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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Jane Eyre


          by

Charlotte Brontë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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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진정한 사랑과  자율성. 도덕과 쾌락의 균형.

등장 인물:

제인 Jane Eyre:
        소설의 주인공겸 화자. 지적이고 정직하며 평범한 소녀. 정의와 인간의 존엄, 도덕성의 편에 서 압제, 불평등, 고난과 싸우는 인물. 지적, 정서적 성취에 가치를 두며 성의 평등,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신념과 여성, 가난한 자에 대한 빅토리안 영국의 편견에 저항하는 인물.

로체스터 Edward Rochester:
        손필드 장원의 주인. 부유하고 열정적이나 비밀스런 삶의 배경을 가진 인물. 사회적 계급이나 재산, 격식 등에 개의치 않는 인물. 젊은 날의 무분별한 과오가 초래한 불행을 잊기 위해 유럽을 방황함. 불행한 결혼 생활로 동정을 받기도 하는 인물.

신진 St. John Rivers:
        목사. 제인이 방황할 때의 후원자.  타인과의 관계에서 냉정하고 고압적인 인물. 야심에 몰입하는 인물. 로체스터의 적대자(옛날 사도 성 요한이 아닌 일반인 이름의 경우 “Sinjin”으로 발음했음).

리드 부인 Mrs. Reed:
        제인의 가혹한 외숙모. 제인을 열 살 때까지 양육함. 남편이 자신들 자녀보다 제인을 더욱 아낌으로써 그녀의 제인에 대한 적개심이 죽을 때까지 지속됨.

베시 Bessie Lee:
        게이츠헤드의 하녀. 어린 제인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며 보살피는 유일한 인물.

로이드 Mr. Lloyd:
        약제사. 제인의 학교 입학을 권한 인물. 리드 부인의 모함으로부터 제인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줌.

조지아나 Georgiana Reed:
        제인의 아름다운 외사촌 자매. 리드 부인의 딸. 제인이 어렸을 때 학대를 하나, 이후 제인을 신뢰하며 친밀한 관계가 됨.

엘리자 Eliza Reed:
        제인의 외사촌. 조지아나의 동생. 정의롭고 신앙심 깊은 여인. 수녀가 됨.

존 John Reed:
        제인의 외사촌. 조지아나와 엘리자의 남동생. 어린 시절 제인에게 함부로 함. 성인이 되어 술과 도박에 탐닉함. 자살로 생을 마치는 인물.

헬렌 Helen Burns:
        제인의 학우. 자제력으로 불행을 견디는 인물. 제인의 품에서 결핵으로 죽음.

브로클허스트 Mr. Brocklehurst:
        잔혹하고 위선적인 로우드 학교 교장. 예수님의 고난을 설교하지만 학교 재산을 빼돌려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인물.

템플 Maria Temple:
        로우드 학교 교장. 제인과 헬렌을 연민과 자비로 가르침. 제인의 첫 롤 모델이 되는 인물.

스캣처드 Miss Scatcherd:
        로우드 학교 교사. 제인과 헬렌에게 가혹한 인물.

페어팩스 Alice Fairfax:
        손필드 장원의 가정부. 괴이한 웃음소리에 대해 제인에게 알려준 인물.

버다 Bertha Mason:
        로체스터의 아내. 흑인과 프랑스계 백인의 혼혈 여인으로 아름답고 부유하나, 후일 미쳐버리는 인물. 손필드의 숨겨진 방에서 그레이스 풀의 보호 하에 살아가는 인물. 화재로 불에 타 죽음.

풀 Grace Poole:
        버다의 보호자. 빈번한 음주로 인한 주의 소홀로 버다가 제자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인물. 제인이 손필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페어팩스 부인은 버다의 광기를 풀의 짓으로 돌려 말함.

아델 Adèle Varens:
        손필드에서 제인이 가르친 아이. 로체스터의 연인이었던 세린느의 딸. 로체스터가 데려왔지만 자신의 딸로 여기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세린느 Celine Varens:
        프랑스인 가수 겸 무희. 로체스터의 연인이었으나 그에게 불성실하고 돈에만 관심이 있던 여인. 그로 인해 로체스터와 헤어진 인물.

리챠드 Richard Mason:
        버다의 남동생. 손필드 방문 시 누이의 광기를 보고 상처를 받는 인물. 로체스터와 버다의 결혼을 폭로함으로써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식을 무너뜨리는 인물.

브릭스 Mr. Briggs:
        변호사. 리차드 메이슨을 도와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을 방해한 인물. 제인의 삼촌 존 에어가 죽은 후 그녀를 찾아 유산을 상속 받도록 도와 준 인물.

블랑슈 잉람 Blanche Ingram:
        아름다운 사교계 여인. 제인을 무시하고 돈 때문에 로체스터와 결혼을 시도하는 인물.

다이아나 Diana Rivers:
        제인의 사촌. 마리아와 신진의 자매. 친절하고 지적인 여인. 신진과 인도 선교를 하지 말도록 설득하는 인물. 독립적이고 지적인 인물로 제인의 롤 모델.

마리아 Mary Rivers:
        제인의 사촌. 다이아나와 신진의 자매. 친절하고 지적인 여인. 부친이 몰락한 다음 가정교사 일을 함. 다이아나와 마찬가지로 제인의 롤 모델.

로사 몬드 Rosamond Oliver:
        부유한 올리버의 아름다운 딸. 제인이 일하는 학교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여인. 신진을 사랑했지만 결국 부자 그랜비와 결혼.

존 John Eyre:
        제인의 삼촌. 제인에게 2만 파운드의 유산을 남기는 인물.

리드 Uncle Reed:
        제인의 외삼촌. 리드 부인의 남편. 제인을 아끼고 사랑한 인물. 부인으로부터 제인을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인물. 그러나 리드 부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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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어느 음울한 11월 오후, 부유한 리드 씨네 집 게이츠헤드의 응접실에 제인 에어라는 어린 소녀가 비위크가 지은 “영국 조류사”를 읽고 있었다. 제인의 외숙모인 리드 부인은 자신의 자녀들인 엘리자, 조지아나, 그리고 존이 제인과 함께 놀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존은 사나운 아이었는데, 제인이 가난한 집 고아로, 자기 어머니가 가엾이 여기어 함께 살게 되었다면서 툭하면 구박을 했다. 제인에게 책을 집어던져, 마침내 제인은 참지를 못하고 존과 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다. 리드 부인은 제인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남편이 죽음을 맞이했던 으스스한 “붉은 방”에 제인을 가두어 처벌키로 했다.

제2장:

        하녀 애봇과 베시 리가 제인을 데리고 그 방으로 갔다. 제인은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방에 같힌 제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라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그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을 리드 외숙부가 그곳으로 데려왔고, 그가 죽을 때 아내 즉 리드 외숙모에게 제인을 친자식 돌보듯 하라는 유언도 남겼음을 알고 있었다. 약속을 깬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외숙부의 유령이 갑자기 나타난 듯한 전율을 느꼈다. 제인이 무서워 비명을 질렀으나, 외숙모는 다만 제인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다. 제인은 두려움 속에 탈진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제3장:

        제인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누어있었다. 친절한 약제사 로이드 씨가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베시도 있었다. 그녀는 제인에게 함부로 하는 여주인 리드 부인을 책망하고 있었다. 제인은 며칠간 침대에 누워 지냈고, 베시가 곁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위로해주었다. 로이드 씨는 게이츠헤드의 생활에 관해 제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제인의 말을 들은 그는 곧 리드 부인에게 제인을 학교에 입학 시키라고 했다. 게이츠헤드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제인은 너무나 기뻤다.

        “붉은 방”에 누워 있던 동안 제인은, 베시와 애봇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자신의 과거를 보다 잘 알게 되었다. 제인의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였다. 제인의 어머니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도 그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제인의 외할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는 딸에게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질 않았다. 결혼 1년 후 제인의 아버지는, 그의 교구가 있는 가난한 마을을 방문 도중 발진티푸스에 걸렸고 그의 아내도 남편으로부터 전염이 되어 한 달 만에 부부가 모두 죽었던 것이다.

제4장:

        제인은 외숙모와 외사촌형제들의 학대를 견디며 학교 입학을 기다렸다. 마침내 로우드 여학교로부터 입학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제인은 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엄한 인상의 브로클허스트 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제인의 종교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시편이 지루하고 잘 모른다고 하자 화를 내었다. 제인이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있다고 그에게 외숙모가 말을 했고, 그는 그 말을 선생님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제인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 외숙모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제5장:

        브로클허스트 씨를 만난 4일 후, 제인은 오전 6시에 마차를 타고 로우드를 향해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고 비가 왔다. 이제 새 거주지가 될 우중충한 건물로 들어갔다. 다음 날 급우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일과표를 받았다. 일과표는 새벽부터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꽉 차있었다. 교장 선생님 미스 템플은 매우 친절했으나, 담임선생 미스 스캣처드는 화가 난 얼굴에 특히 헬렌 번스라는 어린 소녀에게 함부로 했다. 제인과 헬렌은 곧 친구가 되었다. 제인은 로우드가 고아 소녀들을 위한 자선 학교'라는 말을 헬렌으로부터 들었다. 이는 리드 외숙모가 아무런 경제적 부담 없이 자신을 이 학교로 보냈다는 걸 뜻했다. 또한 브로클허스트 씨가 학교 운영을 맡고 있으며, 미스 템플도 그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제6장:

        로우드에 도착한지 이틀 후, 물이 얼어 소녀들은 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제인은 그곳 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소녀들은 식사도 부족했고 과도한 일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설교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제인은 헬렌과 가까이 지냈고 특히 그녀가 아는 것이 많은데다가, 무엇보다도 스켓처드의 부당한 대우를 참을성 있게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했다. 헬렌이 말하기를, 자신은 원수를 사랑하고 고난을 받아들이는 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제인은 그 같은 부당함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강한 반대를 했지만, 헬렌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헬렌은 자신이 공부에 열중할 때에 고향이나 가족 생각 등 백일몽이나 꾸는 가엾은 학생이라고 하면서, 엄격한 생활을 수행하지 못하는 자신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제7장:

        로우드에서 제인이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브로클허스트 씨는 거의 학교를 떠나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제인은 마음이 대단히 불안했는데,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리드 외숙모의 모략을 그가 학교에 알리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제인이 실수로 식판을 떨어뜨리는 걸 본 그는 매우 화를 내며 조심성이 없다고 야단을 쳤다. 그러면서 네가 거짓말쟁이임을 학교에 알리고 올 터이니 그때까지 걸상 위에 서 있으라고 명령을 했다. 그날 내내 다른 학생들과 대화도 금지 시켰다. 그 같은 제인에게 헬렌이 지나가며 위로의 말을 하여 그 치욕의 날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제8장:

        오후 다섯 시가 되어 학과가 끝나고 학생들이 흩어지자 마침내 제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말할 수 없는 치욕감에다 이제 학교에서 자신의 명예가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헬렌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거의 모든 소녀들이 제인의 편에서, 거짓말쟁이라는 그의 모략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제인은 미스 템플에게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며, 게이츠헤드에서 어린 시절 당한 고통을 이야기했다. 미스 템플은 제인의 말을 믿는 듯 로이드 씨에게 편지를 써, 제인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제인과 헬렌에게 차와 과자를 주면서, 특히 제인에게 더 마음을 써 주었다. 며칠 후 제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답장이 로이드 씨로부터 왔다. 미스 템플은 제인의 결백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진 제인은 이제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미술에 뛰어났고 프랑스어 공부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제9장:

        봄이 되자 학교생활은 행복한 듯했다. 그러나 학교가 있는, 수목이 우거지고 습기 가 찬 작은 골짜기는 바로 발진티푸스의 진원지였다. 따듯한 기온으로 인해 반 이상의 소녀들이 병에 걸렸다. 제인은 병을 피할 수 있었고, 새 친구 마리아 앤 윌슨을 사귀었다. 발진티푸스는 아니지만 헬렌은 폐결핵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이에 제인은 크게 놀랐다. 어느 날 밤 제인은 헬렌이 누워 있는 미스 템플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헬렌을 보기 위해서였다. 헬렌이 말하기를, 별로 고통스럽지도 않고 이제 고통을 뒤로 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게 기쁘다고 했다. 그날 밤 헬렌이 죽었다. 그녀의 무덤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지만, 15년 후 희색 대리석 판이 무덤위에 놓여졌다. 아마 제인이 놓았을 것이다. 그 판에는 라틴어로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라는 묘비명이 쓰여 있었다.

제10장:

        학생들이 발진티푸스에 걸린 것은 브로클허스터의 태만한 학교 운영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따라서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섰다. 이후 학생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환경이  개선되고, 이후 6년간 제인은 우수한 학생으로서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로우드에서 교사로 2년간 근무를 한 후 제인은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미스 템플도 결혼을 하여 이미 학교를 떠난 상태였다. 제인은 가정교사로서의 일자리를 구했고, 곧 손필드라는 영지領地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으로 가기 전 베시가 제인을 찾아왔다. 그녀는 제인이 게이츠헤드를 떠난 후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했다. 조지아나는 에드윈 비어'라는 남자와 몰래 사랑의 도피를 하려고 했지만, 엘리자가 그 사실을 리드 외숙모에게 고자질을 하여 실패를 했다고 했다. 존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 제인의 작은 삼촌 존 에어가 7년 전 게이츠헤드에 나타나, 제인의 행방을 물었다고 했다. 로우드로 온 것을 알고 찾아오려 했으나 시간이 없어 오지를 못했고, 돈벌이를 위해 마데이라 섬으로 갔다고 했다. 제인과 헤어진 베시는 게이츠헤드로 돌아갔고, 제인은 새로운 생활을 찾아 손필드로 떠났다.

제11장

        제인은 밀코트에서 마차를 탔고, 그날 밤 마침내 손필드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집의 모습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라는 걸 알았다. 단정한 차림새의 나이든 페어팩스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은 편지에서 짐작한 것과는 달리 여주인이 아니고 하녀였다. 주인 로체스터 씨는 자주 여행을 하기 때문에, 페어팩스 부인에게 집 관리를 맡기고 있었다. 제인은 여덟 살짜리 프랑스 소녀 아델을 가르치게 될 것임을 알았다. 소녀의 어머니는 가수 겸 무희였다. 페어팩스 부인의 말에 따르면, 로체스터 씨는 기이한 인물로 폭력적인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때 돌연 집안을 울리는, 이상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페어팩스 부인이 하녀 그레이스를 불러,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 것과 지시 사항을 어기지 말라고 했다. 그레이스가 물러나자 페어팩스 부인이 말하기를, 그레이스는 침모로서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고 했다.

제12장:

        손필드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쾌적하고 편했다. 아델은 버르장머리가 없고 때로는 까다로웠지만, 공부에 열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제인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밤, 창가에 앉아 달맞이를 하고 있는데 말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언젠가 베시가 말한, 밤길 여행자를 겁주기 위해 노새나 개, 말로 모습을 바꾸는 가이트래쉬(Gytrash: 영국 전설에 등장하는 검은 개)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가 옆에 따라왔다. 말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제인의 눈앞을 조금 지나가던 말이 얼음판을 밟고 미끄러지자,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이 낙마를 했다. 제인이 달려가 그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자신을 소개했다. 중키에 가슴이 넓고, 검은 얼굴에 치켜진 눈썹이 화가 난 인상이었다. 서른다섯 살은 되었을까 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 온 제인은 곧 페어팩스 부인에게로 갔다. 그곳에 가 보니 양탄자 위에 말을 따라온 개가 누워 있었다. 제인의 물음에 부인이 대답하기를, 그 개는 로체스터 씨가 기르는 파이롯이라고 했다. 그는 방금 전 집으로 돌아왔는데, 말에서 떨어져 발목을 삐었다고 했다. 다름아닌 로체스터 씨였다.

제13장:

        다음 날 로체스터 씨는 제인과 아델에게 함께 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는 무뚝뚝하고 차가웠지만, 제인의 그림을 보고는 즐거워했다. 그가 차갑고 변덕스럽다고 제인이 페어팩스 부인에게 말하자, 부인은 그의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일이 있고, 따라서 부친이 사망하자 그의 형이 손필드를 상속 받았다고 했다. 형이 죽자 로체스터가 손필드 주인이 된지 이제 9년이 되었다고 했다.

제14장:

        로체스터가 손필드에 도착한 처음 며칠간, 제인은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로체스터는 식사 후 제인과 아델을 불렀다. 그는 아델이 오랜 동안 갖고 싶어 했던 선물을 주었고, 제인과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이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제인은 무심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가 횡설수설하자, 취한 것으로 제인은 생각했다.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그의 명령에 제인은 당황을 했는데, 특히 그와의 관계가 단순히 가정교사 일이 아니라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죄의 개념이나 용서, 부활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델의 엄마에 관한 말에 제인은 흥미가 일었고, 로체스터는 다음 기회에 자신의 일을 말하겠다고 했다.

제15장:

        얼마 후 로제스터는 지난 번 약속한대로, 자신과 아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델의 어머니인 프랑스 인 세린느 바렌즈와 오랜 세월의 관계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가수 겸 무희라고 했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은 걸 알고 헤어졌다고 했다. 아델이 그의 딸임을 세린느가 주장하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아델이 자신을 닮은 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세린느가 아델을 포기하자, 자신이 영국으로 데려와 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로체스터가 이야기한 그의 과거로 자신이 빠져든다는 생각에 제인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때 손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곧 복도로부터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려 밖을 보니, 로체스터의 방으로부터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제인이 달려가 보니 그의 침대 커튼에 불이 붙고 있었다. 물을 끼얹어 불을 껐다.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는 3층으로 방을 옮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가 생각한대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상한 웃음소리를 듣지 않았느냐고 제인에게 물었다. 그레이스 풀이 그런 식으로 웃는 걸 들었다고 제인이 대답했고, 이에 대해 로체스터도 바로 그렇다고 했다. 제인에게 생명을 구해주어 고맙다는 말과, 그 사건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제16장:

        다음 날 아침, 전날 밤의 비극적인 화재 사건이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제인은 경악했다. 하인들은 그가 촛불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고 믿었고, 그레이스 풀도 죄의식을 느끼거나 참회를 하지 않았다. 살인의도가 분명한 그 화재사건이 그처럼 간과되고 있음을 제인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무슨 이유일까? 그녀는 로체스터에게 동정심이 갔다. 그가 며칠 동안 손필드를 떠나게 되자 걱정이 되었다. 그는 블랑슈 잉람이라는 아름다운 부인과 동반하여, 어느 파티에 참석코자 집을 비운 것이다. 제인은 그 소식을 듣고 실망한 자신을 꾸짖었다. 그녀는 자신이 초상화를 그려 주었던 아름다운 블랑슈 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제17장:

        로체스터는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웠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유럽 대륙으로 떠날 것이라는 걸 알고 제인은 낙담을 했다. 페어팩스 부인에 따르면, 그는 일 년 이상 그곳에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부인은 로체스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3일 후 여러 명의 손님과 함께 오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제인은, 그 이상하고 자폐적인 그레이스 풀이 다른 하인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다른 하인들의 말을 엿들을 수도 있었다. 결국 제인은, 손필드에서 그레이스 풀의 역할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확신을 했다.

        마침내 로체스터는 우아하고 귀족적인 손님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제인은 그들과 합류하여 지켜보았다. 손님 중에는 블랑슈 잉람과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고, 그녀들은 제인을 하찮게 보았다. 제인은 그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로체스터가 만류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그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머무는 동안 매일 저녁 응접실로 와야만 한다고 했다. 그녀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그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시늉을 하며, 안녕이라는 말을 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18장:

        며칠 동안 손님들이 머물렀다. 로체스터와 블랑슈는 셔레이드 게임(Charade game: 몸짓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말로 맞추는 놀이)의 한 팀이었다. 제인은 그들의 몸짓을 보고, 서로 사랑은 하지 않으나 곧 결혼을 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블랑슈는 로체스터의 재산을 보고, 로체스터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사회적 위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메이슨이라는 낯선 사람이 손필드에 왔다. 멍한 눈에 행동이 느린 그를 보고 제인은 싫어했지만, 그를 통해 로체스터가 한 때 서인도제도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어느 날 저녁 한 집시 여인이 찾아와 점을 쳐주겠다고 했다. 블랑슈가 먼저 점을 쳤고, 점괘를 들은 그녀는 크게 실망을 하는 눈치였다.

제19장:

        그 다음 제인 차례였다.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점괘를 들은 그녀는 크게 고무되었다. 점쟁이는 제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듯했고, 곧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블랑슈에게는, 로체스터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자가 아니라는 말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블랑슈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집시 점쟁이가 낮은 소리로 제인의 운명을 말했고, 알고 보니 그 집시 여인은 다름 아닌 변장을 한 로체스터였다. 제인이 크게 놀라 자신을 속인 그를 꾸짖었다. 제인은 그 집시 여인이 그레이스 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며칠 후 메이슨 씨가 찾아 왔고, 로체스터는 크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제20장:

        그날 밤 제인은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로체스터의 방으로 달려갔다. 하인들이 몰려 왔다. 로체스터는 다만 어떤 하인이 악몽을 꾸며 지른 소리라고 했다. 그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로체스터는 제인을 찾았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며, 피를 무서워하느냐고 물었다. 그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 보니, 메이슨 씨가 팔을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인에게 지혈을 하라고 시킨 다음 로체스터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하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제인은 맞은 편 진열장 문에 그려진, 사도들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그림을 보았다. 로체스터가 의사를 데리고 왔고, 제인에게 아래층에 가서 약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그 약을 메이슨에게 주면서, 한 시간 정도 약효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로체스터와 제인은 정원을 함께 걸었다. 그는 제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남자가 되어 먼 나라에서 동기야 어떻든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보라고 했다. 그 잘못은 범죄는 아니지만 일생을 통해 큰 오점으로 남는 잘못이라고 했다. 이제 속죄를 하고 구원을 받아, 아내와 함께 도덕적인 삶을 살기로 했지만 사회적 관습이 용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관습은 단순한 것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경우 그 관습을 안 지켜도 되는지 제인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그에 대한 답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분명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한 로체스터는, 블랑슈와의 결혼이 틀림없는 구원을 가져올 수 있을지 제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제21장:

        꿈속에서 어린 아이들을 보면 불길하다는 이야기를 제인은 들어 알고 있었다. 일곱 번 꿈을 꾸었는데 매번 아기들이 보였다. 외사촌 존 리드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리드 외숙모는 뇌졸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제인은 곧 게이츠헤드로 돌아가 베시와 합류했다. 엘리자와 조지아나와도 물론 재회를 했다. 엘리자는 소박한 여성으로 수녀원으로 들어갈 계획이었고, 조지아나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예뻤다. 그녀가 어떤 젊은이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리려고 했지만, 엘리자의 방해로 실패한 후 두 자매간의 관계는 원만치가 않았다. 제인은 리드 외숙모 내외간을 화해시키려고 했지만, 죽음을 앞둔 노부인은 고인이 된 남편에 대해 아직도 적개심이 가득했다. 어느 날 리드 외숙모는 제인의 삼촌 존 에어가 제인에게 보낸 편지를 건넸다. 제인을 양녀로 받아들이고 모든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내용이었다. 3년 전에 보낸 편지였다. 악의에 찬 외숙모가 그동안 움켜쥐고 건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제인은 죽어가는 노부인과 좋은 관계를 원했다. 그러나 부인은 제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날 밤 죽었다.

제22장:

        엘리자는 제인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으므로, 제인은 그녀의 뜻에 따라 게이츠헤드에 한 달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마침내 조지아나는 그녀의 삼촌을 따라 런던으로 갔고, 엘리자는 수녀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조지아나는 부자와 결혼을 했고, 엘리자는 후일 수녀원장이 되었다. 게이츠헤드에서 제인은 페어팩스 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이제 손님들이 떠났고 로체스터는 새 마차를 사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는 사연이었다. 새 마차를 산다는 건, 그가 블랑슈와의 결혼을 뜻하는 표시였다. 손필드로 떠나며 제인은 로체스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또한 그가 결혼 후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밀코트 역으로부터 손필드로 걸어가던 중 제인은 로체스터를 만나 깜짝 놀랐다. 왜 그처럼 오랜 동안 손필드를 떠나 있었는지를 그가 물었고, 당황한 제인은 외숙모가 돌아가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새 마차를 산 소식을 들었느냐고 하면서, 그것을 보고 “로체스터 부인”에게 알맞은 마차인지 말해 달라고 했다. 어쨌든 제인은, 로체스터를 다시 만나 행복을 느끼는 자신이 놀라웠다. 그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 기쁘고, 그의 집은 자신의 집과 마찬가지라고 그에게 말했다. 페어팩스 부인이나 아델, 그리고 하인들도 제인을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제23장:

        두 주일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제인은 정원에서 로체스터를 만났다. 함께 산책을 하자는 그의 요청에 따라 제인이 승낙을 한 것이다. 그는 블랑슈 잉람과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인을 위해서는 아일랜드에 가정교사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제인은, 손필드로부터 아일랜드는 너무 멀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도토리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오늘밤 이곳에 평화롭게 앉아 있지만, 이제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로체스터가 말했다. 그러면서 제인과 어떤 영성의 끈으로 묶여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 말에 제인은 흐느끼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지만, 이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인이 사랑을 고백하자 놀랍게도 그는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가 희롱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지만 그는, 블랑슈와의 결혼을 말한 것은 제인의 질투심을 떠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의 말을 확신한 제인은 기쁜 마음으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폭풍우가 몰아쳐 두 연인은 비속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로체스터는 제인이 비에 젖은 옷을 벗도록 도왔고, 이제 그녀와 키스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페어팩스 부인이 놀란 듯 자신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제인의 눈에 들어왔다. 그날 밤 도토리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졌다. 그 밑 벤치에 그들이 앉았던 나무이다.

제24장: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 준비는 원만히 진행되지가 않았다. 페어팩스 부인은 제인을 차갑게 대했는데, 두 사람이 키스할 당시 이미 그들 간에 결혼 약속이 있었던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부인은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인은 로체스터가 자신을 제인 로체스터로 부르자, 마음이 흔들리고 겁이 났다. 모든 일이 마치 백일몽을 꾸는 듯, 동화 속 이야기 같았다. 정말 로체스터는 그녀를 신데렐라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녀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에 걸 맞는, 보석으로 치장한 결혼 예복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에 제인은 겁이 났다. 결혼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마데이라의 존 에어 삼촌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삼촌의 재산 상속자라면, 그 유산으로 로체스터와 대등한 위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로체스터와의 결혼이 문제가 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제25장:

        결혼식 전날 밤, 제인은 로체스터를 기다렸다. 그는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두 세 개 농장에 일이 있어 갔던 것이다. 조바심이 난 그녀는 과수원으로 나갔다. 벼락을 맞은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로체스터가 돌아왔고, 그녀는 그가 없을 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을 그에게 말했다. 그 전날 밤 제인이 입을 결혼 예복이 도착했고,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선물한 값비싼 면사포도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밤 제인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채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로체스터를 향해 가는 꿈이었다. 로체스터는 무의미한 꿈이라고 무시했다. 제인은 다시 꿈 이야기를 했다. 몸의 균형을 잃고 아기를 땅에 떨어뜨리는 꿈이었다. 꿈이 뒤숭숭하여 잠이 깬 그녀는, 옷장 안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다름 아닌 이상하고 야비한 모습의 여자가 그녀의 면사포를 찢고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로체스터는, 그레이스풀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또한 반은 꿈, 반은 현실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한 다음, 결혼 후 일 년 하루가 지난 다음 모든 일을 자세히 말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제인은 아델과 함께 잤는데, 잠자고 있는 그 아이와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제26장:

        소피의 도움을 받아 제인은 드레스를 입고 로체스터와 함께 교회로 갔다. 가는 길에 있는 교회 묘지에서, 낯이 선 두 남자가 묘비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제인의 눈에 들어왔다. 제인과 로체스터가 교회에 들어섰고, 그 두 사람도 따라 들어왔다. 주례 목사가 그 결혼에 대해 이의가 있는지 하객들에게 물었고, 그때 낯선 한 남자가 말하기를 그 결혼은 무효라고 했다. 그 혼인엔 중대한 법적 문제가 있다고 했다. 로체스터는 예식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지만, 그 이상한 남자는 로체스터가 이미 15년 전 자마이카에서 결혼을 하여, 크레올 (Creole: 프랑스인과 흑인 혼혈)여인을 아내로 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런던에서 온 변호사 브릭스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로체스터가 리챠드 메이슨의 누이 버다와 결혼관계에 있음을 증명하는, 메이슨 씨가 서명한 편지를 제시했다. 메이슨 씨가 앞으로 나와 브릭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로체스터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잠깐 화를 낸 다음, 자신의 아내가 살아 있으며, 제인과의 결혼은 둘째 아내를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실 그의 아내는 미친 여자로, 그레이스 풀의 보호 하에 가두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와서 그녀를 보면, 왜 자신이 또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당시의 상황을 제인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손필드로 몰려가, 그녀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오빠 메이슨을 물고 칼로 찌른 방을 로체스터가 가리켰다. 그런 다음 문을 가려 놓은  걸개를 걷었다. 걸개 뒤 숨겨진 방에, 그레이스 풀의 보호 하에 버다가 있었다."

       방 끝 어두움 속에, 앞뒤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인지 동물인지 첫 눈에 알 수가 없었다. 네 발로 기는 듯했다. 무슨 이상한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달려들 듯 하기도 했다. 옷을 겹겹이 입은 채, 어둠 속에서 말의 갈기처럼 흘러내린 희끗희끗한 머리털 속에 머리와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버다가 달려와 로체스터의 목을 조르려 했고, 로체스터는 버다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그들 부부간 유일한 포옹 방식이라고 했다. 제인은 메이슨, 브릭스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브릭스가 말하기를, 제인의 삼촌 존 에어가 메이슨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로체스터가 제인과 결혼하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삼촌과 메이슨은 지인관계로, 메이슨이 자마이카로 돌아가던 중 마데이라에 들려 제인의 편지를 존에게 전했던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존이 메이슨에게 부탁하기를,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 제인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혼식 하객들이 떠난 후 제인은 방에 틀어박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열정적이고 장래가 촉망되던, 새색시가 될 뻔했던 그녀는 이제 다시 외롭고 가여운 소녀로 되돌아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책임도 아닌 그 결혼식은, 그녀의 생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일이었다. 제인은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제27장:

        잠시 눈을 붙인 후 깨어난 제인은, 손필드를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방문을 나서니, 로체스터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해칠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말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용서를 했으나, 침묵했다. 그리고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쓰러지려는 찰라 로체스터가 그녀를 붙들고 서재로 데리고 간 다음, 의자에 앉혔다. 그런 다음 새로운 제안을 했다. 함께 영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부부로 새로운 삶을 꾸릴 수가 있다고 했다. 그의 이 같은 제안을 제인은 거절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버다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은 그의 정부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체스터는 왜 자신이 독신자로 속일 수밖에 없었던 지에 관해 그녀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산 분할을 싫어했던 그의 부친은 전 재산을 장남인 로우랜드에게 상속을 했고, 로체스터는 버다와의 결혼을 위해 자마이카로 보냈다. 그녀는 3만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의 상속녀였다. 버다는 아름다운 처녀였고, 술과 놀기 좋아하는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던 것이다. 결혼 얼마 후 그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장모 즉 버다의 어머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있음을 알았다. 버다의 남동생은 벙어리에다가 바보였다. 로체스터의 부친이나 형은 이미 버다 집안의 유전적 소질을 알고 있었지만, 로체스터의 결혼을 추진한 것은 바로 그 재산 때문이었다. 버다도 곧 성품이 들어났는데, 상스럽고 심술궂은데다가 폭발적인 성격에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이처럼 지나친 성격은, 그녀에게 잠복해 있던 광증을 보다 빨리 폭발 시킨 원인이었다. 그즈음 로체스터의 부친과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엄청난 재산과 미쳐버린 아내뿐이었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꿔 영국으로 돌아왔다. 버다도 데리고 왔다. 그녀의 병을 감추기 위해, 안전하고 편한 방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레이스 풀을 고용하여 보살피도록 했던 것이다. 그 후 로체스터는 마음을 잃고, 유럽 대륙 이곳저곳을 사랑을 찾아 헤맸다.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자 그는 방탕에 빠지게 되었다. 여자를 만날 때마다 실망을 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자를 손에 넣는 일은 “노예를 사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제인을 만났는데, 처음부터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제인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를 꾸짖어 더 이상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서 누가 너를 돌볼 것인가?”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체스터 만큼 자신을 알아 준 남자가 또 있었던가? 외롭고 무시당한 삶 끝에 자신을 사랑해준 첫 남자를 이제 떠나야 할지 말지도 몰랐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만 옳다고 생각한 것을 따른다면, 남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다.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떠나야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시길 빈다고 했다.

        그날 밤 제인은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는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빨리 도망을 가라고 했다. 제인은 돈지갑을 챙긴 다음, 계단을 몰래 내려와 손필드를 벗어났다.

제28장:

        손필드를 떠난 후 이틀이 지난 저녁 무렵, 제인이 탄 역마차의 마부가 위트코스라는 곳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지불한 차비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제인에겐 더 이상 돈이 없었다. 역마차는 떠나고, 깜빡 잊고 역마차에 짐도 놓고 내렸다. 홀로 남게 된 그녀는 이제 길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기도를 하며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가까운 마을로 가 먹을 것과 일자리를 구했다. 어떤 농부가 빵 한 덩어리를 주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습지 건너 멀리 불빛이 보였다. 불빛을 따라 어느 농가에 이르렀다.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니 두 젊은 여성이 독일어 공부를, 하녀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로 보아 하녀의 이름은 한나, 그리고 우아한 두 여성은 다이아나와 마리아'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은 신진이라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인이 문을 노크하자, 한나는 들이기를 거절했다. 지치고 고통스러웠던 제인은 문가에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제 죽을 수밖에 없고, 하느님을 믿으니 이제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 말에 대꾸하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인간은 죽게 마련이나 또한 모든 인간이 거리를 방황하다 일찍 죽도록 벌을 받는 것은 아니라며, 바로 당신의 경우라고 했다. 신진의 목소리였다. 그는 다이아나와 마리아의 형제였다. 세 남매는 제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몇 가지를 물었고, 제인은 “제인 엘리엇”이라는 가명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제29장: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제인은 3일 동안 침대에 누워 몸조리를 했다. 나흘 째 되던 날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빵 굽는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그곳에 한나가 있었다. 제인은 자신이 거지가 아니었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런 식으로 문전박대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묻자 한나가 사과를 했다. 한나는 그 집의 내력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신진의 아버지 리버스 씨 집이며, 신진은 목사로 다른 곳에서 산다고 했다. 리버스 씨는 사업에 실패하여 재산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두 자매는 제인이 그린 그림을 좋아했고, 그녀에게 많은 책을 주어 읽도록 했다. 한편 신진은, 제인에게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를 두고 무관심했다. 한 달 후 다이아나와 마리아는 원래의 일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신진은 제인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었는데, 모톤 마을에 있는 가난한 집 소녀들을 위한 자선학교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그가 새로 세운 학교였다. 보수도 작고 가르칠 과목은 많아 힘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곧 그만 둘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제인은 수락했다. 그 아이들을 도와 쓸모 있는 사람들로 키우겠다고 했다. 다이아나와 마리아는 신진이 해외 선교를 위해 영국을 떠나지 않을까 의구심을 품었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통해 제인은, 리버스 씨가 사업에 실패한 이유는 동생 존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31장:

        모톤 마을의 로사몬드 올리버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로, 제인이 살 수 있도록 조그만 집을 마련해 주었다. 제인은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보람이 없고 실망스러웠다. 어느 날 신진이 찾아와 그도 그렇다고 말하며,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고 이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선교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그 때 로사몬드가 나타나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제인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

제32장:

        제인은 학생들과 가까워졌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로체스터가 나타나는 악몽으로 시달렸다. 그녀는 신진과 로사몬드의 관계를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로사몬드가 학교에 오면 언제나 신진이 나타났다. 그녀는 제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그 초상화를 그리던 날 신진이 찾아왔다. 그는 제인에게 월터 스코트 경(Walter Scott: 1771-1832, 스코트랜드 출신의 소설가 겸 시인, 역사학자)의 시집 “소품(Marmion)"을 선물했다. 그는 로사몬드와의 결혼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의 아름다움이 매혹적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세속적인 일들로 자신의 성스러운 임무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한 다음 그는 제인이 그리고 있는 화지 끝을 조금 잘라 가졌다. 제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곧 그 자리를 떠났다.

제33장:

        어느 눈 오는 밤 제인은 신진이 선물한 시집을 읽고 있었다. 그때 신진이 찾아왔다. 조금 거북해 하는 태도로 말하기를, 손필드에서 가정교사로 있던 어느 고아 소녀가 있었는데, 에드워드 로체스터와 결혼식을 올릴 찰라에 도주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가정교사의 이름은 제인 에어'라고 했다. 그때까지 제인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이름도 가명을 쓰고 있었다. 분명 제인을 의심하고 하는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그녀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그 소녀를 찾는 일이 대단한 중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브릭스 '라는 변호사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제인은 로체스터의 안부에 관한 내용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신진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제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그녀의 삼촌 존 에어가 죽으면서 2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유산을 그녀에게 남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인은 신진이 이미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제인이 물었고, 이에 대해 신진은, 그 전날 그가 찢어낸 조그만 화지 쪽지에 쓰여진 그녀의 서명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어찌해서 브릭스가 그에게 편지를 보냈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신진은, 비록 그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 제인이 자신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제인의 삼촌 존 에어의 성은 자신의 성인 신진 에어 리버스와 같다고 했다. 오랜 세월 끝에 마침내 가족을 만났다는 기쁨에 제인은 어쩔 줄을 몰랐다. 제인은 사촌들과 유산을 공평히 상속키로 하고 다이아나, 마리아, 신진과 함께 각자 5천 파운드 씩 나누어 가졌다.

제34장: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중 제인은 휴교를 하고, 새로 찾은 사촌들과 함께 “습지 변두리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제인이 학교를 발전시킨데 대하여 다이아나와 마리아는 대단히 기뻐했지만 신진은 달랐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제인에게 냉정하고 멀리했다. 그가 말하기를, 로사몬드가 그랜비'라는 어느 부자와 약혼을 했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제인에게 독일어 공부를 중단하고, 자기와 함께 힌두어를 배우자고 했다. 그는 인도로 선교를 갈 계획으로, 힌두어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인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점점 절대적으로 되어 갔다. 이렇게 해서 제인은 공허하고 슬펐다. 마침내 그는 제인에게 아내가 되어, 인도로 함께 가 선교 활동을 하자고 했다. 이에 대해 제인은, 인도로 가 선교 활동을 할 수는 있으나 아내는 되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계속 결혼을 고집했다.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제35장:

        신진이 계속 압박을 가해왔다. 제인은 가능한 최대한의 친절한 말로 그의 청을 거절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친절은 그를 더욱 고무시켰다. 막무가내였다. 아내가 되어 인도로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다이아나가 말하기를, 그와 함께 인도로 가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자신의 일을 위해 제인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수작이라고 했다. 저녁 식사 후 신진이 제인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그 언변에 제인은 겁이 날 정도로 압도 당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멀리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듯 했다. 어떤 운명적이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믿음이 들었고, 그 순간 그녀에 대한 신진의 최면이 깨진 것이다.

제36장:

        제인은 전날 밤 겪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실제로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아닐까 했다. 실제로 그가 곤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손필드로 가는 역마차에 올랐다. 로체스터가 보고 싶었다. 그곳을 떠난 후 일 년 만에, 자신을 삶을 그처럼 바꾸어 놓은, 그녀가 걸어 온 길들을 회상했다. 절망적이고 외로우며 가난했던 제인은 이제 친척도 있고, 가족과 재산도 갖게 된 것이다.

       마차에서 내려 달려가 보니 놀랍게도 손필드는 재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제인은 로체스터 암스  여관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몇 달 전 버다 메이슨이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로체스터는 하인들을 구했고, 아내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에 휩싸이자 그녀는 지붕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불 속에서 로체스터는 팔을 하나 잃고 장님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존과 마리아 두 늙은 하인과 함께 숲속 깊이 위치한 펀딘이라는 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제37장:

        제인은 그곳으로 갔다. 멀리서 보니, 로체스터가 비가 오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몸은 전과 같았으나 얼굴은 절망과 수심이 가득했다. 그가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갔고, 제인은 그 집으로 다가갔다. 문을 두드렸다. 마리아가 문을 열었다. 제인이 앞을 못 보는 로체스터에게 접시를 가져갔다. 자신의 앞에 제인이 있다는 걸 알아챈 그는, 그녀의 영혼이나 귀신이 와 말을 거는 것으로 생각으나 곧 그녀의 손을 잡은 다음 포옹을 했다.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제인은 속삭였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숲속을 걸으며 제인은 지난 일 년 간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신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로체스터는 결혼을 해달라고 다시 말했고, 제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제야 그들은 버다 메이슨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로체스터는 며칠 전 밤, 절망 속에서 제인의 이름을 불렀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는 말을 했다. 제인은 연약한 상태의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습지 변두리 집”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제38장:

        제인과 로체스터는 주례 목사와 교회 서기 이외의 아무런 증인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신진은 그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마리아와 다이아나는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인은 학교로 아델을 찾아가 보니, 행복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여 제인은, 아델을 좀 더 좋은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아델은 쾌활하고 부드러운 젊은 여성으로 잘 자랐다.

        로체스터와 결혼 후 10년이 지나 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말할 수 없이 행복이 넘치는 글이었다. 두 사람은 누가 우위라 할 것 없이 동등하게 살았고, 제인은 로체스터가 보이지 않는 눈과 싸우는 걸 도왔다. 2년 후 로체스터의 한쪽 눈이 시력을 되찾았고, 첫 아들이 태어났다. 로체스터는 이제 아기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이아나와 마리아도 결혼을 했고, 신진은 계획한대로 인도로 갔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내용이 담긴 마지막 편지를 보내왔다. 그로부터 또 편지를 받을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했고, 하느님의 사업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제인은 그가 편지에서 말한 기도문의 구절을 끝으로 책을 마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빨리 임하시기를, 아멘”. (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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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롯 브론테 (Charlotte Brontë: 1816 – 1855):

        영국 요크셔 Thornton에서 Patrick Brontë와 Maria Branwell 의 6녀1남( Maria, Elizabeth, Charlotte, Emily, Anne, and Branwell)가운데 셋째 딸로 태어남. 부친 패트릭은 영국 성공회 목사였음. 샤롯이 다섯 살 때 어머니 Maria 가 암으로 사망함. 따라서 아이들은 이모 Elizabeth Branwell 이 양육함.

        1824년 샤롯이 여덟 살 때, Maria, Elizabeth, Emily 와 함께 Cowan Bridge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 이어 유행한 폐결핵으로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죽음으로써 샤롯과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옴. 몇 년 후 샤롯은 Roe Head 학교로 재입학을 했고, 졸업 후 교사가 되었으나 몇 년 후 부유한 Sidgewick 가문의 가정교사가 됨. 그러나 곧 그만 둠. 그 후 스스로 학교를 세우고자 했으나,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다시 가정교사가 됨. 가정교사 일에 또 실망한 샤롯은 자매들과 함께 학교 설립을 준비함.

        비록 학교 설립엔 실패하였지만, 그들의 문학적 작업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함.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소양이 있었던 그녀들은 마침내 에밀리, 앤, 샤롯이 소설가로 등장하게 됨. 그들은 익명으로( Charlotte’은 Currer Bell, Emily는 Ellis, Anne 는 Acton Bell 로) 공동 시집을 발표함. 사람들에게 시집이 알려지자 각자 독립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됨. 1847년 앤과 에밀리는 각각 걸작을 발표하나, 샤롯의 첫 소설 “The Professor"은 원하는 출판사가 없어 그녀 생전 출판을 못함. 그해 말 “제인 에어”를 발표함. 이 소설은 성차별, 사회적 계급 차별이라는 착취적인 빅토리안 영국을 비판한 소설로 그 시대 가장 성공적인 소설의 하나였음.

        “제인 에어”의 성공 후 샤롯은 자신의 실명을 밝힘. 1849년 “Shirley"를 발표함. 그 해 영국 문학가 협회 명예회원이 됨. 그러나 1848년 에밀리와 브랜스웰, 1849년 앤 등 형제자매가 사망하자, 그녀는 고독감과 절망감에 빠짐. 1854년 목사 Arthur Nicholls와 결혼하였으나,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음. 1855년 임신 중이었던 그녀는 폐염으로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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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야기


먼 나라 이야기





    "저놈은 황금에 미친 놈이니 그 소원을 원 없이 들어주어라."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펄펄 끓는 불덩어리가 그의 입에 계속 부어진다. 녹인 금이다. 칠레를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 "뻬드로 데 발디비아"가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맞이한 최후다. 인간들이 숭앙하는 황금을 인간에 대한 모욕의 수단으로 사용한 예이다.

    “발디비아”의 칠레 원정은 당초 황금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전임자 “알마그로”가 이미 실패 한 것을 보아서다. 알마그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도와 잉카를 정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잉카의 남쪽 어딘가에 있을 황금 도시 "엘도라도“ 를 찾아 나섰다. 2만 명에 달하는 그의 원정대는 안데스 고원을 지나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대부분이 죽은 다음에 도착한 곳이 지금의 칠레 산티아고 부근이었다. 그러나 고대했던 금은 없었다. 2만 명의 목숨만 없앤 완벽한 실패였다. 이를 목격한 그의 수하 장교 “발디비아”는 황금이 아닌, 새로운 땅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그 단순한 꿈의 실현을 위해 150명의 병사와 씨앗, 농기구, 종자용 돼지와 함께 새로운 원정길에 나섰다. 1,500킬로에 이르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을 횡단하여 거의 반년에 걸친 행군 끝에 어느 아름다운 계곡에 도착한다. 그는 그곳을 “산티아고”라고 명명하였다. 서기 1541년의 일로 지금의 칠레 수도이다. 우리로 치면 조선조 중종 임금 때의 일이다. 그가 스페인 국왕에게 올린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착하기에 이처럼 좋은 곳은 세상천지에 없습니다. 지형은 

                평평하고 기후는 상쾌합니다. 겨울은 4개월이고 이 기간 중

                초승달이 질 때만 하루 이틀 비가 옵니다. 햇빛이 따듯하니 

                난로가 필요 없습니다. 여름에도 덥지 않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끝없는 초원과 들판에는 모든 종류의 가축과 

                농작물을 기르고 경작할 수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도 무한정입니다."

 

    이 같은 그의 묘사는 5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체로 같다. 그러나 이 목가적인 땅은 금의 발견으로 곧 죽음의 땅이 된다. 더 많은 금을 캐려면 더 많은 노동력과 토지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우호적이던 원주민과의 갈등을 불러온 것이다. 결국 “발디비아”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져 펄펄 끓는 황금을 목에 넘기고 죽은 것이다. 이 원주민, 즉 “아라우칸”족은 여느 아메리칸 인디언들과는 달리, 그 불굴의 저항정신과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애국심은 현대 국가의 어느 국민에 못지않다. 그들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적인 본능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정복한 백인들이 세운 칠레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영토에 관한 칠레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5백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티아고를 품고 있는 안데스는 그 길이가 장장 7,000km이다. 베네주엘라에서 시작해서 남미 대륙을 종단하여 그 끝 “푼타 아레나스”에서 다시 바다 밑으로 들어가 한 바퀴 휘돈 다음 남극대륙과 연결된다. 그 연결 지점에 우리의 세종기지가 있다. 칠레의 길이가 4,300킬로이니 안데스 산맥의 반 이상이 이 나라에 걸쳐 있는 것이다. 안데스의 평균 높이는 4천 미터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깊은 계곡들은 유럽인들이 꿈꾸었던 황금도시 "엘도라도"가 꿈이 아닌 현실로 존재한 곳이었고, 그에 따른 비극과 수많은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20세기 전반에 칠레에 깊은 정치적, 사회적 상처를 가져다 준 금속은 구리이다. 칠레의 안데스는 전 세계 구리 수요의 반 정도를 공급하고 있으며, 칠레 경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하자원이다. 또 구리 생산은 금 생산을 동반한다. 구리는 전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주방용구를 만드는 데 쓰는 정도의 보잘것없는 금속이었지만 전기의 전도성이 확인되면서 그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더구나 20세기 전반의 3대 전쟁이었던 제1·2차 대전 및 한국전쟁에서 필요했던 폭탄 수요의 증가는 구리 수요의 폭증을 가져왔다. 폭탄의 탄피와 신관, 뇌관을 만들 수 있는 구리의 성질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칠레 구리광산의 이익을 독점했다는 점이다. 그 주역은 미국의 록펠러 가문과 구겐하임 가문,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그들에 의한 칠레와 멕시코의 구리 독점, 자의적인 구리 가격 농단, 대금 지급의 전횡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1970년까지는 구리를 입에 올리는 것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는, 구리에 대한 일체의 정보가 일급 비밀이었다. 1970년 집권한 아옌데 정부는 구리 산업을 국유화하고 그 이익을 칠레 국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급진적인 좌파 정책으로 군부의 반발을 사, 미국 CIA가 배후 조종한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음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페루의 남쪽 국경선부터 시작되는 “아타카마” 사막은 그 길이가 약 1,000km로서 산티아고 북쪽 500km 지점에서 끝난다. 이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강우량 10mm를 얻으려면 5년이 걸린다. 그 사막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경이 그 자체이다. 천지를 뒤흔드는 몽환경이다. 그 건조한 대기로 인해 상온의 상태에서 미이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칠레 북부 아리카 민속 박물관은 3백여 구의 이 같은 미이라를 보존하고 있다. 고독한 사막의 여행자가 죽어 미이라화한 것이다. 이 사막의 건조한 대기는 그 산란 현상이 작아 천문대의 적격지로 이곳 "라 시야"는 초신성 "1987A"를 찾아낸 천문대이다. 대한민국도 이곳에 천문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 메마른 불모의 땅에도 안데스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이따금씩 숨을 쉬기 위해 솟아 오른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물이 있는 곳에 인간이 있게 마련인지, 그 불모의 사막에도 그 언젠가, 무엇인가를 찾아와 살았을 사람들이 남겨 놓은 교회와 십자가의 잔해가 있어 지나는 길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이 아득하고 불모인 아타카마가 은총의 땅이 되고 있다. 이 사막에 전기자동차의 연료원인 하얀 황금, “리티움”이 다량 존재한다. 아타카마의 리티움 광은 사막의 벌판에 드리운 하얀 눈밭과 같다. 그냥 노천광이다. 지하로 흘러든 안데스의 눈 녹은 물에 녹아든 지하의 리티움이 다시 지상으로 흘러 나와 강렬한 사막의 햇빛으로 수분이 증발된 다음 하얀 리티움만 남긴다. 지하 리티움이 자연의 힘으로 쉽게 발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경제성 있는 리티움의 반 이상이 - 단일 광산으로 최대의 리티움 광산은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다 - 이 사막에 있다. 이 사막이 바로 21세기의 "엘도라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 Lithium Mine on Atacama, Chile -

    안데스(Andes)는 케추아어(잉카어)로 "해가 뜨는 동산(Inti)"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산이 아닌 신화 속의 영웅들처럼 도열한 안데스의 준봉들을 넘어온 태양은 서향의 건조한 산록에 하루 종일 빛을 뿌린다. 당연히 과일이 달다. 여기서 생산된 포도로 빚은 포도주는 신세계 포도주를 대표한다. 프랑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수확과 숙성을 한다. 이런 이유로 향과 알코올 농도 면에서 프랑스 포도주와 확연한 차이가 남음을 알 수가 있다. 또 많은 양이 프랑스로 수출되어 그곳에서 라벨링이 된다. 무엇보다도 칠레 포도는 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치명적인 뿌리진딧물병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동서남북이 사막과 산맥, 한대 지역과 망망대해로 둘러싸인 지형이 천연의 방역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4천 킬로를 가야 남태평양의 섬들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칠레의 남쪽 지역은 -이 지역도 물론 안데스의 산줄기이다- 남극 기후대에 속해 춥고, 강우량이 많다. 이 지역은 아직도 전인미답의 삼림지대가 많으며 대륙의 끝인 "불의 땅" 은 춥고 바람이 세다. 연중 많은 날들이 시속 100km의 살을 에는 바람이 분다. 불의 땅이라는 이름은 “마젤란”이 후일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해협을 지나면서 대안의 땅에 번쩍이는 불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그 땅에는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인 "후에지안"이 살고 있는데 소수만이 남아 있어 이들의 보존 문제가 국제적 현안이 되고 있다.

    "칠레"는 잉카어 "칠레 마푸"의 줄임말로 “먼 땅”을 뜻한다. 즉, 칠레는 "멀다'라는 뜻이다. 잉카의 사람들이 먼 남쪽 어딘가에 있을 “엘도라도”를 그렇게 불렀다. 이 먼 땅에 먼 곳의 인간들이 금을 찾아왔고, 수많은 비극적 이야기를 낳았던 것이다. 만일 “발디비아”가 황금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억제하고 원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미 움켜쥔 황금덩이와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았음은 물론 역사가 달리 전개 되었을 것이다. 지나친 욕망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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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멸망


      왕조의 멸망


        프랑스 대혁명(1789), 러시아 혁명(1917), 태평천국의 난(1850-1864), 동학 혁명(1894)은 모두 왕조의 멸망을 가져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사건들의 핵심은 개혁이었으며, 이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혁명의 당사자로 처형된 루이 16세는 개혁을 원했지만 특권적인 교회와 귀족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그는 결국 단두대로 목이 잘렸다. 러시아 알렉산더 III세와 니콜라스 II세는 알렉산더 II세의 개혁을 되돌려 놓은 반개혁 황제들이었다. 자신을 학대한 부친을 죽인 혼외정사의 아들 스메르자코프 카라마조프를 통해, 혼외자식 학대하듯 백성을 학대하는 황제는 언젠가 백성들의 손에 죽을 것임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암시하지만 황제는 알아듣지 못했다. 니콜라스 II세는 러시아 혁명의 결과 1918년 가족과 함께 총살되었다. 청조는 한족에 대한 차별과 서구 열강의 침탈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아편전쟁(1839-1842)에서 영국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와 피폐한 백성들의 삶은 결국 홍수전의 반란(1850-1864)을 불러왔다. 수많은 민란을 간과했던 청조는 뒤늦게 개혁(양무운동)에 손을 댔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나마 보수 세력의 끊임없는 비판과 견제를 받았다. 양무운동(1861-1894)은 또 백성을 위한 당장의 시급한 개혁이 아닌, 초점을 벗어난 장기 부국강병 개혁이었다. 홍수전의 난으로 국력이 약화된 청조는 결국 막을 내린다.

        동학 혁명(1894)은 갑오경장이라는 개혁을 가져왔지만 이 역시 때가 늦어 미구에 왕조가 멸망하는 것이다. 시기를 잃은 개혁은 오히려 위기를 부른다는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프랑스 역사 학자)의 말이 증명된 것이다. 이 네 사건들의 공통점은 개혁이고,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한 왕조의 몰락은 물론 인류 역사가 바뀐 것이다. 모두 양보를 모르는 놀부, 부유한 놀부들의 더 많은 욕심이 스스로의 종말을 불렀던 것이다. 아래의 글은 당시 백성들의 삶의 편린으로 개혁이 왜 필요했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답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 현재 대부분의 프랑스 농민들은 바닥이 더러운 한 칸 또는 두 칸짜리 집에서 살았다. 어둡고 통풍이 안 되는 집안에는 가축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불결한 환경은 질병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의 농촌 여인들의 1/3이 중노동의 결과 사산의 경험이 있었으며 신생아 20명당 한 명이 사산이었다. 많은 신생아가 죽으니 신부를 부를 겨를도 없어 산파가 영결세례를 줄 수 있도록 자격이 주어지기도 했다.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생후 1년 이내에 1/5이 죽었다. 빈민 지역에서는 1/3이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의 반은 15세 이전에 죽었다. 영아의 40%가 8월부터 10월 기간에 죽었다. 어머니의 일손으로 인해 수유를 못해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죽은 것이다. 농민의 식사는 조잡했고 단백질, 비타민이 든 육류, 신선한 야채는 매우 귀한 식품이었다. 가축은 너무 소중하여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질병 못지않게 농민을 괴롭힌 것은 경작 환경이었다. 반 이상이 소작농이었던 당시의 농민들을 괴롭힌 것은 경작 계약이다. “반 타작 (half-fruits)”이라고 불리었던 이 경작 계약은 이렇다.

      

      - 단두대 아래 루이XVI세 -

        농민은 지주와 보통 1년짜리 경작계약을 했다. 우선 실물로 지불하는 임차료를 보자. 임차지에서 기르는 모든 가금류, 가축류의 반과 이 동물들이 생산하는 달걀이라던가 우유의 반은 지주의 것이다. 또 성 요한의 날 등 무슨무슨 날에 달걀이라던가 닭고기 등 계약상의 실물납을 해야 했다. 경작지는 중세 이래의 경작 방식인 3포제로 1/3은 경작을 쉬는 휴경지, 1/3은 밀이라던가 보리 등 곡물, 나머지 1/3은 콩, 채소 등의 작물을 경작했다. 이는 강제 계약으로, 만일 소작인이 휴경지 이외의 땅을 놀리는 경우 지주는 그 놀리는 땅을 다른 사람에게 소작을 줄 수가 있었다. 소작료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300평의 소작지의 경우 100평은 휴경지, 다른 100평은 곡물, 나머지 100평은 채소 생산을 담당한다. 당시의 경작 환경으로 인해 100평의 곡물 경작지의 실제 생산 가능한 토지는 평균 80~90평 정도였다. 여기서 생산된 생산물을 100으로 볼 경우 20은 빌린 종자용 씨앗 상환 몫, 20은 계약금, 수확 및 타작 비용 10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 50의 반 25를 임차료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 지주로부터 빌려 쓴 농기구에 대한 임차료도 지불해야 했다. 토지의 유지 관리에 드는 비용도 모두 소작인이 지불해야 했고 세금, 지방 토후에게 바치는 공물, 교회에 내는 십일조 등도 납부해야 했다.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소작인의 몫은 평균 수확의 15%에 불과했다. 이처럼 농민 계층은 귀족 계급의 등쌀로 뼈가 으스러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가혹하게 보이는 계약은 그래도 소작인에게 상당히 유리한 계약이었다. 이러한 계약은 보통 25정보 이상의 대규모 토지로, 소득률이 작아도 수확량이 크기 때문에 먹고 살 수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작지의 40~45%가 농민 소유이긴 했지만, 80%의 농민들이 영세농이었다. 1789년 현재 30%의 인구가 빈민이었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경작지의 10%를 소유한 가톨릭 승려, 30%를 소유한 귀족은 면세 대상이었고 교회는 또 십일조를 징수했다. 이 같은 상황은 개혁을 절실히 요구했지만 국왕, 승려, 귀족들은 그들의 특권 보호를 위해 개혁을 거부했던 것이다.

        농노해방이 있었던 1861년 현재 러시아 인구는 총 6천만 명이었다. 이 중 1천2백만이 자유인, 나머지 4천8백만 명은 국가에 예속된 농노(Obrok)와 개인 지주에게 예속된 농노(Barshichina) 등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개인에게 예속된 농노는 전체 인구의 37.7%였다. 이들은 소작료를 납부하는 소작 농노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력 농노로 나뉘었다. 14세 이상은 누구나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18세기 말에는 주 3일의 노동으로 제한했지만 지켜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1830년대 니콜라스 I세는 국가 예속 농노들을 관리하기 위해 농노청을 두고, 이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또 자치기구를 만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여행을 하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하긴 했지만 이들은 사실상 자유농으로, 남성 인구의 대략 30-40% 정도였다. 이처럼 국가에 예속된 농노는 그래도 조금은 자유롭고 부담도 적었다. 그러나 개인에게 예속된 농노는 달랐다. 농노와 지주와의 관계는 황제와 신하 관계의 축소판이었다. 지주는 자기 소유 농노에 대한 모든 권한이 있었다. 기근이나 흉작 시 지주는 농노를 보호하고 도왔으나 또한 징벌권도 있었다. 태형, 사형을 비롯해 시베리아 유형을 시킬 수도 있었다. 지주는 자신의 토지 내에서 사실상의 황제였다. 농노는 일종의 재물로, 선물로 주고받거나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농노의 경작지는 대부분 거친 땅으로 중세 이래의 경작 방식인 다품종 밀집 경작 농지(open-field with multi-strip)가 대부분이었고 영농기술은 후진적이었다. 노동 능력, 성별, 나이에 따라 세금을 공평하게 부과해야 했으므로 경작지의 분배는 정기적으로 재조정해야 했다. 19세기 들어 인구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제한된 경작지를 재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농노제도가 집중적으로 시행된 지역은 농노제도가 시작되었던 제국의 중앙 지역과 폴란드 분할로 획득한 서부 지역이었다. 이 서부 지역 인구의 반이 농노였다. 북부, 동부, 시베리아 지역은 농노제도가 실시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산업화에 따른 농업부문의 희생은 1890년대 기근을 비롯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불러 왔다. 1900년 어느 날 폴란드 로즈(Lodz)시 거리의 모습이다. 

    - 니콜라스II세 가족-

“어깨가 축 늘어진 행인들이유령처럼 걷고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여인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굶어, 술이 취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같은 시간,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누워있었다. 며칠 동안 굶었고, 갈 곳조차 없었다. 또 바로 그 시간에, 12세 소년, 21살의 처녀, 55세 남자가 굶주림으로 쓰려져 들것에 실려 가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만 하루 5명이 굶주림으로 그렇게 쓰러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죽었을까? 빵과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간 것이다.”  -From Lodz's Development-

        청조 멸망의 원인이었던 태평천국의 난은 가뭄, 홍수, 기근, 역병 등으로 절망 상태에 있던 백성들이 일으킨 난이다. 홍수전이 이끈 이 난은 기독교 사상에 입각했던 것으로, 천년 왕국이라는 신비적인 요소를 담고는 있었지만 후일 중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아편금지, 도박금지, 담배 및 음주 금지, 일부다처제 금지, 노예제 금지, 매음 금지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들은 남녀평등을 외쳐 전족과 중매결혼 금지를 주장하고 실제 실천하기도 했다. 토지의 개인 소유금지와 공평한 분배를 내세웠다. 이 같은 병폐들은 당연히 개혁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었다. 홍수, 한발, 기근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고 이에 따른 크고 작은 농민봉기가 잇따랐지만 청조는 태만과 무기력으로 문제해결이 불가능했다. 홍수전의 농민군은 삽시간에 그 세력이 불어나 양자강 일대를 장악하고, 1853년에는 남경을 함락한 다음 수도로 정하고 3천만 명에 달하는 백성을 그 치세 하에 둔다. 

      - 태평천국의 난 -

        그러나 1864년 홍수전이 사망함으로서 그의 군대는 항복한다. 그의 화장된 유골은 대포에 담아져 발사되는데, 이는 반란에 대한 처벌로 그의 영혼이 영원히 안식을 못 찾도록 한 청조의 징벌이었다. 이 싸움의 희생자 수는 대략 3천만 명으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2차대전 희생자 6천만 명 다음이다. 청조는 뒤늦게 양무운동을 일으켰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국력이 약화된 청나라는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으로 붕괴된다.  (C)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참고자료: 1. Franz Michael. "The Taiping Rebellion 1851-1864."

           2.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People by David Abdress.

             3.The French Revolution by Linda S. Frey and Marshall L.

               Frey.

             4. The Russian Chronicles by Norman Stone and Dimitri

                Obolensky

             5. Understanding Imperial Russia by Marc Raeff.


    글: 박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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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연인

  

    베토벤의 연인


    베토벤(1770-1827)은 독신으로 일생을 마친 음악가이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편지가 있었다. 모두 열 장에 이르는 편지에는 절절한 사랑의 사연을 담고 있었는데, 수신인은 “불멸의 연인” 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그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다음 중 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Bettina Brentano(1785-1859)

    괴테를 비롯하여 베토벤과 교제를 한 당대의 젊은 여류시인. 베토벤은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시누이었던 Antonie Brentano 역시 대상 인물의 한 사람으로, 베토벤의 “Diabelli 변주곡”은 Antonie에게 헌정한 음악이다.

 -Josephine Brunswick(1799-1821)

    항가리 귀족 가문의 딸. 그녀는 언니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가 미망인이 된 다음 베토벤은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녀의 집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그녀에게 열정적인 연서를 보내기도 했는데, 베토벤 사후 그녀는 이 편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Therese Brunswick(1775-1861)

    조세핀의 언니. 베토벤이 관심을 가졌던 여인은 자기 동생이었다고 테레사 자신이 말했음에도, 로망 롤랑은 테레사가 바로 불멸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했다. 편지가 있던 서랍에서 바로 그녀의 초상화가 발견된 것이 그가 주장한 근거였다.

 - Maria Erdődy(1779-1837)

    항가리 백작 부인. 베토벤의 절친한 여자 친구로 멋진 여인이었으나 장애인이었다. 둘은 자주 만나 연주회를 함께 했다. 1808년 베토벤은 그녀의 거대한 저택에 방을 얻어 삶으로서, 둘이 애정행각을 벌인다는 소문을 냈다. 5개월 후 베토벤은 말다툼 끝에 그녀의 집을 나왔다. 음악의 영웅도 여자와 함께 살면 말다툼을 하는가 보다. 나중에 그녀는 재정적인 문제라든가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등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올랐고,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베토벤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교제를 한 여인이었다.

 - Dorothea von Ertmann(1781-1849)

    베토벤과 20년 이상의 우정을 나눈 여류 피아니스트. 오스트리아 장군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베토벤의 작품을 잘 이해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이로 인해 베토벤이 죽은 후 멘델스존은, 베토벤의 작품을 공부하기 위해 이 부인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인 George R. Marek은 이 여인이야말로 그 육체적 매력이라든가 음악적 소양, 베토벤과의 오랜 우정으로 보아, 바로 그 “불멸의 연인” 으로 보았다.

 - Giulietta Guicciardi(1784-1856)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이 여인에게 헌정한 음악이다. 이로 인해 그녀의 이름이 더욱 빛나게 된 것이다. 베토벤은 나이 서른 살에 열일곱 살의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베토벤 사후 그의 유품에서 줄리에타의 초상화가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베토벤의 오랜 친구였던 안톤 쉰들러는, 그녀가 ‘불멸의 연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 Rahel Vernhagen von Ense(1771-1833)

    아름답고 재능이 출중했던 유대 여인. 프러시아 외교관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테프리츠 온천 휴양지에서 베토벤을 만난다. 그녀에게 매료된 베토벤은 그녀를 위한 연주회를 연다. 그녀가 ‘불멸의 연인’임은 물론, 베토벤의 연가(song cycle)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주인공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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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Enlightenment


   우리는 투표를 한다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인 이 투표, 즉 주권을 우리 시민이 행사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 권리를 군주와 교회로부터 빼앗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류의 선현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눈물과 피를 흘렸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민주주의하에서 지금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인류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주권을 군주와 교회로부터 빼앗았나이 권리를 빼앗기 위하여 인류는 엄청난 피를 흘린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연법사상의 결과이고이 사상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이 사유란 바로 계몽주의적인 사유를 말하는 것이다그 방대한 정보를 여기서 모두 진술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그 개략을 설명한다이글을 통해 우리는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몽주의 운동은 대략 30년 전쟁(1618~1648)이 끝난 직후인 1650년부터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유럽인들에 의한 강렬한 지적 운동을 말한다이기적이고 어두운 인간성이 지배했던 중세 천 년(476~1453)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러 사람들에 의한 지적 운동이었다중세 천년은 철저한 계급사회와 노예제도, 종교적 광신의 시대로 무자비한 하느님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교회의 손아귀에서 백성들은 공포에 떤 시대였다이 같은 시대적 야만이 계몽주의로 인해 붕괴된 것이다. 

     계몽주의 운동은 프랑스 대혁명을 가져왔고 미국에는 인류 최초로 3권분립에 의한 정부라는 계몽주의 꿈이 실현되기도 했다이 역사적인 여정에 많은 이들이 참여했고그들 가운데  “계몽주의자 Philosophe” 라고 불린 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작가, 정치가, 상인, 귀족, 혁명가, 신학자 들이 있었다이들은 당시의 백성들을 괴롭힌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문제들을 기존의 방법인 비과학적인 신앙심이나 정치적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닌인간의 이성을 통한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코자 했다.

     계몽주의 태동은 르네상스 시대(1450~1600)로 거슬러간다지적 활동의 암흑기였던 중세 천년에 비해 르네상스는 학문과 지식자기 계발을 강조하던 시기였다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학이 재발견되고 미술건축에서 새로운 르네상스식 스타일이 창조된다인쇄술의 발달로 이전의 필사본보다 싸게 만들어진 책들을 통해 르네상스적 관념이 더 멀리더 빨리 전파되었다가톨릭 교회에 대한 회의가 점증하던 시기이기도 했다교회의 부패와 부도덕을 조롱했고 성부성자성신이 일체라는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그의 저서 “우신 예찬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낡은 종교적 유산으로 보고 그 숭배를 공격했다가톨릭교회에 대한 루터의 공격은 결국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7세기 들어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탐구 정신에서 비롯된 과학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고새로운 발명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놀라운 관찰을 가능케 했다현미경의 발명으로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미세한 생명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망원경을 통하여 아득히 먼 별과 우주의 경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해부학,  화학,  광학, 물리학의학 분야에서도 인류는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천문학 분야에서도 과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져 지구 중심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낡은 우주관은 케플러나 갈릴레이에 의해 부정되었다가톨릭 교회의 주장과는 달리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고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도는 혹성으로 무한한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고 했다따라서 교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만물을 재는 척도가 지구상의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과학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관찰과 실험이라는 베이컨(Francis Bacon)의 새로운 과학적 접근 방법 덕택이었다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자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자 많은 사상가들은 “이성의 힘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전통적인 신념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스스로 하나님의 대변자이며 무오류라고 주장하는 교회가 이처럼 지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면 다른 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의문을 품은 것이다베이컨과 데카르트가 토대를 놓은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통해 마침내 뉴턴은 위대한 물리 법칙을 발견했다.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뛰어난 사상가에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계몽주의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687년에 발간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에서 뉴턴은우주 어디서나 중력은 균일하게 작용한다는 “중력” 이론을 발표한다지구에 미치는 태양의 중력과 동일한 힘으로 지구도 태양을 잡아당긴다고 했다그는 우주란 불가측한 것이 아닌 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정밀한 기계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한 것이다뉴턴으로 인해 이처럼 과학적 이해의 지평이 확대되었고바로 이 과학적 사고야말로 바로 계몽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물질세계의 근본에 관한 뉴턴의 이 발견은다음 세대의 사상가들로 하여금 다른 신비적 현상에 대해서도 동일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이성의 힘으로 우주의 신비가 벗겨진다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인간사의 문제들 역시 이성의 힘으로 이해하고 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우주 질서를 지배하는 불변의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면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도 교회나 왕들이 만든 인간의 법이 아닌 불변의 자연법칙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가져온 자연법사상으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그 단초이다. 

     이 같은 자연법사상의 선구자가 바로 로크(John Locke, 1632~1704)이다그는 많은 글과 생각을 통해 계몽주의를 위한 지적 토대를 세운 사람이다그는 “자연법의 존재를 믿었다그는 중력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듯이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다그리고 이 법칙은 이성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이성의 힘을 가지며 생명자유재산에 관한 동일한 자연권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이성이 선언하고 있다고 했다또한 사람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되며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므로 아무도 타인의 생명건강자유재산에 관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성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1690년에 발표한 논문(Two Treatise of Government)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개인은 자연법의 원칙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며여기에 중앙집권적인 통제가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그러나 자연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그 견해가 다를 수 있으므로, 따라서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사회계약을 체결하고사람들은 이에 따를 것을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이 계약에 따라 사람들은 정부를 세우고 그들이 세운 정부가 “공동 선을 유지하도록 권한을 위임하되그 위임된 권한은 제한된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개인은 자신의 권한 일부를 정부에 주었지만그 대신 정부로부터 신체와 재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했다어떤 정부도 이 같은 자연의 권리 즉 자연권을 감시하거나 빼앗을 수 없으며이 권리야말로 바로 “천부의 인권이라고 했다만일 정부가 이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 백성은, 그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가 있다고 했다다시 말해 백성의 자연권을 침해한 군주나 정부에 대해 저항하는 권리"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이다. 저항권을 말하고 있다그는 또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이며 그의 허락 없이는그 무엇도 그를 세속의 권력에 복종시킬 수 없다고 했다또 정부는 그 권력의 정당성을 오로지 백성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의사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무엇이 민주주의인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로크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진리 탐구를 돕기 위해 신은 우리에게 이성의 능력을 부여했다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신은 슬픔이나 육체적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을 우리의 내면에 심어 놓았다따라서 우리는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을 피하고 행복과 기쁨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자식의 행복을 부모가 원하듯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이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해야 함을 신이 원한다는 것을 이성으로 추론할 수 있다그 누구도 타인을 불행케 하거나 고통스럽게 할 수가 없다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신의 뜻에 거역하는 자이다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듯 타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모든 사람이 이성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그 누구도 타인보다 더 나은 진리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이 같은 이유로 정치적 지도자는그 국민에게 자신의 신념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현상을 이해하고우리의 이성으로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니 만큼어떠한 외부적인 힘도 우리의 생각과 어긋나는 방법으로 우리의 생각을 강제할 수가 없다만일 백성이 맹목적으로 정부를 따른다면바로 이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신의 법칙, 즉 자연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로크는 또 인간은 어떤 선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물론 신의 계시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선험적인 선과 악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오히려 인간은 백지장(tabla rasa) 같은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살아가는 과정에서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로부터 정보를 획득축적해 간다는 것이다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라고 했다이는 인간이 이브의 잘못 때문에 원죄로 태어난다는 가톨릭 교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후일 프랑스 계몽주의의 아버지로 불린 베일(Pierre Bayle, 1647~1706)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네덜란드의 로텔담 대학의 철학 교수였다. 1682년 그는그때부터 2년 전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거대한 혜성의 출현에 대해혜성의 출현이란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이지 사람들이 믿듯이 불길한 징조를 말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그는 문학과학철학탐험 등에 관한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한다또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무슬림유대교도무신론자들에 대한 종교적 관용을 베풀 것을 촉구하고수많은 유럽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가톨릭과 신교도 간의 무자비한 유혈 투쟁이었던 30년 전쟁을 비롯하여 모든 종교적 박해를 비난했다프랑스 교회와 정부가 합세한 위그노교도들에 대한 박해 때, 그는 4명의 가족을 잃는다그는 신교도였음에도 신앙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 때문에 교수직을 잃었다시간을 얻은 그는 “역사적비판적 사전(Historical and Critical Dictionary)”이라는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다이 책이 바로 프랑스 계몽주의의 모체가 된 책이다.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어휘의 정의가 아닌 역사문학정치철학종교 등 광범한 주제에 관한 문집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성서상의 여러 이적들과 기독교 신앙 형태에 가차 없는 공격을 가했다예컨대 이브가 실제로 940세까지 살았는지에 의심을 품었다아담과 이브를 창조할 수 있었던 전지전능한 야훼가그들이 어느 날엔가 죄를 지어 자신의 은총을 잃게 될 것임을 모를 수 있었겠냐고 했다. “선하고 완전무결한 야훼가 범죄적인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말인가완벽한 신이 도대체 불행한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말인가라고 물었다악에 대한 정의에서도 다른 신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 죄악“ 이라고 했다그는 또한 인간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인간이란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고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인간성이란 변함이 없고 따라서 인간의 범죄와 결점은 반복되게끔 되어 있다고 했다이러한 이유로정부의 권력은 사회적인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18세기의 성서로 불린 그의 ”사전은 유럽을 풍미했고 훗날의 계몽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18세기에 들어서자 점증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예리한 관심을 갖는 사상가, 문인, 성직자, 귀족 등 일군의 뛰어난 사람들이 프랑스 전역에 등장한다이들을 ”계몽주의자“  라고 불렀다그들 대부분은 전문적인 철학자나 대학교수 등이 아니었고물론 무장을 한 혁명가들도 아니었다단지 사회의 기능에 대해 의문을 품고 비판을 가하는 자칭 사회 비판 세력이었다.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광범위한 사회 문제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사회 개혁을 위해 정부에 압력을 가한 사람들이었다. ”편견이나 전통 등 인간을 노예화하는 모든 것을 내치고원점으로 돌아가 명확한 일반원칙을 찾고 경험과 이성이 증명하는 증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말 것“ 이 그들의 주장이었다그들은 백성을 볼모로 한 채 권력 놀음에 빠져 백성을 등한시하는 군주귀족들을 비난했다프랑스에서는 인구의 3%에 불과한 승려와 귀족들이 낡은 전통과 관습(Ancien Régime)하에서 부당한 권력과 명예면세특권국토의 대부분과 정부 및 군대의 모든 요직을 독차지하고 97%의 상인도시 노동자전문 직업인농민층은 모든 노동과 오직 군주 한 사람의 낭비를 위한 가혹한 세금을 떠맡고 있었다계몽주의자들은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도 분노했다공포협박공갈허황된 지식을 통한 교회의 백성 학대와 농단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불행과 죄악어리석음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것은 이성이 책임져야 할 임무이지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계몽주의자들은 대부분 문필가들이었다빛나는 문체로 글을 쓰고 책의 저술과 시희곡대화록문집들을 발간하여 배포함으로써 계몽주의 운동에 불을 지폈다그들은 정부교회사법기관 등 모든 중요한 기관들이 편견과 미신부패의 껍질을 쓰고 있다고 했다이 껍질들은 이성과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깨질 수 있다고 믿었다그들은 또 상속에 의해 권력지위 등을 물려받는 부당한 시스템을 구체제의 질서로 보았다이 구체제야 말로 모든 것의 희생 위에 왕족귀족승려 계급에게 특권과 부권력을 부여하는 원흉이라고 보았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부패 체제를 바꾸어타고난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열망했다그들은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글을 썼지만 또한 낙관적이었음은 물론이다그들은 왕이나 귀족교회가 아닌 백성을 위한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음을 확신했다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이성적인 방법으로 진술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올 것임을 굳게 믿었다그들은 구체제의 잔학성과 부당성을 공격했지만 또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백성이 겪는 고통을 제거하고

     불의를 일소할 것을 주장했다법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고문과 야만적인 처벌을 비난했고 노예제도를 반대했다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대우하여야 한다고 했다전쟁이란 권력에 미친 군주나 사제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되는 광신적인 놀음이라고 비판했다.

     볼테르(볼테르는 필명임본명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는 자신의 시대를 가장 냉철하게 비판했던 사람이다그는 베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작가소설가,수필가역사가철학자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던 그는 18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었다그의 예리한 비판은 그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겪게도 했다프랑스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 1726 마침내 그는 3년간 영국으로 추방되었고추방 생활 중 로크뉴턴 등 영국 지성인들의 책을 읽었다정부를 개혁하는 영국인들에게 찬사와 경의를 보내기도 했다.

        - 볼테르 -                                          

     그는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다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그는, 1734 "영국에 관한 서신(Letters on the English Nation)"을 발간했고이 책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뉴턴과 로크의 사상을 알렸다구체제에 대한 맹렬한 공격과 영국의 정치개혁을 열렬히 옹호했다죄인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권력자들의 무관심을 비난했고가톨릭 교회와 귀족들에 의한 철권적인 사회 통제를 경멸했다그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믿었고인간을 부패시키는 것은 조직화된 종교라고 했다자신이 하느님을 믿는 신자였음에도기적과 신의 계시를 가르치는 교회를 비판하고 조롱했다이로 인해 문필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또한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적들의 보복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프랑스 국경 가까운 스위스의 페르니(Ferney)로 도피한다그곳에서 20년 동안 구체제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희곡수필소설서신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썼다그는 일생 동안 일만 개가 넘는 글을 썼는데이는 대략 1천500만 단어로 성경 20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이 글들을 통해 그는 비이성적이고 옳지 못한 법과 관습을 공격하고 낡은 특권에 집착하는 위선적이고 어리석은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을 조롱했다그의 적에게나 추종자에게나 그는 18세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상가이자 작가였음은 물론이다. 1778년 그가 죽자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대왕러시아의 캐더린 II세스웨덴의 구스타프 III세 같은 절대군주들조차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들 이외에도 라이프 니츠(Gottfried W. Leibnitz;1646~1716),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몽테스키외(Baron de Montesquieu; 1689~1755), 벤자민 프랭크린(Benjamin Fraklin; 1706~1790),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디드로(Denis Didrot; 1713~1784), 달람베르(Jean R. d'Alember 1717~1783),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캐더린 여제(Catherine the Great; 1729~1796),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토마스 제퍼슨(Thoma Jefferson; 1743~1826)이 계몽사상으로 무장하고 민주주의를 만든 이들이다이들 이외에도 더 많은 이들이 있다. (C)

 Writte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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