서히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곧 다시 뱀의 모습으로 바뀌는 등, 쉽게 그 형상을 바꾸었다.

제26편:
        이곳의 영혼들은 모두 플로렌스 출신의 도적들이라는 걸 안 단테는, 이승에서나 지옥에서나 그런 식으로 이름을 날리는 플로렌스에 대해 비꼬는 마음이 들었다. 버질은 그를 여덟 번째 “함정”으로 안내했다. 불이 타고 있는 그곳은 깊은 골짜기였다. 가까이 가보니, 불꽃마다 영혼이 타고 있었다. 한 불꽃에 두 영혼이 타고 있는 모습이 단테의 눈에 들어왔다. 율리시즈와 디오메데스였다. 모두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속임수를 쓴 죄로 벌을 받고 있었다.

        단테는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버질이 말하기를, 그들은 그리스인들로서 중세 이태리어를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통역관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들은 율리시즈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걸 들을 수가 있었다. 새로운 모험을 향해 율리시즈는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중해 서쪽 끝 넘어 항해를 했고, 전설에 따르면 그 지점을 넘어 항해하는 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항해 다섯 달 후 그와 그의 부하들은 높은 산을 발견하였는데, 그 산에 이르기 전 폭풍우가 닥쳐 그의 배를 전복시켰다고 했다.

제27편:
        율리시즈의 이야기를 들은 후 버질과 단테는 다시 길을 떠났다. 또다시 불길에 휩싸인 영혼을 만났다. 이 영혼은 이태리 로마냐(Emilia-Romagna: 볼로냐가 주도인 이태리 북부 주)출신으로, 단테의 롬바르디아(Lombardia: 주도가 Milano인 이태리 북부 스위스 접경 지역 주)사투리를 듣고는 고향 소식을 물었다. 이에 대해 단테는, 로마가 폭력과 전제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곧 전쟁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 영혼의 이름을 물었다. 그 영혼은 단테가 그 깊은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고 믿고, 따라서 자신의 불명예를 세상에 알릴 리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몬테펠트로(Guido da Montefeltro: 13세기 이태리 군사전략가)이며, 기벨린(Ghibellines: 신성로마제국 편에 선 13세기 이태리 정치세력)소속이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개종을 통해 프란시스코 수도회 수도자가 되었지만, 교황 보니파스 VIII세의 설득으로 다시 정치에 입문하여 교황 편에 서게 되었다고 했다. 교황은 그에게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로마 동쪽 35km 지점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를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그는 망설였지만, 교황은 비록 그의 조언이 틀리더라도 앞으로 혹시 파문을 당하면 면제를 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약속에 따라 그는 조언을 했으나 틀린 조언이었다. 그가 죽자 성 프란시스(St.Francis: 프란시스코 수도회 창시자)가 찾아 왔으나 악마가 말하기를, 파문을 면제 받았다고 해서 참회를 면제해줄 수 없고, 참회를 한다고 해서 죄를 면제해줄 수 없는 것이니 만큼 파문을 면제해주었다고 해서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면서 그를 낚아채 갔다고 했다. 악마는 자신을 논리학자로 자처하며, 몬테펠트로를 미노스에게 인계했다. 미노스는 교황에게 거짓 조언을 한 죄로 그를 제8지옥의 여덟 번째 “함정”에 처박았던 것이다.

제28편:
        버질과 단테는 계속 나아가 아홉 번째 “함정”에 이르렀다. 그곳에선 한 무리의 영혼들이 둥근 원을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트로이 전쟁(Trojan War: 그리스 신화. 트로이와 아르케아<고대 그리스> 간의 전쟁. 트로이의 왕자 Paris가 스파르타의 왕비 Helen을 납치하면서 발생한 전쟁)에서 당한 부상자들보다 더 심각한 부상이었다. 원의 한 지점에서 칼을 든 악마가 다가오는 영혼마다 칼로 토막을 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영혼이 단테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무슬림들의 예언자 모하메드라고 했다. 자신들은 분열을 선동하는 자들로서, 따라서 그에 합당한 벌로 칼을 맞아 토막토막 분열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토막 난 영혼의 조각들은 다시 모습을 회복하게 되고, 원을 한 바퀴 돌아 그 자리에 오게 되면 또 칼을 맞아 토막이 난다고 했다.

        그 무리의 영혼들이 모두 단테를 쳐다보며, 그가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단테에게 이승의 돌시노(Fra Dolcino: 1250-1307, 이태리 프란시스코 수도회 성직자. 교회 개혁 활동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화형 당함)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편지는 돌시노가 곧 자신들과 같은 처지가 되리라는 경고의 내용이었다. 또한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영혼이 있었는데, 바로 베트랑(Betran de Born; 1140-1215. 영국 왕 겸 아퀴테느 대공인 헨리 II세에게 반역토록 왕자 헨리를 부추긴 프랑스 리무젱 지방의 귀족)이었다.

제29편:
        버질은 부상을 입은 영혼들과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낸 단테를 책망했다.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등성이를 따라 내려가 왼쪽으로 가니, 열 번째 “함정”이 눈 아래 보였다. 이곳은 “기망欺罔한 자”들이 죄값을 치르는 곳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구역에서는, 영혼들이 뒤죽박죽 떼를 이루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모두들 전신에 옴이 올라 미친 듯이 긁어대고 있었다.

        단테는 두 이태리인 영혼을 보았다. 그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했다. 그중 두 영혼이 고맙다고 했고 그중 한 영혼이 말하기를, 자신의 이름은 그리폴리노(Griffolino da Arezzo: 13세기 이태리 플로렌스 시인. 연금술의 죄로 화형 당한 인물)이며, 연금술이라는 비술을 실행한 죄로 열 번째 “함정”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영혼도 역시 연금술의 죄로 화형에 처해졌다고 했다. 쇠로 사람을 속이는 연금술 죄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 다.

제30편:
        제8지옥의 열 번째 “함정”의 두 번째 구역을 보며 단테는, 인간이 심한 고통을 받으면 짐승과 같이 된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을 보니, 그 이상이었다. 죄인들이 이빨로 서로 물어뜯고 있었다. 남을 속인 사기꾼 영혼들이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중 미르라(Myrrha: 그리스 신화. Adonis의 어머니. 모습을 바꾸어 아버지와 간통을 한 후 나무로 변함)도 있었다. 세 번째 구역에는 동전을 위조한 죄인들이 처벌을 받고 있었다. 그중 아담(Adam da Brescia: 13세기 플로렌스 통화 위조범. 플로렌스 경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적대자들이 고용한 인물. 화형에 처해짐)도 있었다. 그는 갈증으로 고통받는 처벌을 받고 있었다. 아담은 네 번째 구역에서 벌을 받고 있는 동료들을 알려주었다. 포티파르의 아내(창세기 39:7. 요셉을 유혹하려다 실패하자, 오히려 그에게 누명을 씌운 이집트 여인)와 시논(Sinon: 그리스 신화. Sisyphus의 아들. 트로이 전쟁 시 트로이 사람들을 속여 트로이 성 안으로 목마를 들이게 한 그리스 용사)이었다. 시논은 분명 아담을 알고 있는 듯 그에게다가와  싸움을 걸었다. 그들의 언쟁을 듣고 있던 단테에게 버질은, 보잘 것 없는 그런 말싸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품위를 손상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제31편:
        버질과 단테는 제8지옥의 중심에 위치한 “함정”에 다가섰다. 안개 속에 두 개의 거대한 탑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탑이 아닌 거인들이었다. 지옥 맨 아래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그들은, 그 배꼽이 제8지옥의 높이에 이르고 있었다. 거인 하나가 횡설수설 떠들고 있었다. 니므롯(Nimrod: 창세기 10:8)이었다. 그는 바벨탑을 세우는 일에 참여한 자로, 그 일로 이승에 수많은 언어를 가져오게 하여 혼란을 일으키게 한 자이다.

        버질은 그들을 제치고 안타에우스(Antaeus: 그리스 신화. 바다의 신 Poseidon과 땅의 여신 Gaia 사이의 아들. 힘이 장사인 그는 모든 길손과 레슬링 시합을 하여 죽여 버림. 헤라클레스의 계략에 넘어가 죽임을 당함)에게로 갔다. 단테와 버질은 그의 거대한 손 위에 올라탄 후 그의 발치, 지옥의 맨 아래 바닥에 내렸다. 반역자들이 처벌받는 제9지옥이다.

제32편:
        거인의 다리를 지나 이른 곳은 유리처럼 꽁꽁 얼어붙은 코키투스(Cocytus: 그리스 신화. 아케론강으로 흘러드는 지옥의 호수)였다. 목까지 얼어붙은 영혼들이 추위로 이를 덜거덕거리며 떨고 있었다. 제9지옥의 첫 번째 구역 이름은 카이나(Caina: Abel을 죽인 Cain(창세기 4:1)의 이름을 딴)인데, 혈족을 배반한 죄인들이 처벌을 받는 지옥이다. 몸이 얼어붙은 채 서로를 쳐다보는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들은 화를 내며 서로 머리를 부딪고 있었다. 단테가 발길을 내딛다가 잘못하여 얼음 위 한 영혼의 볼을 걷어찼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를 몰라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니 다름 아닌 보카(Bocca degli Abati: 13세기 이태리 플로렌스 귀족. 1260년 9월 이태리 Montaperti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편을 들었던 이태리의 반역자)였다. 단테는 그를 힐난하고, 그의 머리털을 한 줌 뽑아 쥔 후 그 얼음판을 나왔다.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두 번째 구역에 이르렀다. 그곳은 안테노라(Antenora: 그리스 신화. 트로이의 반역자 Antenore의 이름에서 비롯된 지옥)로, 나라 또는 당을 배반한 반역자들이 벌을 받는 곳이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가 보니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죄인이 앞에 있는 죄인의 머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단테가 그 영혼의 이름을 물었다.

제33편:
        그가 갉아먹기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은 우골리노(Ugolino della Gherardesca: 13세기 이태리 귀족. 정치가 겸 해군 사령관. 신성로마제국 편을 든 반역자) 백작이라고 했다. 그가 갉아먹고 있는 자는 피사 대주교 루제리(Ruggieri degli Ubaldini: 우골리노의 정적)였다. 루제리는 우골리노 및 그의 두 아들, 두 손자를 모두 반역자로 몰아 투옥한 다음 모두 굶겨 죽인 자였다. 그러한 이유로 우골리노는 배가 고파 루제리의 시신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피사를 비난했다. 추악한 소문이 난 그 공동체는 아직도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버질은 세 번째 구역 프톨로메아(Ptolomea)로 갔다. 고객을 속인 자들을 처벌하는 지옥이다. 이곳에서 죄인들은 얼음 속에 누워 얼굴만 얼음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단테는 호수 위를 휩쓸고 오는 추운 바람을 맞았고, 버질은 이제 곧 그 바람의 근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단테와 버질은 세 번째 구역에서 두 영혼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알베리고(Fra Alberigo: 13세기 이태리 수도승. 교황파였으나 적대자들에 의해 추방된 후 다시 신성로마제국의 도움을 받아 복귀함)와 브랑카(Branca d’Oria: 13세기 이태리 제노아 귀족. 장인 살해자)였다. 그들은 아직 죽지 않은 이승의 사람들이나, 그들의 죄가 중하여 지옥으로 들어오기 전 이미 악마들이 그들의 육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버질과 단테는 이곳을 떠나 제9지옥의 네 번째 구역으로 갔다. “함정”의 맨 밑바닥이었다.

제34편:
        제9지옥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면서 단테가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안개 속에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보였다. 바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죄인들이 얼음 속에 여러 가지 뒤틀린 자세로 갇혀 있었다. 죄 중에 가장 악질적인 은인이나 주인을 배반한 죄인들이 벌을 받는 주데카(Judecca)라는 제9지옥 네 번째 구역이다.

        단테와 버질은 안개에 쌓인 그 거대한 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안개를 뚫고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본 모습이 들어났다. 기겁한 단테는 그것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루시퍼(Lucifer: 로마 신화에서는 새벽의 신 Aurora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나 성경(요한 묵시록 12:7~9)에서는 천국에서 추방된 사탄으로 묘사되고 있음)였다. 디스Dis 또는 사탄으로 불리는 루시퍼는 그 어떤 말로도 그 무서운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의 팔은 제8지옥의 모든 거인들의 팔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길었다. 그 몸은 얼어붙은 호수 위로 솟구쳐 있었다. 단테가 얼굴을 들어 위를 보니, 루시퍼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세 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한 얼굴은 정면을, 다른 두 얼굴은 어깨 너머로 뒤를 보고 있었다. 각각의 얼굴 밑에는 한 쌍의 날개가 달렸는데, 앞뒤로 펄럭이는 그 날개들이 일으키는 차가운 바람이 바로 코키투스 호수를 얼게 하는 원인이었다.

        루시퍼는 세 개의 입으로 각각 죄인을 물고 있는데,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죄를 범한 가롯 유다와 줄리어스 씨저를 살해한 블루투스와 카시우스였다. 블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머리를 루시퍼 입 밖으로 내밀고 있었지만, 가롯 유다는 반대로 머리를 루시퍼 입안에 박고 있었다. 다리만을 내밀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루시퍼는 그 반역자들의 영혼을 씹어 조각을 내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죽어) 죽는 법이 없었다. 버질이 채근하여 말하기를, 이제 지옥 구경을 모두 끝마쳤으니 곧 떠나야겠다고 했다.

        단테를 등에 업은 버질은 놀라운 묘기를 보였다. 그는 펄럭이는 루시퍼의 날개를 피해 그의 몸을 타고 올라 머리채를 잡았다. 그 머리채를 잡고 둘은 아래로 내려왔다. 코키투스 호수 밑으로 내려오니 바로 루시퍼의 허리가 닿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버질은 몸을 돌려 위로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루시퍼의 다리가 그들의 위쪽에, 머리는 아래쪽에 있었다. 버질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방금 지구 중심을 지났다고 했다. 루시퍼가 천국으로부터 떨어질 때 머리가 먼저 떨어지고, 그래서 허리가 지구 중심에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루시퍼가 떨어질 때 그 충격으로 지구 남쪽에는 산의 형태로 연옥(Purgatory)만 남고, 남반구의 모든 땅은 북쪽으로 밀렸다고 했다(단테의 시대에는 지리에 관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남반구라는 말로 보아 지구를 둥글다는 믿음이 있었던 듯함). 단테와 버질은 긴 거리를 기어올라, 마침내 그들이 들어간 곳과는 반대쪽으로 나와 다시 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세 줄 한 연聯 /Terza Rima
    신곡이 갖는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은 단테가 창안한 형식미, 즉 세 줄 한 연(Terza Rima)형식이다. 이 형식에서 한 연은 약, 강이라는 액센트 순서를 갖는 두 음절 단어와 세 음절 단어로 쓴 세 문장으로 구성된다(영어가 아닌 이태리어로 그렇다는 뜻: 역자 주). 각 연에서 첫째와 셋째 줄은 같은 각운, 둘째 줄은 다른 각운을 갖는다. 이 둘째 줄의 각운은 또 다음 연의 첫째 줄과 셋째 줄의 각운과 같다. 다시 말해, 각 연의 각운은 aba bcb cdc ded efe fgf...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수가 있다. Shelley의 영시 “ Ode to the West Wind(1820)"의 예를 들어 Terza Rima를 보면 다음과 같다.
 
    O wild West Wind, thou breath of Autumn’s being,
    Thou, from whose unseen presence the leaves dead
    Are driven, like ghosts from an enchanter fleeing,
    Yellow, and black, and pale, and hectic red,
    Pestilence-stricken multitudes: O thou,
    Who chariotest to their dark wintry bed
 
    이러한 운 체계는 계속 이어 나아갈 수가 있고, 따라서 시를 끝내려면 마지막 연은 한 줄이어야 한다.

    영어는 이태리어보다 그 어휘의 뜻이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어가 라틴어, 앵글로색슨어, 중세 프랑스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 단어는 많은 동의어를 갖는다. 예를 들어 영어의 kingly 라는 단어는 불어에서 온 royal, 라틴어에서 온 regal이라는 동의어를 갖는다. 이처럼 영어는 풍부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운율에서는 이태리어와 비교할 수 없이 빈약하다. 이태리어는 라틴어를 직접 모태로 하고, 따라서 명사나 동사의 어미가 체계화되어 있다. 이태리어 명사나 동사는 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운율적이다.

    그 결과 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세 줄 한 연(Terza Rima)형식을 갖춘다는 것은 영시에서는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러한 작품을 한국어 산문으로, 그것도 전혀 형식미가 없는 요약본으로 번역을 한 나는 진심으로 자괴감이 든다: 역자 주). 이러한 이유로 신곡을 영역한 많은 번역자들이 세 줄 한 연 형식을 회피하거나 또는 운을 무시한 산문으로 번역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로버트 핀스키(Robert Pinsky: 1940~ .미국의 시인, 문학평론가)가 Terza Rima 형식으로 신곡 번역을 시도한 바가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반 운(Half-rhymes: Fire처럼 마지막 자음을 발음 할 때 나는 모음에 액센트를 주는)어휘의 사용과 많은 문장을 생략하는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이를 읽는 독자들은 Terza Rima의 형식미를 느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단테 시 형식에 관한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단테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C)

   번역:  박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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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te Alighieri (c. 1265-1321):
        이태리 시인, 작가 겸 철학자. 플로렌스 출신. 신곡Comedia Divina의 저자. 신곡은 라틴어가 아닌 이태리어로 쓰여진 중세의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시 가운데 하나임. 라틴어로 시를 쓰던 시대에 그는 이태리어 속어로 썼음. 신곡에서 쓴 그의 이태리어는 현대 이태리어의 초석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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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Demian 


               by

     Hermann Hesse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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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선과악,  의지.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도움으로 에바 부인 즉, 그가 추구하는 이상에 도달하는  자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의 이야기임. 사람은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데미안으로 상징되는 부모님이나 스승 등의 도움으로 자아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싱클레어는 우리들 자신이며 이 소설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

등장 인물:

 에밀 싱클레어 Emil Sinclair:
    소설의 주인공. 소설은 그의 열 살 나이 때부터 하이틴 시절까지의 지적 성장을 다룬 이야기임. 어른이 된 싱클레어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 중요했던 젊은 날의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음.

막스 데미안 Max Demian:
    정신적으로 조숙한 인물. 싱클레어가 초등학교 시절에 만나는 인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인물. 싱클레어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에바 부인 Frau Eva:
    데미안의 어머니.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물.  사랑과 아름다움, 완벽성을 상징하는 여인. 싱클레어가 추구하는 이상이 의인화된 인물.

베아트리체 Beatrice:
    싱클레어가 기숙학교 교정에서 마주친 소녀. 사랑의 상징으로 싱클레어 그림의 영감을 준 인물. 남녀 모두의 신체적 특성을 갖춘 인물로서 이는 상반되는 두 영역을 상징함.

피스토리우스 Pistorius:
    싱클레어 기숙학교 소재 마을의 교회 풍금 연주자. 아브라삭스에 관해 많은 것을 싱클레어에게 가르쳐 주는 인물.

아브라삭스 Abrasax: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고대의 신. 싱클레어의 의식을 기독교의 신보다  더 지배한다.

프란츠 크로머 Franz Kromer:
    싱클레어의 순수성을 망쳐 놓은 소년. 이 소년의 악행으로 인해 데미안과 상클레어가 결속하게 됨.

크나우어 Knauer:
    싱클레어가 자신의 멘토가 되어 주기를 원하는 소년.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벡 Alfons Beck:
    싱클레어가 기숙학교에서 만난 소년. 싱클레어로 하여금 술집 등 비행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인물.

 ~~~~~~~~~~~~~~~~

제1장: 두 세계

    소설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 때 겪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자세히 진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저 그는 당시 그가 알고 있던 두 영역, 즉 어두움과 빛, 밤과 낮의 세계에 대해 말을 한다. 낮의 영역은 모든 “선함”, 올곧음 그리고 기독교의 세계이지만 밤은 온갖 추문과 비밀, 명정酩酊과 살인, 기만과 불법적인 일들의 세계라고 했다. 빚의 영역은 싱클레어 부모님과 누나들의 영역이라고 했다. 자신은 빛의 영역에서 살고 있지만, 어두움의 영역에 호기심이 있고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두 명의 이웃 소년들과 놀이를 하고 있는데, 키가 큰 소년이 다가왔다. 열세 살은 되었을까, 튼튼하고 우악스럽게 보이는 소년이었다. 양복집 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에다 가족 역시 소문이 나빴다. 싱클레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프란츠 크로머였다. 따라서 싱클레어는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크로머는 벌써 어른이 된 듯 젊은 공장 근로자들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냈다. 싱클레어는 마음이 몹시 불안했는데, 아버지가 아시면 그와의 관계를 금지시킬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프란츠라는 아이 자체를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싱클레어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고, 다른 아이들 대하듯 크로머를 대했다. 크로머가 명령을 했고 아이들은 따랐다. 그를 따라 아이들은 강둑으로 올랐다. 크로머는 앞이빨 사이로 침을 쏘아 목표물을 맞히기도 했다. 소년들은 각자 행한 짓궂은 장난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싱클레어는 말없이 조용히 있었지만 또한 자신의 침묵이 크로머를 화나게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따라서 그도 이야기를 하나 했다. 물방앗간 옆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는, 사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그 일이 사실임을 하나님께 맹서하라고 윽박질렀고, 싱클레어는 사실이라고 했다. 사과 도둑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과 헤어진 싱클레어도 안도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그러나 집까지 뒤따라 온 크로머가 말하기를 그 사과 도둑질 사건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더구나 과수원 주인이 도둑을 잡는 데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다. 자신은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싱클레어로부터 받고 싶다고 했다. 만일 그 다음 날 2마르크를 가져온다면 싱클레어의 사과 도둑질을 눈감아 주겠다고 했다. 싱클레어는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지만 크로머는 귀도 기우리지 않았다. 둘은 그다음 날 방과 후 시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싱클레어가 두려워한 건 그다음 날이 아니었다.

     암흑으로 빠져드는 비탈길을 걷는 듯한 두려운 기분이었다. 자신이 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불러올 것이고, 형제자매와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라는 생각, 그들을 속이는 거짓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는 아버지의 모자를 보았고 그 순간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단은 아버지의 몫이고, 자신은 처벌을 받을 것이며 참회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다음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비밀이라는 빚더미로부터 혼자의 힘으로 벗어나기로 했다.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는 듯하고, 앞으로는 언제나 악의 편에서 악에 기대어 악의 명령에 따라 살며 악의 일원이 될 터였다.

     아버지는 신발을 더럽혔다고 꾸지람을 했고 그는 이를 기쁘게 생각했다. 신발로 인해 더 중한 잘못을 감출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뭔가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아버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시 아버지의 무지를 경멸했다. 더러운 신발은 사소한 문제이다. 사소한 문제로 자신을 야단친 것이다. “아는 것이 그 것뿐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을 자백해야 하는데 빵을 훔쳤다고 말하는 범죄자 같은 심정이었다.

     다음 날 싱클레어는 몸이 아파 결석할 수 있었다. 크로머와 열한 시에 약속이 있었으므로 돼지 저금통을 깼다. 모두 65페니였다.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 이 돈이라도 가지고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로머가 화를 내며 그 돈을 받았지만, 나머지 1마르크 35페니를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 후 싱클레어는 그 돈을 마련할 수가 없어 크로머가 시키는 치욕스러운 일을 해야 했다.

제2장: 카인

     싱클레어의 학교에 막스 데미안이라는 학생이 새로 왔다. 데미안의 어머니는 부유한 미망인으로, 데미안은 싱클레어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어른처럼 의젓했다. 어느 날 성경 공부 시간에 데미안은 글짓기를 했다. 수업이 끝난 다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다가와 둘은 대화를 나눴다. 싱클레어의 집안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데미안은 이미 좀 알고 있는 듯했다. 싱클레어네 집 현관문 위의 새매형 문장紋章이 좀 이상하며 흥미를 일으킨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싱클레어는 자세히는 모르나 오래된 집이고, 과거에는 수도원에 속한 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데미안이 갑자기 크게 웃더니 싱클레어에게 오늘 공부한 카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교실에 있었다고 했다. 싱클레어는 공부한 것 치고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질문이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데미안이 그의 등을 다정스럽게 토닥이며 말하기를 카인에 관한 선생님의 이야기는 교실에서 배운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느님이라든가 죄 등 일반적인 이야기만 했다는 것이다. 카인의 이야기는 달리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대부분 옳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면 이해가 더 쉽다고 했다.

    카인의 이마에 난 표시는 인격을 나타내는 그 이상의 것으로,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고 했다. 사람들이야 진정 보배로운 인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므로, 카인의 이마에 난 표시를 악마를 뜻하는 표시로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카인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를 헐뜯고 모략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유일한 보복 방법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마의 표시가 악마를 뜻한다는 생각은 약자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이제 그런 생각은 끝을 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데미안의 남과 다른 생각에 매료된 싱크레어는 그와 헤어진 후에도 오랜 동안 그가 말한 주제를 생각했다.

     크로머는 계속 더욱 심한 말로 싱클레어를 괴롭혔다. 싱클레어는 2마르크를 그에게 주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했고 그때마다 크로머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를 기화로 싱클레어를 더욱 갈취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누나를 데려오라고 했다. 겁에 질린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달려갔다. 지난번 카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이후 둘은 한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크로머와의 관계에 관한 싱클레어의 말을 데미안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는 크로머가 무엇인가 싱클레어의 약점을 잡아 옭아매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크로머로부터 벗어나되 달리 방법이 없으면 죽여 버리라고 했다.

     물론 싱클레어는 죽여 버리라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데미안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 싱클레어는 거리에서 우연히 크로머를 마주쳤다. 겁을 먹은 표정으로 크로머가 뒤로 돌아 뺑소니를 쳤다.

     크로머로부터 해방된 기쁨에 겨워 싱클레어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데미안을 찾았다. 어떻게 크로머를 쫓아버렸는지 알고 싶었으나 데미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모든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크로머로부터 해방되어 부모님의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데미안으로부터도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여섯 달 후 싱클레어는 아버지에게 카인의 이마에 난 표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짓되고 오래된, 이단에 관한 것이라고 무시했다.

 제3장: 도둑질

     싱클레어는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는 어린 날 자신의 순결과 부모님으로부터 그를 갈라놓았던 어두움의 세계로부터 받은 영향을 회상한다. 그는 성인이 되면서 갖게 된 성적 욕망을 어떻게 헤쳐 나아갔는지,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이 가르쳐 준 가치들, 그러나 슬프게도 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던 가치들과 이러한 욕망을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를 터득한 일을 말했다.

     데미안과의 관계는 수년 동안 겉돌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수업을 들었고, 데미안도 같은 반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의식적으로 피했는데, 이는 크로머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준 고마움에 대한 채무감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대화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반해 그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져 갔다. 과거에 있었던 그와의 결속감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카인과 아벨에 관한 목사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그가 카인의 이마에 난 표시를 이야기하자,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들은 과거를 생각하고는 곧 자리를 가까이 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서로의 좌석을 데미안이 싱클레어 옆으로 옮겨 앉은 것이다.

     싱클레어는 견진례 수업이 즐거웠다. 수업 중 데미안이 시선을 보내면 싱클레어는 강의 내용을 선생님께 질문했다. 그밖에도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선생님이나 학생들과 심리적인 게임을 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데미안의 영향력은 다른 학생들을 지배하는 듯했다. 어떻게 그처럼 다른 학생들을 꼭두각시 부리듯 할 수 있는지 데미안에게 물었다. 싱클레어의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집중력이 충분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또 누구든 뜻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이용하여 싱클레어의 옆 자리로 옮길 수도 있었고, 선생님을 뚫어지게 응시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싱클레어는 신앙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종교적 규범을 지키는 일상생활은 존중하고 있었다.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해석을 달리, 재미있게 하고자 했다. 어느 날 십자가에 관한 수업이 끝난 후 데미안은 좀 급진적인 제안을 했다. 너무 급진적이라서 -반드시 성스러워야 하는 그 무엇- 싱클레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데미안이 계속 압박을 가해 왔다. 성경상의 하나님은 모든 선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존재이지만, 또한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 무엇이라고 했다. 사람은 각자 마귀를 숭배하거나 아니면 선과 악을 모두 관장하시는 하나님을 숭배해야 한다고 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생각, 선과 악 두 세계가 있다는 자신의 깊은 생각을 데미안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가 이 사실을 말하고자 했으나, 데미안이 말을 중단시키고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싱클레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곧 견진례가 다가왔으나 싱클레어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면 그는 기숙학교로 갈 예정이었다.

 제4장: 베아트리체

    싱클레어는 기숙학교를 찾아갔다. 주소가 다만 St.3/43/4로 되어 있었다. 그즈음 그는 자신의 순결을 잃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했으나 또한 이 순결이라는 것에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가치 판단을 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동안 부모님의 감시 속에 즐거운 일들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는 데미안이 보고 싶었지만, 또한 그의 지성으로 인해 자신의 자존심이 받은 상처 때문에 기분이 꺼려지기도 했다.

     기숙학교에 입학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싱클레어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 길에서 알폰소 벡을 만났다. 벡이 근처의 술집으로 가 포도주를 마시자고 했다. 술이 약한 싱클레어는 곧 혀가 풀렸다. 카인과 아벨에 관해 그리고 데미안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했다. 벡은 여자 후리는 법과 싱클레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쾌락의 세계에 대해 말했다.

     술에 취해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연히 뒤탈이 났다. 싱클레어는 술꾼들과 어울려 술집을 다녔고 여인들을 낚았다. 그러나 그 여인들과 결코 성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진실로 정신적인 사랑을 원했고, 육체적인 관계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싱클레어의 매음이 학교에 알려졌고, 퇴학의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두 번씩이나 학교로 찾아와 그에게 훈계를 했다. 그해 성탄절 휴가 때 집에 갔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 어두운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느 날 학교 옆 공원에서 싱클레어는 한 소녀를 보았다. 눈에 띠는 소녀였다. 그 소녀와 만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그는 그녀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불렀고 거의 숭배를 하고 있었다. 싱클레어의 행동이 곧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술집에 다니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집중했다. 그의 언행이 보다 진지하고 엄숙해졌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느 날 그는 소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보니, 그 얼굴은 남자와 여자의 두 모습을 갖춘 것으로 싱클레어에게는 바로 하느님의 얼굴이었다. 후일 그는 그것이 바로 데미안의 얼굴이었음을 알았다.

     후일 노인이 된 싱클레어는 그 그림으로 인해 더욱 데미안을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싱클레어는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데미안에게 달려갔던 것이다. 둘은 함께 거리를 걸었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술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새로 생긴 음주 습관을 인정하지 않는 듯 했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자기 집 현관문 위 새매 형 문장紋章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는 그 새매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냈다.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어느 날 교실에서 싱클레어는 책에 끼어 놓은 종이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쪽지에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먼저 하나의 세계를 깨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나른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Abraxas”'라는 글귀가 있었다. 싱클레어는 몇 번이고 그 글귀를 읽었다. 서명은 없었지만 데미안으로부터의 것임이 분명했다. 싱클레어가 보낸 새매 그림에 대한 답장이었던 것이다. 그의 뜻을 알고 뭔가 가르치려고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과 아브라삭스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다. 이에 대해 싱클레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이 끝났다. 다음 수업은 오후에 있었다. 대학에서 온 젊은 조교 폴렌 박사 지도하에 헤로도투스Herodotus를 공부할 시간이었다. 그는 젊고 소탈하여 학생들이 좋아했다. 싱클레어의 귀에 헤로도투스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때 폴렌 박사의 한마디가 벼락치듯 싱클레어의 의식을 깨웠다. 그가 큰 소리로 '아브라삭스'라고 했던 것이다. 폴렌 박사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오래된 풍습이나 학설, 제도, 풍습 등에 대해 여러 종파나 학파, 신비주의자들이 취하는 관점을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옛날에는 과학이라는 걸 몰랐고, 따라서 고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철학적, 신비주의적인 말이나 이론으로 사람들의 근심걱정을 덜어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탄의 마술 같은 사기극이 벌어져 과오와 범죄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기극도 고귀한 선행자가 있는 바, 어떤 깊은 사유에 토대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삭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의 옛 마술과 관련을 맺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몇몇 미개한 종족이 믿고 있는 어떤 악령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브라삭스는 더 깊은 뜻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이름을 하나님과 사탄 간의 화해를 상징하는 어떤 신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강의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탄의 화해” 라... 이 말은 싱클레어의 내면을 흔들어 놓았다. 그 말은 이미 데미안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다. 진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나 다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반, 즉 “빛의 세계” 만을 대표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전 세상을 찬양해야 하며 그렇게 할 수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이기도 한 하나님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배로 사탄에게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며 사탄인 '아브라삭스'라는 신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즈음 싱클레어는 비슷한 내용의 꿈을 계속 꾸었는데,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현관 위에 빛나는 새매 문장을 보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머니가 다가와 껴안으려고 하면 어머니가 아니었다. 데미안, 그가 그린 데미안 같은 모습이었다. 곧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므로 싱클레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의사나 변호사, 사업가가 되겠다는 등등..., 그에겐 그러한 계획이 없었다. 오히려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진정한 자아”에 따라 살고 싶었다. 그러한 삶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싱클레어는 점점 더 고독해져 갔다.

     마을을 거닐며 싱클레어는 조그만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풍금 소리를 가끔씩 듣곤 했다. 어느 날 그 교회 앞을 지나다가 들려오는 풍금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우렸다. 몇 주에 걸쳐 그렇게 풍금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교회를 나서는 풍금 연주자의 뒤를 따라 갔다. 바로 들어간 그를 따라 그의 옆에 허락도 없이 앉았다.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고, 싱클레어는 아브라삭스 이야기를 꺼냈다. 풍금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가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느냐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싱클레어는 자신의 경험과 데미안이 남긴 쪽지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피스토리우스는 자신의 풍금 연주를 듣도록 싱클레어를 교회로 초대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은 신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집어치웠고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다음 만났을 때 피스토리우스는 인간성에 대해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들은 인간성을 너무 좁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들은 인간성을 너무 좁은 의미로 정의한다고 했다. 사실 인간성은 정보라는 거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때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 했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후일 노인이 된 싱클레어는, 당시 피스토리우스의 말을 듣고 자신이 어떤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현상을 보다 명확하게, 독립적으로 보도록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자신이 꾼 꿈을 말했더라면 그 꿈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는 데 그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싱클레어는 더욱 자유로워졌던 것이다.

 제6장: 야곱과 대천사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와 교제를 할 당시의 자신에 대해 회상했다. 당시 그는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지만 자기 발견과 자신의 성장을 위해 몰두하고 있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의 롤 모델로서 언제나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고력을 정밀하게 다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두 사람은 모두 아브라삭스를 “숭배”했고 꿈, 욕망,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해 토론을 했다. 피스토리우스는 말하기를 영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싱클레어로서는 이 말에 확신이 서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피스토리우스는 경우에 따라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데미안이 한 말과 같아 싱클레어는 충격을 받았다.

     어느 날 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싱클레어는 학급 친구인 크나우어를 만났다. 크나우어는 자기가 하고 있는 어떤 영적 훈련에 대해 말을 했다. 자신은 독신자로서 영적 생활을 하려면 독신자여야 한다고 했다. 성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이는 독신생활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 욕망을 억제하기가 어려우니 도와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싱클레어는, 우리는 누구나 서로 도울 수 없으므로 바로 자신을 믿고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크나우어는 혐오의 눈빛으로 얼굴을 찡그리고는"너야말로 진정한 성인이다. 너는 사악한 도구를 몸에 감추고 현자처럼 행동했지만, 나처럼 더러운 일을 몰래 한 자이다. 너나 나나 돼지나 다름없다. 우리들은 모두 돼지다“ 라고 외쳤다.

     집으로 돌아온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에 대해 동정심과 혐오감이 겹쳐 병이 난 느낌이었다. 방안의 그림을 정돈하고서야 이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현관문, 새매 문장, 어머니, 그리고 감히 바라보기 힘들었던 어느 여인이 꿈속에 나타난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바로 기억을 더듬어 그 여인을 그렸다. 그 그림을 벽에 걸었다. 그림은 데미안의 모습이기도 했고 자신을 닮기도 했다. 그림의 한쪽 눈이 다른 쪽 눈보다 높게 그려져 있어, 그 앞에 선 싱클레어를 불길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림에게 묻기도 하고, 비난도 하고, 쓰다듬기도 했으며, 그 앞에 기도도 드렸다. 어머니라고도 불렀고, 연인, 매춘부라고도 했으며, '아브라삭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피스토리우스의 말, 데미안이 한 말들이 생각났다. 언제 그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었지만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바로 하나님의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말(복을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창세기 32장26절)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밤잠을 못 이루고 무슨 힘에 끌린 듯 거리로 나아갔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을 찾아 바람처럼 거리를 지나 광장을 건너 시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창녀촌이었다. 창들을 통해 불빛이 새어 나왔고, 멀리 도시의 건물들이 정적 속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크나우어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사과를 했다. 네, 닷새 전이던가? 오래된 옛날 일 같았다. 그는 자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 자살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새벽까지 기다려 볼 예정이라고 했다. 싱클레어가 그의 팔을 잡고, 이제부터 아무 말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그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으며, 자신들은 돼지가 아니며 인간이고 신들과 싸우기도 했으며 신들의 은총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한 후 둘은 침묵 속에 함께 걸었다. 날이 밝아서야 싱클레어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은 학기 중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와 함께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이상형의 여인에 관해 온 신경을 썼고,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했다. 크나우어가 그의 주위에서 맴돌았으나, 결국 둘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가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가 현자도 아님은 물론 본받을 만한 지도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의 말은 대부분 무용지물임을 알았다. 무의미하고 생명력이 없는, 일반적인 개인의 경험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느낌을 피스토리우스에게 말하고, 그를 “고물 수집가”라고 꾸짖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의 비난을 받아들였고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제 둘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또 그들이 토론한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즉 아브라삭스를 이 세상으로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싱클레어는 이제 지도자를 잃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장님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내면으로부터 폭풍우가 일고 발걸음마다 위태로웠다. 과거의 모든 행적을 삼켜버린 깊고 어두운 심연뿐이었다. 그때 데미안을 닮은, 그의 운명을 읽어 줄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모습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종이 위에다 지도자가 자신을 버렸음을, 이제 암흑 속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썼다. 그 편지를 데미안에게 보내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또 보내려고 하면 매번 같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작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알았고, 마음속으로 그 기도를 쉬지 않고 했다. 그러자 그는 기도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를 어렴풋하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철학을 한 학기 공부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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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제6장부터 8장까지는 은유법에 따른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므로,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추가 정보가 필요함. 따라서 각 장에서 본문이 끝난 다음 <  >로 묶은 부분은 그 장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별도의 자료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 특히 6장에 등장하는 살인이라는 말은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행동임. 이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싱클레어와 피스토리우스의 급진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음. 

 싱클레어가 그린 꿈속의 여인이 부분적으로 자신을 닮았다는 사실은 향후 싱클레어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를 상징하는 것임. 즉, 그가 여성적이 되어 갈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 싱클레어는 이 그림과 닮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닮아 간다. 이 여인은 그가 지향하는 이상理想을 뜻하는 것임. 이 그림은 싱클레어가 이상에 접근하고 있음을 상징하며, 따라서 그의 모습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이상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싱클레어와 크나우어와의 관계도 주목할 만한 소설적 구성임. 소설 전반에 걸쳐 싱클레어는 자신을 지도해 줄 지도자를 찾고 있다. 싱클레어의 멘토로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벡 등이 있다. 크나우어는 싱클레어가 자신의 멘토가 되어 주기를 원한다. 싱클레어의 지도와 도움을 원하고, 자살을 생각할 때도 싱클레어를 찾는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필요했듯이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두 관계는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싱클레어는 멘토가 필요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멘토로서 두 역할을 하고 있으나 멘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크나우어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걸 보여 주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상징성을 띠는 이름으로 고대 그리스의 이름이다. 싱클레어는 그가 오직 과거의 것만 가르쳐주고 본질적인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다 현대적인 이름인 “데미안”과는 대척되는 피스토리우스는 그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름이다. 제6장의 말미에서 싱클레어는 “혼자 설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메시지를 데미안에게 보내려고 하다 말았다. 이는 싱클레어의 역할이 지극히 불확실함을 말하는 것이다. 보내지 않을 것을 왜 쓴 것일까? 홀로 서기도 무서웠고, 그 사실을 데미안에게 알리기도 무서웠던 것이다>

 제7장: 에바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아닌 어느 노부인이 살고 있었다. 데미안의 가족에 대해 물었다. 데미안의 가족을 잘 기억하고 있으나 사는 곳은 모른다고 했다. 싱클레어의 물음에 답하려는 듯 오래된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사진첩에는 어느 여인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싱클레어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가 꿈꾼 바로 그 여인이었다. 큰 키에 남성답기도 한, 데미안을 닮은 모습, 그러나 모성애를 띤, 엄격함과 깊은 열정, 아름다움과 매력, 범접할 수 없는 위엄, 수호신인 동시에 어머니이며 운명이고 연인과 같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갖춘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후 싱클레어는 거리를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저녁 가을바람이 불고 거리의 술집으로부터 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두 남자가 그의 뒤에서 걸어왔다. 데미안과 그의 일본인 친구였다. 데미안과 재회를 한 것이다. 일본인 친구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 준 다음, 둘은 걷고 또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인류를 타락시킨 소위 “집단 본능”을 이야기하며 둘은 서로 생각이 같아 결속하고 있음을 알았다. 데미안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알려주고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싱클레어는 흥분과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마침내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으로 갔다. 하녀가 응접실로 그를 안내했다. 얼굴을 들어 올려다보았다. 눈에 익은 그림이 문 위에 걸려 있었다.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황금빛 새매의 머리 그림이었다. 그밖에도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가 그려 보낸 그림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그때 그림 아래 문을 열고 검은 드레스의 키가 큰 부인이 나타났다.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였다. 그는 충격으로 인해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데미안을 닮은 얼굴,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아름답고 위엄이 있는 부인이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인의 눈빛은 그가 꾸었던 꿈의 실현을, 그녀의 영접은 싱클레어의 귀향을 뜻하는 것이었다.

     싱클레어가 두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따뜻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침내 싱클레어가 그 부인을 만난 것이다. 그녀가 환영한다는 말을 했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달콤한 포도주를 마시는 듯했다. 온화한 얼굴, 검고 깊은 눈동자, 선명하고 무르익은 입술 그리고 여왕의 풍모를 띤 양미간에는 바로 그 “표시”가 있었다.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싱클레어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전 생애를 걸어왔고 마침내 바로 자신의 가정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인은, 그런 말은 있을 수가 없으며 다만 우정이 돈독하면 그런 사람들 간에는 잠시 세상이 한 가정처럼 보일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싱클레어가 그녀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에서 그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을까를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는 데미안과 같기도 하고 동시에 완전히 다르기도 했다. 아들보다 원숙하고 따뜻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늙은 날의 막스 데미안이 어린 날의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도 성인의 아들을 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고 그녀의 젊음과 매력이 빛을 발하여 그녀의 얼굴, 머리털, 흰 피부, 입술에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그가 꿈에서 본 이상의 당당한 모습으로 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선물한 새매 그림은 자신에게 그리고 데미안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기쁨이었다고 했다. 그 그림을 받고 그가 자신들을 찾아올 것임을 알았고 기다렸다고 했다. 어느 날 데미안이 학교로부터 돌아와 이마에 “표시”를 한 소년이 있고 그를 친구로 삼아야 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소년이 바로 너, 싱클레어라고 했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열여섯 살 때 데미안을 우연히 만난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싱클레어는 당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베이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를 만난 사실도 이야기했다. 데미안과의 결속,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도 말했다. 때때로 자살도 생각해 보았고 누구에게나 이처럼 삶이 어려운 것이냐고 물었다.

     부인이 싱클레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미풍처럼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태어나는 일은 어렵다고 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를 쓴다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면 어렵기만 했었느냐고 아름다운 일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보다 쉽고 아름다운 길을 원할 수도 있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싱클레어는 어려운 길이었다고,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어렵기만 했었다고 대답했다. 부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꿈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그에 이르는 길이 더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꿈이라는 건 지속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꿈은 다른 꿈을 가져오게 마련이고, 따라서 어느 한 꿈에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부인의 이 말에 싱클레어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은 하나의 경고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부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자신의 꿈이 지속될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원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그린 새의 그림이 어머니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이미 그 슬하에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부인은 그 꿈이 운명이라면 그에 충실해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순간 싱클레어는 몰려오는 슬픔과 함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창가로 가 멀리 내다보았다. 그때 등 뒤로부터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도주가 넘치는 술잔처럼 부드러움과 조용함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싱클레어, 너는 아직 어린아이이며, 운명이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엔가 그 운명은 네가 꾼 꿈, 그리고 그 꿈을 바꾸지 않는 한 그 꿈은 전적으로 너의 운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싱클레어가 자세를 가다듬고 그녀를 보았다. 부인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자신은 친구가 별로 없으며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자기를 “에바 부인”으로 부른다고 했다. 싱클레어가 원한다면 그러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부인이 싱클레어를 창가로 안내했다. 창을 열고 정원을 가리키며, 막스 데미안이 그곳에 있으니 보라고 했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들어보니,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그 밑에 데미안이 있었다. 나뭇가지로부터 빗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싱클레어가 그에게 다가갔다. 데미안은 웃통을 벗은 채 나무에 매단 샌드백을 치며 권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넓은 어깨, 사내다운 얼굴, 들어올린 팔은 단단한 근육질이 불거져 강력해 보였다. 엉덩이와 어깨, 팔의 움직임은 내뿜는 물줄기처럼 힘에 넘쳤다. 싱클레어가 다가가 무얼 하느냐고 물었고 데미안은 일본인 친구와 권투 시합 약속이 있어 연습 중이라고 했다.

     데미안이 윗옷을 입으며 말하기를, 방금 자기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싱클레어는 그렇다고 대답한 후, “에바 부인” 이라는 칭호는 부인을 존경하기에 걸맞다고 했다. 부인은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와 같으며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데미안은 싱클레어야말로 첫 만남에서 그녀로부터 그 호칭을 들은 첫 사람이라고 했다. 이날로부터 싱클레어는 이마에 “표시”를 한 사람으로서 데미안의 집을 아들처럼, 형제처럼, 연인처럼 드나들었고, 그 집 정원의 큰 나무를 볼 때마다 커다란 행복감을 느꼈다.

     신념과 관심사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에바 부인” 서클에 있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자기실현에만 두 사람은 관심을 기울였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예측하기를 이제 세상은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고 이상은 깨져, 결국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망령된 생각 속에서 싱클레어와 에바 부인의 관계는 점점 돈독해져 갔다. 부인은 싱클레어의 사상과 욕망을 모두 아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싱클레어의 사랑에 관해 그와 논쟁을 벌였고, 그 사랑을 얻으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쉽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은 간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랑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사랑은 끌려가지 않고 끌어당긴다고 했다. 공짜로 줄 선물은 없다고 했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아직도 그녀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지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격랑 속에서 방황했고 검은 구름 속에서 자신의 꿈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참매”를 보았다.

 <제7장에서는 니체의 사상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집단 본능 ”에 관해 토론한다. 집단 본능이란 니체Nietzsche의 저서“선과 악을 넘어Jenseits von Gut und Böse”에 등장하는 집단에 대해 개인의 맹목적 복종을 뜻하는 용어이다. 니체에 따르면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고 했다. 나머지 일반 대중은 종교 또는 타인이 그들에 대해 정해 놓은 법이나 규칙을 따르는 무리라고 했다. 지극히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 규칙이나 법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거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미안이나 싱클레어는 이 나머지를 ”집단“이라 부르며 자신들은 예외적 인간, 즉 초인Übermenschen으로 자칭하고 있다.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그를 금방 알아보았다. 이는 그가 어떤 표시, 누구나 타고나는 고유의 표시를 그녀가 읽었다는 말과 같다. 그 표시는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이 왜 데미안을, 에바 부인을, 또 자신을 닮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장의 첫머리에서 데미안도 그 표시를 알았다. 그가 싱클레어에게 말하기를 그 "표시"는 그들의 표시로, 카인의 표시로 불렀다. 그 표시는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것으로 무어라 특정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등장인물들이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다. 이는 헤르만 헤세가 그의 작품에서 흔히 쓴 신비주의적 작풍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이는 두 사람의 관계 중 한 단면을 -그녀가 싱클레어를 관찰하고 보호한다는-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그들의 관계가 보통이 아닌 다면성을 띠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이 로맨틱하고 모성적인 사랑은 또한 사회적 규범이나 금기 사항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제7장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폭풍우는 여러 상징이 겹쳐진 것이다. 먼저, 싱클레어가 본 참매 그림은 자유를 상징하나 또한 혼란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데미안이 꿈꾼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자유와 혼란이 무언가 큰 일, 즉 전쟁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전체적인 분위기는 등장인물들이 깨닫지 못하는 상징이 흐르고 있다. 폭풍우 가운데 데미안이 사라지고 싱클레어는 구름 속에 있는 참매를 목격한다. 작가는 폭풍우를 통해, 일련의 사건들을 더욱 혼란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

 제8장: 종말의 시작

    싱클레어는 여름 내내 대학촌에서 보냈다. 데미안과 함께였고, 에바 부인과 다른 서클 회원들은 강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는 대체로 평온한 시간을 보냈지만, 때때로 내면의 갈등이 일어 우울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그는 에바 부인에게서 위안을 받았다.

     어느 날 싱클레어에게 어두운 마음이 엄습했다. 모든 힘을 다해 에바 부인을 생각했다. 곧 데미안이 달려왔고, 이제 러시아와의 전쟁이 임박했다고 했다. 데미안은 이제 전쟁은 새로운 세상이 열릴 신호라고 했다. 데미안은 곧 소위로 징집될 것이라고 했다. 데미안이 말하기를, 전쟁이 발발하면 자기 또는 에바 부인을 찾으라고 했다. 에바 부인 역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되었고 데미안은 전선으로 갔다. 싱클레어도 전투에 투입되었다. 어느 날 밤 싱클레어는 보초를 서고 있는데 꿈을 꾸는 듯한 비몽사몽이었다. 에바 부인과 데미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마에 빛나는 카인의 표시를 한 에바 부인의 모습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 표시로부터 별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 한 별이 싱클레어의 몸에 맞았다. 싱클레어는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채 전쟁터에 누워 있었다.

     싱클레어는 간호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반의식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야 했다. 마침내 그는 부상병을 위한 시설로 후송되었다. 그가 누운 병상 옆에는 데미안의 병상이 있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프란츠 크로머를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두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데미안은 곧 퇴원을 할 예정이고, 어느 땐가 싱클레어는 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럴 경우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찰해야 할 것이며, 그러면 그곳에 데미안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가 싱클레어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고, 에바 부인으로부터의 키스라며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소설 첫머리에서처럼 싱클레어의 심리 상태가 급변한다. 행복한 마음이었다가 금방 자살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심리 변화는 소설의 주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고상하고 좋기만 한 데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오직 한 가지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인간 정서의 전 영역을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많은 경험을 통해 억제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과 그 변화를 진솔하게 말하고 있다.

     에바 부인의 이마로부터 쏟아져 내린 별들은 적의 공격을 뜻하고 싱클레어가 맞은 별은 바로 적탄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단계에서 작가는 싱클레어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의식 있는 독립적 인간으로 바뀌어 감을 묘사하기 위해 전쟁을 동원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이제 세상의 공포와 맞설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을 구질서에, 기독교적인 삶의 틀에 묶어두려는 자들과 싸울 준비가 된 것이다.

     좋든 나쁘든 자신의 인격을 숨김없이 말하려고 하는 사람처럼, 전쟁은 하나의 은유로 싱클레어가 이 세상에서 직면할 투쟁을 뜻한다.

     전쟁이 아무런 해결 없이 끝났다는 말은, 싱클레어가 이 투쟁에서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작가는 또한 전쟁이 데미안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이 책을 1917년에 썼고,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고 따라서 데미안이 처한 불확실한 일들을 기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데미안과 미진했던 일들이 해소되고 이제 싱클레어는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데미안이 크로머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사실을 언제나 특별한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사건은 이제 어린 날의 기억으로 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이제 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 이는 데미안이 한 말, 즉 싱클레어 앞에 그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 대신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 것이다. 싱클레어는 이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면 되는 것이다. 싱클레어의 변신이 완성된 것이다.> (C)

    번역: 박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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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헷세( Hermann Hesse; 1877-1962)

     독일 제국 슈바르츠발트의 변경 마을 Calw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함. 그는 성장기에 깊은 종교적 영향을 받음. 그의 부친은 루터파 경건주의자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사악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음. 그의 조부모, 부모는 극동 지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함.

    그는 성직자가 되리라는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음. 열네 살이 되던 해 Maulbronn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을 당함. 이후 그는 시련의 시기를 보냄.

     그는 학업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주변 인물들이 장애가 되었음. 그는 조숙하고 반항적인 기질이 있음을 교사가 지적한 바가 있고 학교를 몇 번씩 전학했음.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점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부친과 함께 보냄. 이때 동양 종교와 철학에 관한 부친의 저서를 비롯하여 많은 독서를 함. 내심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음.

     1904년 서른일곱 살 때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소설 피터 카멘진트Peter Camenzind를 발표함.

     1906년, Unterm Rad를 발표함. 이 소설 역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소년이 학교를 떠나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는 이야기임.

     1차 대전 기간에는 평화주의자로 반전 활동을 함. 전쟁이 끝난 후인 1919년 스위스에 영구 정착하면서 데미안을 발표했고, 이 소설은 대성공을 거둠. 이 시기 그는 새로운 영적 개념을 알고자 했고, 따라서 동방 종교에 관심을 가졌음. 이에 따라 아시아와 중동 지역을 여행함. 그 결과,

     1922년 싯달타Siddhartha를 발표함. 이 소설은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환경으로부터의 소외라는 주제를 다룸.

     1927년 발표한 Steppenwolf에서는 독일의 반유태주의, 빈곤, 영혼의 붕괴를 다룸.

     1943년, 마지막 작품인 The Glass Bead Game을 발표함. 이 소설에서는 평화주의, 동방 종교, 자각의 궁극적 목적, 계몽주의 등을 다룸.

     1948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62년 85세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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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oque Music        서양 음악의 역사는 바로 기독교 찬송가의 역사이고, 따라서 서양 음악은 교회 음악의 발전과 동일선상에 있다 . 많은 음악가들이 교회 음악 발전에 헌신함에 따라 서양 음악이 발전해 온 것이다 .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