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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냇가 다리에서 생긴 일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by

    Ambrose Bie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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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앨라바마 북부의 어느 철도 교량 위에서 한 남자가  20피트 아래, 빠르게 흐르는 물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뒷짐을 진 그의 손목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목에는 밧줄이 바짝 감겨 있었다. 이 밧줄은 머리 위 튼튼한 십자가에 연결되어 있었고 늘어진 줄은 무릎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철로 침목 위에 얹힌 몇 개의 널빤지가 그와 집행관들이 설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집행관은 연방군 사병 두 명이었으며, 민간인 시절에는 보안관 대리였을 법한 하사관이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임시 발판 위, 약간 떨어진 곳에는 계급장을 단 군복 차림의 한 장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대위였다. 다리 양쪽 끝에는 보초병이 각각 한 명씩 서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소총을 왼쪽 어깨 앞에 수직으로 세우고, 가슴을 가로질러 뻗은 팔뚝 위에 총의 공이 치기를 얹는 자세로 몸을 꼿꼿하게 서야 하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격식을 차린 자세였다. 이 두 보초병에게는 다리 중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할 임무가 없는 듯했다. 그들은 다만 다리를 가로지르는 발판의 양쪽 끝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보초병 어깨 너머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철도는 숲속으로 100야드 가까이 곧게 뻗어 나아가다가 곡선을 그리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분명 그 너머 어딘가에 전초 기지가 있을 터였다. 개울 건너편 기슭은 탁 트인 지형으로, 완만한 경사지의 정상에는 수직으로 세운 통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울타리에는 소총 사격을 위한 총안이 뚫려 있었고, 다리를 겨냥한 황동 대포의 포구가  흉벽을 통해 튀어나와 있었다. 다리와 요새 사이 경사면 중간쯤에는 구경꾼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대열을 갖춘 보병 일개 중대였다. 병사들은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소총 개머리판은 땅에 닿아 있고 총신은 오른쪽 어깨에 기대어 뒤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두 손은 총대 위에 포개져 있었다대열의 오른쪽 끝에는 중위 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는 칼 끝을 땅에 댄 채 왼손을 오른손 위에 얹고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에 있는 네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중대의 병사들은 다리를 향해 선 채, 미동도 없이 무표정한 시선으로 그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개울가 쪽을 향해 서 있는 초병들은 마치 다리를 장식하는 조각상처럼 보였다. 대위는 팔짱을 낀 채 침묵 속에서 부하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별다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죽음이란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고귀한 손님과 같아서, 죽음과 가장 친숙한 사람들조차도 마땅히 격식을 갖춘 경의를 표하며 맞이해야 한다. 군대 예절에서 침묵과 부동의 자세는 곧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다.

    교수형을 당하게 된 남자는 얼핏 보아 서른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농장주의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민간인이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훌륭했다. 곧게 뻗은 코, 다부진 입매, 그리고 넓은 이마가 돋보였는데, 이마 위로 길고 짙은 머리카락을 뒤로 가지런히 빗어 넘겨 귀를 덮고는 몸에 잘 맞는 프록코트의 깃까지 내려오게 했다. 콧수염과 뾰족한 턱수염을 길렀으나 구레나룻은 없었다. 크고 짙은 회색 눈은 인자한 표정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목에 올가미가 걸린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분명 그는 저속한 살인범 따위가 아니었다. 군법은 폭넓게 적용되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신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준비가 끝나자 두 사병이 옆으로 물러나 각자 자신들이 서 있던 판자를 치웠다. 하사관은 대위 쪽으로 몸을 돌려 경례를 한 뒤 대위의 바로 뒤에 섰고, 대위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이로써 사형수와 하사관은 다리의 침목 세 개를 가로질러 놓은 하나의 판자의 양쪽 끝에 서게 되었다. 민간인인 사형수가 서 있던 판자 끝부분은 네 번째 침목에 거의 닿을 듯했으나 완전히 닿지는 않았다. 앞서 대위의 체중으로 고정되어 있던 이 판자는, 이제 하사관의 체중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대위가 신호를 보내면 하사관이 옆으로 비켜설 것이고, 그러면 판자가 기울어지면서 사형수는 침목 사이 공간으로 떨어지게 될 터였다.그의 판단으로는 그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얼굴이 가려지거나 눈이 안대로 덮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잠시 자신의 ‘불안정한 발밑’을 내려다보다가, 발아래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개울물로 시선을 돌렸다. 물결을 따라 춤추듯 떠내려가는 유목流木 하나가 눈에 띄었고, 그의 시선은 그것을 쫓아 물길을 따라갔다. 참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다! 정말이지 더디게 흐르는 개울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 물결, 하류 쪽 강 기슭 아래에 낮게 깔린 자욱한 안개, 요새와 병사들, 그리고 떠내려가는 나무 토막 같은 것들이 그의 주의를 흩뜨려 놓았다. 그러던 중 그는 또 다른 혼란을 느꼈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는 그의 의식 속으로 무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그것은 마치 대장장이가 모루를 망치로 내리칠 때 나는 듯한 날카롭고 또렷한 금속성 타격음으로, 특유한 울림이었다. 그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이 먼 곳에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둘 다인 것 같았다. 소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었지만, 마치 죽음의 종소리처럼 느리게 울려 퍼졌다. 그는 매번 새로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초조함과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불안감을 느꼈다. 침묵의 간격은 점점 길어졌고, 그 같은 지연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소리가 점점 드물어질수록 소리는 더욱 강렬하고 날카로워졌다. 마치 칼로 찌르는 듯한 소리에 그는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그가 들은 것은 바로 자기 손목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였다.

    그는 눈을 뜨고 발밑의 물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손만 풀 수 있다면’, 그가 생각했다.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개울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물속으로 뛰어들어 총알을 피한 다음, 힘차게 헤엄쳐 강가에 닿고 숲으로 들어가 집으로 도망치는 거야. 다행히도 우리 집은 아직 그들의 전선 밖에 있어. 아내와 아이들은 침략군이 진격해 온 최전선 너머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지.’

    여기에 글로 옮겨 적어야 할 이 생각들은, 운명에 처한 남자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떠오른 것이 아닌 순간적인 것이었다. 대위는 하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사는 옆으로 비켜 섰다

     II

    페이턴 파쿠어는 앨라배마주의 유서 깊고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의 부유한 농장주였다. 노예 소유주이자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이었던 그는, 당연하게도 초창기부터 연방 탈퇴를 지지했으며 남부의 대의에 열렬히 헌신했다. 여기서 굳이 상세히 밝힐 필요 없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그는 코린트 함락으로 막을 내린 참담한 전투를 치른 그 용맹한 군대에 합류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명예스러움으로 답답함을 느끼며,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 군인으로서의 더 큰 삶, 그리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갈망했다. 전시에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남부를 돕는 일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임무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는 군인이었던 민간인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위험한 모험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는 '사랑과 전쟁에서는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솔직히 말해 이 같은 비도덕적인 격언을 적어도 그 일부만큼은 진심으로, 그리고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녁, 파쿠어와 그의 아내가 집 앞 가까운 곳의 소박한 벤치에 앉아 있을 때, 회색 군복을 입은 병사 한 명이 말을 타고 다가와 물 한 잔을 청했다. 파쿠어 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하얀 손으로 직접 물을 내어주었다. 아내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남편은 먼지 투성이가 된 그 기병에게 다가가 전방의 소식을 걱정스레 물었다. 그 병사가 대답했다.

    "북군이 철도를 보수하며 다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올빼미 냇가 다리까지 이르러 다리를 수리하고 북쪽 강변에 방어용 목책을 세웠습니다. 사령관은 철도나 다리, 터널을 비롯하여 열차를 방해하다 적발되는 민간인은 즉결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명령을 내렸고, 이 명령문은 곳곳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저도 그 명령문을 직접 보았습니다."

    "올빼미 냇가까지는  얼마나 멀어요?” 파쿠어가 물었다.

    “약 30마일 정도요.”

    “그 개울 이쪽으로는 경찰이 없는 건가요?”

    "철로를 따라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초소 하나와, 다리 이쪽 끝에 있는 보초 한 명이 전부입니다." 파쿠어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떤 사람, 예를 들어 민간인이자 교수형을 연구하는 사람이 초소를 몰래 빠져나가 보초를 제압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군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한 달 전 그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홍수로 떠내려 온 엄청난 양의 유목이 다리 이쪽 끝에 있는 나무 교각에 걸려 쌓여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지금은 바짝 말라 있어서 마치 불쏘시개처럼 아주 잘 탈 겁니다."

    파쿠어 부인이 물을 가져오자 병사는 그것을 마셨다. 그는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고 여인의 남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말을 타고 떠났다. 한 시간 후 날이 저물자, 그는 자신이 왔던 북쪽 방향으로 향하여 그 농장을 다시 지나쳐 갔다. 그는 북군 정찰병이었다.

     III

    페이턴 파쿠어는 다리 아래로 곧장 추락하며 의식을 잃었고, 마치 이미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이 같은 상태에서 그가 다시 깨어난 것은 -그에게는 마치 영겁의 세월이 흐른 뒤처럼 느껴졌지만- 목을 강하게 조여 오는 통증과 뒤이어 밀려온 질식감 때문이었다. 날카롭고도 강렬한 고통이 목에서 시작되어 온몸의 구석구석과 사지로 뻗어 나가는 듯했다. 그 고통은 마치 뚜렷한 갈래를 따라 번뜩이며 퍼져 나가는 듯했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요동쳤다. 그것은 마치 맥동하는 불길의 흐름이 되어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달구는 듯했다. 머리는 꽉 찬 느낌, 즉 충혈된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러한 감각은 생각을 동반하지 않았다. 그의 지적인 부분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오직 느낄 수 있는 능력만 남았는데, 그 느낌은 바로 고통이었다. 그는 움직임을 의식했다. 이제는 물질적 실체 없이 오직 불타는 심장만이 되어 빛나는 구름 속에 감싸인 채, 그는 거대한 진자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의 주변의 빛이 큰 물보라 소리와 함께 위로 솟구쳤다. 그의 귀에는 끔찍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모든 것이 차가워지고 어두워졌다. 그 순간 사고력이 되살아났다. 그는 밧줄이 끊어져 자신이 개울로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목을 더 세게 조여 오는 일은 없었다. 목에 감긴 올가미가 이미 숨을 막고 있었기에 오히려 폐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었던 것이다. 강바닥에서 교수형으로 죽다니! 그는 그러한 죽음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뜬 그는 머리 위로 희미한 빛줄기를 보았으나, 그 빛은 너무나 멀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가라앉고 있었다. 빛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아주 가느다란 불빛으로 변했다. 그러다 빛이 다시 커지고 밝아지기 시작했고, 그는 자신이 수면을 향해 떠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지금 그 상태가 무척이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교수형을 당하거나 물에 빠져 죽는 건 그리 나쁘지 않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에 맞는 건 싫어. 아니, 총에 맞지는 않을 거야. 그건 공평하지 않으니까."

    그는 의식을 하지 못했으나, 손목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자신이 두 손을 풀어내려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마치 한가한 구경꾼이 마술사의 묘기를 지켜보듯, 그 결과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양손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훌륭한 움직임이로다! 얼마나 장엄하고 초인적인 힘인가! 아, 정말 멋진 시도였어! 브라보! 마침내 밧줄이 풀렸고, 그의 팔은 양옆으로 벌어지며 위로 떠올랐다. 밝아오는 빛 속에서 양손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새로운 흥미를 느끼며 손이 자신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하나하나 낚아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은 올가미를 뜯어내어 거칠게 내던졌는데, 그 움직임은 마치 물뱀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다시 끼워, 다시 끼워!" 그는 자신의 손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고 생각했다. 올가미를 풀어낸 직후,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극심한 고통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목은 끔찍하게 아팠고 뇌는 불타는 듯했으며, 희미하게 고동치던 심장은 마치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듯 거세게 요동쳤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온몸을 뒤틀어 쥐어짜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를 거스른 두 손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손은 재빠르게 아래로 물을 힘차게 내리치며 그를 수면 위로 밀어 올렸다. 마침내 머리가 물 밖으로 솟아올랐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멀 듯했고, 가슴은 경련하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폐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으나,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내뱉았다.

    이제 그의 모든 감각은 온전히 되살아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초자연적이라 할 만큼 예민하고 기민해져 있었다. 몸에 가해진 그 엄청난 충격으로 감각이 예민해져, 그는 이전에는 결코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포착할 수가 있었다. 그는 얼굴에 와 닿는 물결의 일렁임을 느꼈고, 물결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려 개울가 숲을 바라보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물론, 잎사귀와 그 잎맥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보였으며, 심지어 그 위에 앉은 곤충들인 메뚜기, 찬란한 빛깔의 파리,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회색 거미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수백만 포기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서 일렁이는 무지개빛 색채도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개울의 소용돌이 위를 맴도는 각다귀 떼의 윙윙거리는 소리, 잠자리 날갯짓 소리, 마치 배를 띄우는 노처럼 움직이는 물거미 다리의 움직임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음악처럼 들려왔다. 물고기 한 마리가 그의 시선 아래를 미끄러지듯 지나갔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그 몸짓의 소리 또한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순간 눈에 보이는 세상이 그를 중심축 삼아 천천히 회전하는 듯했고, 그의 시야에 다리와 요새, 다리 위의 병사들 즉, 대위, 하사, 그리고 자신의 처형을 담당한 두 명의 사병이 들어왔다. 그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몸짓을 하며 그를 가리켰다. 대위는 권총을 꺼내 들었으나 발사하지는 않았고, 나머지 병사들은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기괴하고 끔찍했으며, 그 모습은 거대하게 보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총성이 들리더니 무언가가 그의 머리에서 불과 몇 인치 떨어진 수면을 강하게 때리며 그의 얼굴에 물보라를 뿌렸다. 두 번째 총성이 들렸고, 그는 총구에서 옅은 푸른 연기가 나는 총을 어깨에 멘 한 초병을 보았다. 물속의 그는 다리 위 초병의 눈이 소총의 가늠자를 통해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이 회색이라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고, 회색 눈이 가장 예리하며 유명한 명사수들은 모두 그런 눈을 가졌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병의 사격은 빗나갔다.

    역류하는 소용돌이가 파쿠어를 낚아채 반쯤 몸을 돌려놓았고, 따라서 그는 다시 요새 맞은편 강둑의 숲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등 뒤에서 단조로운 가락의 맑고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물 위를 건너오며 다른 모든 소리 -심지어 귓가에 들리던 잔물결 소리까지도- 를 뚫고 압도할 만큼 또렷하게 들려왔다. 비록 군인은 아니었지만, 그는 군영을 자주 드나들었던 탓에 그토록 의도적이고 느릿하며 숨을 섞어 내뱉는 듯한 구령이 지닌 무시무시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강둑에 있는 중위가 그날 아침의 '작업'에 직접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병사들에게 침착함을 예고하고 또 강요하듯 한결같이 차분한 어조로, 그리고 정확하게 계산된 간격을 두고- 그 잔인한 말들이 떨어졌던가:

    “중대!… 차렷!… 앞에 총!… 준비!… 조준!… 발사!”

     파쿠어는 물속으로 잠수했다. 가능한 한 깊이 들어갔다. 귓가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포효처럼 거센 물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는 일제 사격의 둔탁한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수면을 향해 떠오르던 그의 눈에 기묘하게 납작해진 채 천천히 아래로 흔들리며 떨어지는 반짝이는 금속 조각들이 들어왔다. 그중 몇 개가 얼굴과 손에 닿았다가 떨어져 계속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나가 옷깃과 목 사이에 끼어들었는데, 불쾌할 정도로 뜨거워 그는 그것을 잡아 떼어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는 자신이 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었음을 알았다. 어느새 물살을 타고 하류 쪽으로 꽤 멀리 떠내려 와 안전한 곳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병사들은 장전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햇빛을 받은 금속제 장전봉들이 일제히 번뜩였는데,  총신에서 뽑혀 공중에서 회전한 뒤 다시 제자리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두 초병이 다시 총을 쏘았으나, 제각각 쏜 그 사격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 쫓기는 남자는 어깨 너머로 그 모든 광경을 보았다. 그는 이제 물살을 타고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의 두뇌는 팔다리 만큼이나 활발하게 움직였고, 생각은 번개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 장교가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나 저지를 법한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진 않겠지.'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한 발의 총알을 피하는 것 만큼이나 일제 사격을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니까. 아마 벌써 자유 사격 명령을 내렸을 거야. 그러나, 맙소사, 그 모든 총알을 다 피할 수는 없어!'

    그때  바로 앞 2야드도 안 되는 거리에서 끔찍한 물보라가 일더니,  크고 빠른 소리가 뒤따랐다. 그 소리는 마치 허공을 타고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들렸고, 곧이어 폭발을 하면서 강물 깊숙이 흔들어 놓은 다음 점점 여리게 사라져 갔다! 솟아 오른 물줄기가 그에게 쏟아져 내리며 그의 눈을 멀게 하고 숨통을 조였다! 대포가 이 싸움에 가담한 것이다. 그는 휘몰아치는 물살 속에서 고개를 돌려 벗어나려 애썼고, 그의 앞 허공을 가르며 나르는 포탄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렸다. 포탄은 순식간에  멀리 숲 속 나뭇가지들을 부수고 있었다.

    ‘저들은 계속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그는 생각했다. ‘다음 번엔 산탄을 쏘겠지. 대포를 계속 주시해야 해. 연기가 바로 신호니까. 포성은 너무 늦게 들리거든. 포탄보다 뒤처져서 오니까 말이야. 참 좋은 대포로군.’

    갑자기 그는 자신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물과 강둑, 숲, 그리고 이제는 멀어진 다리와 요새,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뒤섞여 흐릿하게 보였다. 사물들은 오직 색깔로만 알 수가 있었고, 그의 눈에는 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색의 띠들만이 보였다. 그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기증 속에 구역질이 날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며 휩쓸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튀어나온 지형 뒤편, 즉 개울의 왼쪽 기슭(남쪽 기슭) 아래 자갈밭 위로 내던져졌다.

    갑작스럽게 멈추면서 자갈밭에 스치는 손의 감촉에 그는 정신을 차렸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모래를 한 움큼 쥐어 온몸에 뿌리며 소리를 질러 기뻐했다. 모래는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처럼 보였고, 그가 생각하기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다. 강둑의 나무들은 거대한 정원수 같았다. 그는 나무들의 배열에서 뚜렷한 질서를 보았고, 꽃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나무 줄기 사이로 묘한 장밋빛이 새어 나왔고,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마치 아이올리아 하프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완벽한 탈출을 바라지 않았다. 다시 잡힐 때까지 이 매혹적인 장소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머리 위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포도탄이 쉿 소리를 내며 덜컥거리는 소리에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당황한 포병이 작별인사 삼아 무작위로 쏜 포탄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경사진 둑을 뛰어올라,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해를  따라 방향을 잡으며 온종일 걸었다. 숲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나무꾼의 오솔길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숲이 멈추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이 이토록 거친 자연 속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몰랐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기이한 느낌이 있었다.

    날이 저물 무렵, 그는 피로와 발의 통증, 그리고 심한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길은 마치 도시의 거리처럼 넓고 곧게 뻗어 있었으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했다. 길가에는 경작지도, 그 어디에도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검은 몸통의 나무들이 양옆으로 곧게 뻗어 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원근법 그림처럼 지평선 위의 한 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숲 사이로 난 틈을 통해 위를 올려다보자, 낯선 별자리로 무리 지어 있는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보였다. 그는 그 별들이 어떤 비밀스럽고도 사악한 뜻을 지닌 질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양옆의 숲은 기이한 소리들로 가득했는데, 그중에서도 그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를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다시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목에 통증이 느껴져 손을 대어 보니 끔찍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밧줄에 쓸려 생긴 검은 띠 모양의 상처가 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뻑뻑했고, 더 이상 감을 수조차 없었다. 갈증으로 혀가 부어올랐는데, 그는 이빨 사이로 혀를 내밀어 차가운 공기에 닿게 함으로써  열기를 식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 길 위로 잔디가 얼마나 부드럽게 깔려 있었던지, 이제 그는 발밑에서 더 이상 거친 길바닥의 감촉을 느낄 수 없었다.

    이제 또 다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분명 그는 고통 속에서도 걷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착각에서 깨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모든 것이 그가 떠날 때 그대로이며, 아침 햇살 아래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밤새도록 길을 걸어온 것이 틀림없다. 대문을 밀고 넓고 하얀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던 그는 여인의 옷자락이 나풀거리는 모습을 본다. 상쾌하고 단아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의 아내가 그를 맞이하려 베란다에서 내려오고 있다. 그녀는 계단 아래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머금은 채, 비할 데 없는 우아함과 위엄을 지닌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두 팔을 뻗으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녀를 막 껴안으려는 찰나, 그는 목덜미에 강렬한 타격을 느낀다. 대포가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눈부시게 하얀 빛이 사방을 뒤덮고, 이내 모든 것이 어둠과 침묵 속으로 잠겨든다!

    페이턴 파쿠어는 죽어 있었다. 목이 부러진 그의 시신은 올빼미 냇가 다리의 목재 구조물 아래에서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C)

번역: 박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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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브로스 G. 비어스(Ambrose G. Bierce, 1842 -1914. 미국 작가, 언론인, 시인)다작에 다재다능한 작가였던 비어스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사람으로,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였음. 그의 공포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와 H. P. 러브크래프트와 같은 반열에 있다. S. T. 조시는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로 유베날, 스위프트, 볼테르와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했음. 그의 전쟁 소설은 스티븐 크레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에게 영향을 주었음. 또한 그는 영향력 있고 두려움을 주는 문학 비평가로도 알려져 있음. 최근 수십 년 동안 비어스는 우화 작가이자 시인으로서 더욱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

✍️ Translator’s Note (역자의 말)

"죽음 직전의 극단적인 순간에 펼쳐지는 주인공의 왜곡된 시간 감각과 내면 심리를 긴장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이번 번역의 관건이었습니다. 현실의 냉혹한 정적과 환상 속의 긴박한 탈출 과정이 대비되도록 문장의 호흡을 다듬었으며, 마지막 대반전이 주는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사적 톤을 섬세하게 유지했습니다."

📚 Brief Literary Commentary (작품 해설)

"앰브로스 비어스의 이 단편은 심리적 시간의 흐름을 다룬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남북전쟁이라는 냉혹한 배경 속에서 처형을 앞둔 인물의 찰나의 환상을 다루며,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집착과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반전 구조는 훗날 수많은 현대 소설과 영화 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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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든


          Walden      


              by 

Henry David Thoreau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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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780~1842):
    아마추어 자연주의자, 수필가, 고독과 시를 사랑하는 인물. 랠프 왈도 에머슨의 제자. 왈든 호숫가 에머슨의 토지에 오두막을 지어, 그에 대한 지적 채무를 상징케 하는 인물. 칸트의 선험론에 영향을 받은 그는 교육, 자립정신, 영적 깨달음을 통하여 자기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인물.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수필가, 시인. 선험주의를 이끄는 지도자. 소로우의 스승 겸 보호자. 인습을 지킬 것인가에 관해 소로우와 견해가 다른 인물.

테리앙Alex Therien:
    소로우 이웃의 노동자. 소박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사는 인물. 문맹이지만 지적인 면이 있는 남자. 소로우가 왈든 호수에 비견하는 인물.

존 필드John Field:
    아일랜드계 미국인 노동자. 정직, 근면하나 주변머리가 없고, 타고난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없어 고생하는 인물.

앨코트Amos Bronson Alcott:
    소로우가 철학자로 칭하는 인물. 교육자겸 사회개혁론자. 보스톤 소재 Temple School 설립자.

챈닝William Ellery Channing:
    소로우의 친구. 시인. 선험철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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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소로우는 마사추세츠주 콩코드 인근 왈든 호숫가(그의 정신적 지주인 랠프 왈도 에머슨 소유의 토지)에서 보낸 2년간의 모험적인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그곳에서 2년 2개월을 보낸 후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갔는데, 이는 영원한 삶의 양식이 아닌 다만 실험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시도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했는데, 야생에서 자신이 누린 행복, 겨울철 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심, 쉽게 교우관계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 그리고 사람들의 질투심에 관해 말을 하고 있다.

    소로우는 자신의 실험이 가르쳐 준 교훈, 즉 단순한 생활양식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영위한 단순 소박한 생활을 자세히 이야기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가치를 깨닫게 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은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지나친 노고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근심과 정신적 압박 때문에 모든 시간을 노동에 쏟아붓고 그 결과 내면의 자유를 잃게 된다고 했다. 죄수들이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듯 농부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농장이라는 사슬에 매어 있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필요 이상의 일은 사람들을 속박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사물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은 늘어나고, 이와는 반대로 필요성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소로우는 단연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소로우는 4가지 필수품, 즉 식품, 거처, 옷, 땔감을 말하고 있다. 자연은 이 물건들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누구나 이 자연이 주는 기본적인 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토지에 집착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고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로우는 단순 소박함과 자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두막집을 지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한 그는 나무를 자르기 위한 도끼를 빌려야 했다. 그는 그 도끼를 빌렸을 때보다 더 날카롭게 갈아 돌려주었다. 그는 몇 가지 기부받은 물건도 사들인 물건도 있었다. 느긋하게 일을 시작하여 봄철 내내 꾸준히 일을 하였다.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소로우 자신이 인습과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그날, 그는 이사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집을 짓고 농사일을 한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여 독자와 공유했는데, 주고받은 돈을 문자 그대로 한 푼도 빠짐없이 회계 처리를 했다. 농사일로는 대략 15달러를 투자하여 9달러가량의 이득을 보았다고 했다. 콩, 옥수수, 완두콩, 감자 등 자신을 지탱해 준 일상 식품들에 대한 설명과 이들의 시장 가격도 말해 주었다. 왈든에서의 첫 8개월 동안 소로우는 대략 62달러의 비용을 써 37달러의 소득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25달러의 비용으로 집과 원하는 자유를 얻은 것이고, 그의 생각으로 이는 괜찮은 거래였다.


나는 어디에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

    소로우는 왈든을 선택하기 전에 정착할 뻔했던 몇몇 장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두 규모가 거대한 곳들이었다. 그는 로마 철학자 카토(Marcus Porcius Cato, 234~149 BC)가 한 경고의 말을 인용했는데, 농장을 사들이려면 문서에 서명하기 전 그 구매 여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많은 개선점이 필요했던 인근의 농장에 관심이 있었으나 문서에 서명을 하기 전, 그 농장주의 아내가 돌연 팔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따라서 소로우는 구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토지에 대규모 경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포기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생활이 단순해진 그는 “가능한 한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은 삶” 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소로우는 의무에서 벗어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숲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우체국과 우편제도가 대변하는 모든 억압적인 사회관계를 벗어나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법적 행위의 포기는 역설적이게도, 그로 하여금 진정한 소유주가 되게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의 군주(영국 시인 William Cowper(1781~1800)가 한 말)”라는 뜻에서 한 사람의 시인과 같다.

    소로우가 왈든에 새로 지은 집에 대한 기쁨은, 처음으로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자존심 이상의 것이었다. 그 집은 그의 내면에서 빛나는 철학적 성취이며, 바로 본질적인 문제를 극복했다는 상징과 같았다. 독립기념일에 그는 그 새 거주지로 이사를 하였고, 아직 굴뚝이 없고 벽토를 못 발랐지만 올림푸스 산꼭대기 신이 된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만일 느낄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신들에게나 적합한 천국은 어디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누구든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름날 밤 신선한 공기의 유익함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누구든 영혼이라는 예술 속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새겨 넣음이 좋다고 했다. 소로우의 오두막은 거의 정신적인 재료로 지은 집으로 천문학자들이 야간에 관찰하는 아득히 먼 곳, 어느 천상의 집과 같았다. 그는 카시오페아 좌 뒤 아득히 먼 우주의 어느 곳, 그 오두막 속 나무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걸 더 좋아한 것이다. 그는 시간과 물질로부터 자유롭고, 시간은 하나의 강으로서 자신이 낚시질을 하는 곳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간여할 수 있는 듯했다. 마치 영원 속에서 사는 신처럼. 그는 맨 아래 암반에 이르러 “리얼로미터(Realometer: 인식의 현실성을 측정하는 상상의 도구)"로 진리를 잴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로 말을 맺고 있다.

    소로우가 몰두한 즐거운 일들 가운데 하나는 독서이다. 그는 고대 이집트나 힌두의 현인들이 신상으로부터 장막을 걷어 올린 일을 독서에 비교하며 독서의 이익을 크게 주장하였다. 독서에 관한 그의 이 같은 발언이 풍자냐 아니냐의 논쟁이 되고 있지만, 어쨌든 독서는 숲속 생활 특히 건물을 짓고 난 후 그의 중요한 오락 가운데 하나이었음이 분명하다. 집을 짓던 여름 내내 호머의 일리어드Iliad를 책상 위에 놓고 이따금씩 들여다보았지만, 지금은 오두막으로 다만 이사를 한 것이 아닌 앞에서 말한 현실에 대한 완전한 지배자로서 독서는 새로운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현대의 싸구려 번역본이 아닌 그리스어나 라틴어 원본의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칭송했다.

    소로우는 호머의 저서가, 적어도 그의 명성에 합당할 만큼 영어로 출판된 적이 없다고 까지 했다. 그는 농사일이나 집짓는 일을 강조하듯 마찬가지로 “읽는 일”을 강조했고, 훌륭한 독서가를 오랜 훈련과 규칙적인 연습으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운동선수에 비교했다. 소로우는 인쇄된 언어에 신비할 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연설이라도 책만큼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터에서도 일리어드와 함께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소로우는 폭넓은 독서를 권하고, 성경만을 읽는 사람들을 점잖게 조롱하며, 도서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락 관련 책이 아닌 걸작을 읽으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사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역이지만, 고유한 정신을 좀먹는 콩코드의 지배적인 문화도 비판했다. 기술과 운송이라는 현대 사회의 찬미 받을 발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발전 즉 정신과 영혼의 발전은 잊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대 히브리인들을 이 세상에서 성서를 가진 유일한 사람으로 믿으며, 힌두 교도처럼 또 다른 경전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콩코드 주민들을 비판했다. 소로우는 정신적인 빈약보다 육체적인 질병에 더 많은 희생을 지불하는 주민들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분노한 예언자처럼 말하기를, 공공 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며 “뉴잉글랜드는 세계의 모든 현자들을 초청하여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귀족을 생산하는 지역 계급제도를 비판했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고상하게 하는 과업을 게을리 하는 일도 꾸짖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귀족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귀족 마을을 갖게 되는” 귀족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소리와 고독:

    앞 장에서의 학구적인 태도와는 달리 소로우는 일상생활에 조심하는 일을 칭찬하고 옛 서사시에 빠져드는 걸 반대했다. 읽는 사람에게 단지 독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책을 보는 사람이 될 것이냐를 물으며, 우리는 책으로 배우는 것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고 일상생활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도록“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하는 그 무엇은, 위대한 것이 아닌 소로우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그가 말하듯 따듯한 햇빛이 쬐는 창가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듣고 명상에 잠겨 옷나무를 비롯하여 몇 가지 식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로우의 평온은 그의 집을 지나가는 핏츠버그 철도의 굉음으로 깨어진다. 그는 상업을 생각해보았다. 그는 상업 활동의 역동성을 찬미하고, 그 역동성을 상인들의 용맹성이라고도 했지만 상업에 대한 지나친 욕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일요일이면 소로우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다. 밤이 되면 “밤의 마녀”인 올빼미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 울음소리는 신음하듯 “우으으..으 ”하는 소리였다. 그는 올빼미의 존재를 기뻐했는데, 사람들의 “불만스러운 생각”을 소리로 나타내며 “멍청한 소리로 발광하듯 부엉부엉” 했기 때문이었다. 수탉이나 어떤 가축이 없더라도 그의 집은 짐승들 소리로 가득했다. 자연이 바로 창틀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로우는 자연을 느낀 어느 “유쾌한 밤”을 이야기 했다. 싸늘한 바람이 불었는데, 개구리와 밤 짐승들로 더욱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누군가 방문객들이 몇 가지 선물을 놓고 갔더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이웃과의 거리는 1마일 정도였지만, 그는 마치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듯 커다란 고독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고독 속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자연 속에서 달콤하고 인정 넘치는 사회”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편안함이 마치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로우가 사회를 포기한 게 아니고, 무의미한 인간 사회를 초자연적인 자연 사회와 맞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동료들이 마음을 닫고 있다면, 그들 가운데서도 누구든 고독할 것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마을로부터 벗어나 느끼는 심오한 기쁨에 관해 명상에 잠겼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인근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을 사귀었다. 노인은 그에게 “옛 시대와 새로운 영원”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사귄 어느 노부인은 신화보다 더 먼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만남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상상 속이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소로우는 자연이 주는 이로움과 자연과의 깊은 친교를 또다시 칭송했다. 아침 공기 속 미풍이 생활에 필요한 유일한 약품이라고 했다.

방문객들:

    소로우는 누구든 함께 동반자가 되고 싶으며, 그들을 위해 방문객 용 3개의 의자를 마련해놓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집이 좁다는 걸 알고, 개인은 국가와 같아 그들 간에는 적당한 넓이의 자연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문 밖 소나무 숲속으로 자주 가서 대화를 가졌다. 대화의 주최자로서 그는 상투적이 아니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였고, 음식이 부족할 경우는 그나 방문객이나 개의치 않았다. 음식 등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더욱 도우며 소로우는, 일천 명의 방문객에게도 스무 명 정도로 쉽게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소로우를 찾는 방문객은 계속 왔다. 그는 마을에 살 때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사회성도 점점 좋아져 갔다. 그를 만나고자 한 사람들은 마을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여행해야 했다. 그는 방랑자들도, 도보 여행자들도 만났다. 소로우는 이처럼 거친 사람들 가운데서도 놀랄만한 특질이 있음을 자주 발견했고, 유쾌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이와는 반대로 소로우는 거지들을 경멸하며 “자선의 대상은 방문객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거지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는 "딸기 따기“ 같은 행사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한 열렬한 노예폐지론자로서 소로우는 지하 철도를 이용하여 도주한 노예들을 돕기도 했다. 비록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소로우는 또한 인근 주민이나 노동자들도 맞아들였다. 그들 가운데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행복하고 가식이 없어 보인 그는 벌목꾼 알렉스 테리앙이었다. 소로우와는 달리 그는 문맹이었다. 소로우는 그를 “동물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그의 육체적 강인함과 스스로 즐길 줄 아는 능력이 경이로웠다. 그는 “자각”을 할 만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나 가끔 지혜를 들어낼 때도 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어내길 주저하고 그것을 기록할 능력이 없었으나, 테리앙은 공손하고 검소했다. 그가 가끔 “보잘 것 없으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소로우는 “가장 낮은 계층에도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테리앙을 왈든 호수에 비교했다. 테리앙의 겉모습은 “어둡고 진흙투성이”이나, 그의 내면은 왈든 호수처럼 깊어, 바닥이 없다고 했다.

    소로우는 여인들이나 아이들이 남자들보다 숲을 더 즐긴다고 보았다. 그는 상인들이나 농부들에게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 아닌, 마을로부터 먼 거리 등 그 약점에 유의하라고 했다. 비록 숲속을 거니는 일이 즐겁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그들이 실제로 숲속을 거니는 걸 그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삶은 “생존”에 매달려, 삶을 위한 시간이 없다고 했다.

콩밭:

    소로우는 2에이커 반 넓이의 밭에 콩을 심었다. 감자, 무우, 완두콩도 조금씩 함께 심었다. 여름 내내 농사일을 했다. 맨발로 일하면서 설계를 하고 때로는 휴식을 취하며 주변의 동식물을 살폈다. 매일 콩밭의 풀을 뽑으며 농부의 일상생활을 했다. 비가 오면 작물에 도움이 되었고 들쥐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토질을 비옥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는, 백인들이 오기 전 그 옛날 이곳에 한 나라가 있었다가 사라졌고 그들이 옥수수와 콩을 경작하여 그로 인해 토질이 어느 정도 나빠졌음을 알았다. 땅을 파보니 연대를 알 수 없는 흔적들 속에 화살촉과 도기 파편 등 그 증거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소로우는 풀을 뽑으며 자연의 모습과 소리 등 주변의 “고갈되지 않은 즐거움”에 몰입했다. 그러나 또한 근처 마을로부터 콩밭을 건너 군사 훈련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날들에 처해 있음을 알고는, 분쟁 속에서도 자신의 자유는 지켜지리라 확신했다. 그는 포성을 듣는 즉시 “멕시코인에게 즐겨 침을 뱉을 수 있으리라 느낄 것이고...내 기사도를 발휘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 들쥐나 스컹크를 찾아볼 것이며.., 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시골구석의 그는 전쟁의 필요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수확의 결과 소로우는 15달라가 채 못 되는 돈을 지출했고 24달라 어치 수확을 하였으니 대략 9달라의 이윤을 얻은 셈이다. 자신도 콩을 별로 먹지 않았음으로 대부분 쌀과 교환을 하고, 무우와 완두콩은 식량으로 비축했다. 농사에 관한 충고로 소로우는 밭갈이, 해충 방지, 첫서리가 내리기 전 조기 수확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창출해낸 이익에도 불구하고 소로우는, 자신의 농사일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작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드는 건 수확이 아니라 농부의 수양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농장의 성공을 위해 그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사람의 수확에는 별로라는 데 소로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양이 휴한지나 경작지에 차별 없이 빛을 쬐듯 자연은 그해 농사의 성패여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소로우의 생각이었다. 그는 어느 작물이던 그 일부는 들쥐에게 주는 희생물을 뜻한다고 했다. 밭에 번식하는 잡초는 배고픈 농부에게는 바로 저주이겠지만, 배고픈 새에게는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결론 내리기를, 농부는 근심을 하여서는 안 되며 자연이 내리는 축복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을과 연못들:

    정오경에 아침 잡일을 끝낸 다음, 소로우는 연못에서 잠시 목욕을 하고 그날 남은 시간은 여가로 보낼 준비를 했다. 일주일에 몇 번 그는 콩코드로 산책을 했고 그곳에서 최근 소식을 들은 다음 광장이나 상점, 바, 우체국, 은행 등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상점마다 상품을 팔기 위해 소로우를 꼬득였지만 그는 상인들의 뻥에는 관심이 없었고 장터에서 너무 오랜 시간 어슬렁거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내리면 그는 자주 왈든 호숫가로 발길을 향했고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지자 주변의 나무들이나 발자국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밤길이 어둡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을에서조차도 어둠 속에 길을 잃는 일이 많으며 몇 시간을 헤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처럼 길을 잃는 일을 소로우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길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누구든 자신과 “우리들 관계의 무한성”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콩코드로 가는 길목에서 소로우는 “상원 의사당 문 앞에서 남자, 여자, 어린이, 가축을 파는 국가”에 통행세 지불을 거부했다는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다음날 아침 석방되어 왈든 호수로 되돌아갔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정부의 간섭 없이, 누구의 간섭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감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고 모든 계층의 누구든 언제나 환영을 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도적이란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에 존재한다고 했다.

호수들:

    물이 있는 곳은 대기 중의 정령과 상반관계에 있다. 그곳은 위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받아들인다. 물이 있는 곳은 땅과 하늘의 중개자이다. 소로우가 마을 생활을 오래하는 동안, 여가는 시골에서 보냈다. 그는 연못 위 보트에서 플릇을 불고, 밤이면 낚시를 하면서 비몽사몽간에 여기저기 저으며 마침내 낚시 줄이 당겨지면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이다. 그림과 같은 이러한 장면은 소로우로 하여금 콩코드의 호수들 특히 왈든에 대해 묵상하게 하였다.

    왈든은 특별히 큰 호수가 아니었지만 매우 깊고 물이 맑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 시대의 시각으로 연못의 물은 청색이거나 초록색 아니면 완전히 투명한 색으로 분류했다. 그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의 몸은 강물에서처럼 황색이 아닌 완전한 백색으로 보였다. 소로우는 왈든 호수가 바닥이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호숫가의 흰색 돌들(wallled-in)은 소로우로 하여금 "왈든“의 어원이 아닐까 생각케 했다. ‘프린트 호수’와 같은 다른 호수들은 각각 특징이 있으나 소로우는 호수들 간 유사성보다는 각각의 특징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연못 변두리에는 앞선 세대가 사용했던 희미한 흔적의 길들이 있다. 소로우는 호수 바닥의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말하고, 그것이 바로 왈든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아닐까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로 이곳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징벌로, 하나의 언덕이 땅속으로 가라앉아 생긴 호수가 왈든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소로우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옛 정착민들이 연못을 파겠다고 했다는 이야기에 소로우는 이의가 없었다. 그는 호수 주변의 언덕들에 있는 돌들이 호숫가를 이루고 있는 돌들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수에는 동물들도 있었다. 오리, 개구리, 밍크, 사향뒤쥐, 거북이 등 모두들 소로우가 설명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지식이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삶”보다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보다 고차원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호수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커 농장과 고차원의 법:

    소로우는 왈든 호수, 프린트 호수 건너 편 숲속을 거닐며 토지를 살펴보았다. 어느 날 낚시를 하다 비를 만난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베이커 농장 근처 오두막으로 갔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니 존 필드 가족이 있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 가족이다. 비록 강연 투이기는 했지만 소로우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하며 필드에게, 무엇이 돈 쓸 일이 우선인지를 생각하고 돈을 절약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은 손을 대지 않은 그대로가 최고의 상태이며 “유일하게 진정한 아메리카”는 차나 커피, 쇠고기 같은 사치품이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동료 철학자로서 필드에게 충고를 한다고 했으나, 필드는 그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소로우는 필드가 위험 부담에 관심이 없고 지혜로운 충고를 받아들일 만한 “수리 능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가족과 나눈 따듯함과 유머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이 그들과 헤어졌다. 더구나 소로우는 필드가 대대로 이어받은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옳지 않은 생각을 했다. 떠나기 전 그는 우물이 더럽고 두레박 끈이 끊어졌으며 두레박도 망가져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실 물을 요청했으므로, 그 집에서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묽은 죽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음식을 거부할 정도로 자신은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보다 고차원의 법칙들:

    집으로 가던 길에 소로우는 들쥐 한 마리를 보았다. 그것을 잡아먹고 싶은 원시적 욕망이 솟구쳤다. 그는 자신의 이중적인 성격 즉 한편은 귀족적이고 영적이나 또 다른 한편은 어둡고 야만적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양면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한 개인의 초기 교육단계에서 사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성장을 하면서 지적이고 정신적인 사람들은 한 단계 더 높아지고, 그들은 이제 “총과 낚시대”를 뒤로 물리는 것이다.

    비록 소로우는 숙달된 낚시꾼이지만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는 이유는, 물고기란 완벽한 영양 식품도 아니고 청결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 악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능과 원칙에 따라 채식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술, 홍차, 커피 등도 같은 이유로 회피했다. 그에게는 가장 검소한 음식이 최선의 음식이고 육식은 도덕적으로도 천박한 것으로, 스스로 도살을 해야 한다면 고기를 먹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목사는 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곡물이나 채소는 요리도 쉽고 포만감도 있다고 했다. 식욕에 복종하기보다는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즐기는 음식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이 많지만, 음식 맛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목을 축이기에는 포도주보다 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단순한 그의 입맛은 그의 다른 즐거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소로우는 음악이 주는 긴장보다는 신선한 공기 흡입을 더 좋아했다.

    소로우는 자신의 고결한 성격과 동물적인 성향을 구별하고 싶어 했다. 노력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패의 경우에도 상당한 보상이 따랐다고 했다.

    사람이란 동물적인 본능이 사라지면 신성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소로우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정숙할 수도 관능적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돌보는 건 각자의 책임이다. 그는, “모든 사람은 성전을 세우는 자” 라고 했다. 이 책임의 증거는 얼굴과 태도에 분명히 나타난다고 했다. 옳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면 고상한 인품이 눈에 보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천한 모습이 눈에 띄게 마련이라고 했다. 끝으로 소로우는 존 파머라는 사람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파머는 높은 수준의 음악을 듣는 평민을 대표하는 사람인데, 희망이 없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품고 보다 간소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파머는 마음을 낮추어 자신을 부활시키고, 그 이후 존경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야생의 이웃들과 난방:

    소로우는 친구 챈닝(William Ellery Channing, 1780~1842)이 콩코드에서 오면, 함께 왈든 호숫가로 가 낚시질을 했다. 시인으로서의 챈닝과 은둔자로서 자신 간에 나눈 많은 대화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고 있다. 시인 챈닝은 하늘의 구름에 몰두한 반면 소로우는 저녁 식사용 물고기 잡기라는 현실적인 일에 열중했다. 결국 챈닝은 물고기를 잡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소로우는 집안의 생쥐들과 놀이를 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그의 손에 있던 치즈를 낚아챘다. 그는 또 딱새, 개똥지바뀌, 자고새와 그 새끼들과 수시로 맞닥뜨렸다. 그는 이 야생 조류들을 암탉이나 병아리라고 불렀다. 드문 일이기는 했지만, 수달이나 너구리도 보았다. 그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에 의존하면서도, 숲에 숨어 사는 너구리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다. 그의 오두막으로부터 약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우물을 팠는데 오전 일이 끝나면 그곳으로 가 점심을 먹고, 물을 긷고, 책을 읽기도 했다. 그곳에서 도요새와 호도애새를 자주 보기도 했다.

    언젠가 소로우는 작은 몸집의 붉은 개미와 싸우는 커다란 흑개미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흑개미군단과 붉은 개미 군단의 싸움이었다. 붉은 개미 군단의 병정개미 수는 흑개미 군단의 반에 불과했다. 그 걸 본 소로우는 인간의 전쟁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병정개미들은 인간 병사와 마찬가지로 용감하고 사기충천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병정개미가 붙은 나무 조각을 집으로 가져가 관찰하기로 했다. 유리 뚜껑을 덮고 관찰했다. 목이 잘린 놈, 먹이가 된놈..., 그는 살아남은 개미를 놓아 주었다.

    소로우는 숲속에서 자주 고양이들을 만났다. 집 고양이지만 숲에 적응이 되어 야생이 살아나, 그가 접근하면 성난 소리를 냈다. 그는 날개가 달렸다고 한 고양이 한 마리가 생각났다. 나르는 다람쥐와 잡종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날쌘 고양이었다. 그는 그 고양이를 본 적이 없고 그 가죽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방석용이었다). 그는 시인이 되어 날개 달린 고양이를 갖는 환상에 젖었다. 그는 연못으로 가 보트를 타고 물새를 쫓는 때도 있었다. 물새는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하였지만, 가까이 가면 물속으로 다이빙을 한 후 웃음과 같은 큰소리를 내며 다시 솟아올랐다. 소로우는 이러한 과정에서, 오리들의 움직임에서 또는 기타 “야생의 이웃들”의 움직임에서 아무런 운율이나 움직임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물과 주변의 자연 환경에 취해 환호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난방:

    야생 사과와 밤나무 목장을 갈면서 소로우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의 선물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아직도 그가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이 남아 있기는 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은 눈부신 장관이 펼쳐지는 길로 오는, 가혹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걸 소로우는 잘 알고 있었다. 말벌은 무리지어 추운 겨울을 벗어나고, 소로우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는 호수 건너편으로 가 잦아드는 가을 햇빛에 잠시 몸을 담았다. 계절은 여름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소로우는 친구 챈닝의 도음을 받아 오두막에 굴뚝을 세우기 위한 석공 일을 공부하고 있었다. 11월이 되자 여름에 한 일이 훌륭한 투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는 난롯불로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왈든 호수가 얼기 시작했다. 소로우는 얇은 어름을 밟고 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물 아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고, 얼음 그자체도 그를 사로잡았다. 특히 공기 방울이 솟아올라 얼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얼음을 깨고 관찰해보니 물방울 주변에 어떻게 얼음이 형성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공기 방울이 얼음을 깨뜨려 소리를 내게 하고 있었다. 한 겨울이 되자 소로우는 일상적인 겨울철 일을 시작했다. 난로용 나무를 하고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떼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 가지 나무 장작과 불쏘시개를 사용하여 난로에 불을 지피고, 지하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두더지가 아늑하게 지내도록 해주었다. 그는 난로가 빈자나 부자 모두 따듯하게 해준다는 것과, 빙하시대가 다시 오면 빈부 차별 없이 모두 죽는다는 걸 깊이 생각해보았다.

과거의 거주자들과 겨울 방문객들:

    소로우는 난로 옆에 홀로 앉아 많은 밤을 보냈다. 창 밖에는 눈보라가 쳤다. 눈을 헤치고 마을로 가는 통로를 열수도 있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야생 속에 홀로 있는 소로우는, 왈든의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콩코드와 링컨을 연결하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지만 그 세기 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리라는 게 소로우의 생각이었다. 초기 주민들은 대부분 흑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카토 잉그래함, 노처녀 질파, 브리스터 프리만과 그의 아내를 생각했다. 그들의 집은 이제 세월이 흘러, 또는 화재로 모두 파괴되거나 사라져버렸다. 그는 12년 전 불타 없어진 브리드의 집을 기억했다. 그와 소방관이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거리가 멀어 늦게 도착을 하였다. 그 집을 물려받은 상속자가 충격으로 바닥에 누워 사라져버린 재산에 대해 머뭇거리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링컨 인근에 와이만이라는 옹기장이가 땅을 개척하여 거주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왔다. 워털루 전쟁 참전 병사 였던 휴즈 콰잉이라는 아일랜드 사람이 숲속에 살다가 와이만이 사는 곳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한 때 그들의 가정이었던 움막과 폐허가 된 집터 가운데 소로우가 홀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한때 신흥 마을이 들어섰던 그곳은, 소로우 시대에는 폐허가 되고 잔디와 라이락이 무성하여, 그것들을 심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 속 인간의 터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인가, 소로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 겨울 소로우는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고 동물들과도 접촉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동료들은 새장 속의 올빼미, 들쥐, 챈닝, 그리고 철학자 아머스 브론슨 앨코트였다. 그의 멘토이며 동시에 보호자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도 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 책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겨울 동물들:

   얼음이 언 호수 위를 걸으며 소로우는 얼어붙은 물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스케이팅을 하기에 넓고 넓다는 걸 알았다. 이때가 되면 숲을 통해 들려오는 올빼미와 기러기 울음소리를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붉은 다람쥐들이 여기저기 뛰놀고, 땅거미가 지면 토끼들은 먹이를 찾아 나온다. 달밤에는 여우들이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다. 그러한 짐승들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소리, 얼음이 깨지는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왔다. 소로우는 문가에 날옥수수 놓아, 다람쥐나 토끼들을 오게 하여 먹게 했다. 또 때로는 앞발로 먹이를 들어 먹는 작은 동물들 모습을 몇 시간씩 지켜보기도 했다. 먹이를 물고 숲으로 가는 모습,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모습도 보았다. 이 버리고 간 먹이를 찾아 어치, 박새, 참새들이 날아들어 먹어치우는 것이다. 사냥감을 찾아 짖는 사냥개 소리가 들려오는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왈든을 지나가는 사냥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겨울 호수:

    아침에 일어나 소로우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날 쓸 물을 긷는 일이다. 겨울철이면 이 일은 매우 힘들었다. 얼음을 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한 무리 어부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그들의 원시적인 물고기 잡이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고는 더욱 놀랐다. 색깔이 또렸한 강꼬치고기로, 이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대구나 또는 북대서양산 대구와는 다른 물고기였기 때문이었다.

    왈든 호수의 깊이를 재고 바닥이 없다는 신화를 깨기 위해 소로우는 낚시 줄과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많은 주민들이 왈든 호수는 바닥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소로우가 재어보니 1백 피트를 조금 넘었다. 그는 사람들이 천국과 영원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어떤 방식으로 믿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소로우는 왈든 호수의 바닥 생김새를 감각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주변의 지세와 같다는 걸 알았다. 호수의 가장 길고 넓은 지점에 가장 깊은 곳이 있었다. 이 사실을 바다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는 인근의 화이트 호수 깊이를 추를 사용하여 재어보았다. 결과는 가설과 같았다. 자신의 이론을 증거로 밑받침하기 위해 그는 형이상학적 차원 즉, 한 인간의 행동과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의(그녀의)영혼의 깊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봄 그리고 결어:

    봄이 오자 왈든 호수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고 물 흐르는 소리는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지혜를 갖춘 어느 노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노인은 -소로우는 그가 만일 메두셀라(Methuselah, 969세를 산 성서 상의 인물)만큼 산다면 그 지혜를 이길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에 대한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얼음 녹는 소리에 두려움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얼음 녹는 소리는 우주가 녹아내리는 소리로 모든 것이 전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전하는 소리이다.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모래도 흐른다. 꽃과 잎이 핀다. 머리 위로는 갈매기들이 날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울음소리를 낸다. 이 같은 새 생명의 계절에 소로우는 이제 낡은 욕심을 버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계절에 영감을 받은 그는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그는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나는 우아한 한 마리 독수리를 찬양했다. 그는 우주의 생명이 뛰는 맥박 소리, 영혼의 대 격동 소리를 듣고 이제 그러한 분위기 속에 죽음을 맞는다면 아무런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의 임무는 완성이 된 것이다. 1847년 9월 6일 그는 왈든 호수를 떠났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분위기를 바꿔보라는 권고를 한다는 걸 소로우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이상으로 넓다”라고 하며 그러한 권고를 무시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영혼의 변화이지 눈에 보이는 것들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왈든 호수를 떠난 이유는 그곳을 찾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합당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삶이 있고 경험해야할 변화가 있는 것이다. 누구든 신념을 가지고 “꿈을 향해” 살려고 하면 갑자기 그 꿈이 실현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삶이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삶의 목표는 “잔지바르 고양이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즉, 아프리카 잔지바르를 여행하며 고양이 수를 세는 걸 비하한 말. 내면의 여행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비유).

    그는 당시 미국인들의 무감각과 저열한 생활태도를 슬퍼했다. 왜 그들이 성공을 위해 그처럼 절망적으로 서두는지 의아했다. 그는 유행 옷을 팔아치우고 올바른 생각을 할 것이며 문명화된 집을 버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걸 촉구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가 최대 행복이라고 했다. 지나친 부는 불필요한 사치품들을 사들일 뿐이라고 했다. 영혼이 필요로 하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인간이란 자신이 있는 곳을 모르고, 삶의 반은 잠을 잔다고 했다. 이 보잘 것 없는 삶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인간 곤충”으로 부르고, 자신 위에 서 있는 “위대한 후원자와 지성”에 대해 숙고케 했다. 그는 그의 말을 읽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이는 중요치 않다고 하며 끝을 맺었다. 새날이 밝아오고 새벽 별인 태양이 새로운 생명을 전하고 있었다.(C)

 

번역: 박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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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David Thoreau(1817-1862):

    미국의 철학자겸 작가. 미국의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과 자연과 소박한 삶을 칭송한 인물. 그를 전통주의 철학으로 인도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 에머슨은 그를 선험철학(transcendentalism)으로 인도하였고, 이 철학은 소로우의 사상과 글에 중심이 됨. 소로우는 1849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Walden"으로 저명 인사가 됨. 일생을 통해 그는 개인의 자립정신과 개성을 강조함. 그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고, 미-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세금 납부를 거부, 투옥되기도 함. 노예제도에 반대하기도 하였음. 투옥 경험으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씀.

    이 책은 미국은 물론 레오 톨스토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미국 시민권 운동에도 힘이 되어줌. 1862년 폐렴으로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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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eethovennote.co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by

  Margaret Mitchell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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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강인한 의지력으로 고난 극복. 토지의 중요성. 전쟁으로 인한 남성 중심의 전통 사회 붕괴.

등장 인물:

스칼렛 Scarlett O’Hara:
        소설의 주인공. 남북 전쟁 전, 조지아의 타라 농장에서 성장한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인. 아버지를 닮아 이기적이고 날카로우나 또한 어머니를 닮아 품위와 예절을 지키는 인물. 전통과 현대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남부를 상징하는 인물.

렛트 Rhett Butler:
        스칼렛의 세 번째 남편. 저돌적이고 위험한 인물. 웨스트 포인트에서 퇴학을 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인물. 전쟁 중 기회주의적인 상술로 거부가 됨.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며 전통적인 관습을 경멸함.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자존심으로 때문에 표현을 제대로 못함. 강자만 살아남는, 전후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

애슐리 Ashley Wilkes:
        타라 인근 트웰브 오크스 농장주의 아들. 핸섬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 소설 전편에 걸쳐 스칼렛이 연모하는 인물로, 그녀와 결혼에 이르지 못한 것을 슬퍼함. 전쟁 전 남부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

멜라니 Melanie Hamilton Wilkes:
        애슐리의 연약하고 선량한 부인. 소설 전편에 걸쳐 스칼렛이 질투하는 인물. 전쟁의 역경을 거치며 스칼렛과의 결속이 강화된다. 스칼렛을 헌신적으로 돕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여인.

제럴드 오하라 Gerald O’Hara:
        스칼렛의 아버지. 아일랜드 이민자. 강인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타라 농장을 세운 인물.

엘렌 Ellen O’Hara:
        스칼렛의 어머니. 남부 귀족 로빌야드 가문의 후손. 교양이 있고 열정적인 여인. 아버지로 인해 사촌 필립과의 사랑에 실패한 후 제럴드와 결혼함.

마미 Mammy:
        스칼렛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 유모. 남부의 예절을 잘 알고 충성스런 노부인. 엘렌이 죽은 후 스칼렛의 샤프론이 되는 인물.

프랭크 Frank Kennedy:
        의지박약한 스칼렛의 두 번째 남편. 스칼렛의 동생 수엘렌의 약혼자였으나 스칼렛이 낚아 챔.

챨스 Charles Hamilton:
        멜라니의 오빠로 스칼렛의 첫 번째 남편.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은 남자. 스칼렛이 애정을 못 느끼는 인물. 전쟁 초기에 죽음.

피티팻Aunt Pittypat Hamilton:
        챨스의 숙모. 스칼렛의 애틀란타 생활에서 함께 하는 여인.

보니 Bonnie Blue Butler
        스칼렛과 레트 사이에 태어난 딸. 레트의 귀엄동이. 엄마를 닮아 의지가 강하고 장난꾸러기.

수엘렌 Suellen O’Hara:
        스칼렛의 여동생. 프랭크의 약혼자였으나, 언니에게 약혼자를 빼앗김.

캐린 Carreen O’Hara:
        스칼렛의 막내 여동생. 선량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 전쟁 후 수녀가 됨.

인디아 India Wilkes:
        애슐리의 냉정하고 질투심 강한 여동생. 어린 시절 자신으로부터 스튜어트 타알톤을 앗아간 스칼렛을 용서하지 않는 여인. 스칼렛과 애슐리의 포옹 장면을 목격한 후 소문을 내어, 애틀란타 스캔들로 만드는 인물.

샘 Big Sam:
        타라 농장의 흑인 노예. 테러범으로부터 스칼렛을 구하는 인물.

포크 Pork:
        제럴드 오하라의 첫 번째 헌신적인 노예.

프리시 Prissy:
        트웰브 오크스 농장의 노예 딜시의 딸. 멍청하고 게으른 노예. 출산 시 아기 받는 일을 몰라 스칼렛으로 하여금 멜라니의 아기를 받게 하는 인물.

에미 Emmie Slattery:
        타라 농장 인근 습지에 사는 하류 계층의 백인.

윌커슨 Jonas Wilkerson;
        타라 농장의 백인 감독. 전후 자유노예국에서 일하며 에미와 결혼. 타라 농장에 대해 지나친 세금을 부과함. 이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스칼렛은 어쩔 수 없이 프랭크와 결혼을 하게 됨.

벨 와틀링 Belle Watling:
        오랜 세월 레트 버틀러와 관계를 맺는 창녀. 살인 사건에 대한 앨리바이를 KKK단에 제공, 그들의 신임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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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1장

        1861년 봄, 조지아주 북부 타라 농장의 저택 정문 현관에서, 열여섯 살의 스칼렛 오하라가 열아홉 살의 쌍둥이 브렌트 형제와 함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소년들은 남부와 북부 사이에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스칼렛은, 그 다음 날 트웰브 오크스 농장에서 있을 무도회로 화제를 돌렸다. 브렌트 형제는 농장집 아들 애슐리 윌크스가 무도회에서 그의 사촌 멜라니 해밀튼과의 약혼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애슐리를 애인으로 만들고 싶었던 스칼렛은 그 말을 듣자 침묵했다. 그녀의 돌연한 침묵에 그들은 당황하여 자리를 떴다.

제2장

        애슐리의 약혼 소식에 낙담한 스칼렛은 트웰브 오크스 농장을 다녀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말을 탄 제럴드 오하라 씨가 빠른 속도로 농장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그처럼 위험하게 말을 몰면 안 된다고 한 어머니 엘렌의 말을 스칼렛은 애교스럽게 아버지에게 상기시켰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애슐리와 멜라니의 결혼 소문은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딸 스칼렛과 애슐리는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고 했다. 애슐리 집안은 음악과 시를 좋아하고 애슐리는 승마와 사냥 같은 남성적인 취미도 있지만, 어쨌든 자신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스칼렛과 제럴드가 현관에 도착하니 엘렌이 뛰어나오며, 에미 슬래터리가 낳은 아기가 죽어가고 있어 급히 가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엘렌과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 온 늙은 유모 마미는 미혼모인 에미를 엘렌이 도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에미네는 오하라 농장 근처에 사는 “쓰레기 같은 백인 가정”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제3장

        어머니 엘렌은 우아하고 교양이 있어, 의지가 강하고 열정적인 자신과는 다르다는 게 스칼렛의 생각이었다. 스칼렛은 아버지 제럴드의 성격을 닮았다. 제럴드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결투에서 한 남자를 죽인 후 미국으로 도망온 사람이었다. 그는 첫 번째 노예 포크를 돈으로 사들였고, 포커 게임으로 농장을 손에 넣은 사람이었다. 교양이 부족했지만 친절함으로 이웃의 신임을 얻었다. 그의 아내 엘렌은 사반나 지역의 로빌야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온화하고 정숙한 그녀는 첫사랑이었던 사촌 필립이 죽은 후 제럴드와 결혼했다. 그녀는 자신과 사반나로부터 필립을 멀리 떠나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족들을 원망했고, 따라서 엉겁결에 그리고 복수심에서 하층민인 제럴드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장녀 스칼렛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어머니와 유모로부터 숙녀 교육을 받았고,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여 이웃으로부터 미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제4장

        제럴드는 트웰브 오크스 농장으로부터 포크의 아내감으로 여자 노예 딜시를 사들였다. 딜시의 딸 프리시는 스칼렛의 몸종이 되었다. 에미 슬래터리네 집에서 돌아온 엘렌은 저녁 예배를 주도했다. 스칼렛은 멜라니로부터 애슐리를 빼앗을 궁리를 했다. 무도회에서 애슐리를 만나면 사랑을 고백하기로 했다. 그가 자신의 진정성을 믿는다면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타라 농장 감독관인 백인 조나스 윌커슨을 해고하겠다는 부모님 말씀을 엿듣고, 윌커슨이 바로 에미 슬래터리가 낳은 죽은 아기의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5장

        무도회가 있던 날 아침 스칼렛은 자신의 가는 허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드레스를 입었다. 배가 고프면 무도회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 숙녀의 체면을 잃을 터이니 뭔가를 좀 미리 먹어두라고 유모 마미가 조언을 했다. 엘렌은 무도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조나스 윌커슨이 타라 목장을 떠날 것이고, 따라서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에서 오하라네 가족은 탈튼 씨네 여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전쟁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칼렛은 아무 말 없이 애슐리의 약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리겠다는 꿈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었다.

제6장

        트웰브 오크스 농장에 저명 가문들이 모였다. 스칼렛은 건방진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가 크고 건장한 한 남자를 보았다. 대담한 그의 모습에 겁이 났다. 그는 바로 남캐롤라이나 귀족 출신으로 평판이 나쁜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보호자가 없는 소녀를 꼬드겨 희롱하고는 마땅히 결혼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를 버린 남자였다. 이에 분개한 소녀의 오빠가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그 결투에서 레트는 그 오빠를 죽여 버렸던 것이다.

        무도회에서 스칼렛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챨스 해밀턴은 멜라니의 오빠로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스칼렛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는 이미 하니 윌키스라는 애인이 있었음에도 스칼렛에게 구혼을 했다. 스칼렛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오로지 애슐리에게만 정신이 팔렸다. 멜라니와 함께 앉아 있는 애슐리에게 챨스 같은 인물은 관심 밖이었다.

        모두들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한 달 이내에 양키들(북군)을 격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레트는 남부엔 대포를 만들 공장도 항구를 지킬 해군도 없다고 했다. 주물공장만 몇 개 있다고 경멸조로 말하면서 양키들이 쉽게 이길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 같은 말에 사람들이 화를 내자 그는 곧 사과했다.

        여인들과 여자애들이 오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가자, 스칼렛은 서재로 가서 애슐리를 기다렸다. 그가 들어오자 스칼렛은 사랑을 고백했다. 그는 멜라니와 결혼을 할 것이며, 스칼렛과는 너무 차이가 나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없고 결국 그녀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민 스칼렛은 그의 따귀를 때렸다. 그가 말없이 문밖으로 나아가자, 그녀는 그릇을 들어 벽에 던졌다.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다. 긴 의자에 누워 이 장면을 멀리서 숨어 지켜보던 레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러한 행동은 숙녀답지 않다고 비아냥거렸다. 분노와 굴욕감으로 스칼렛은 서재를 뛰쳐나갔다.

        이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하니가 하는 말을 엿들었다. 스칼렛이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밥을 굶는다는, 질투심에 찬 말이었다.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는 멜라니는 스칼렛의 편을 들어, 그렇지 않다고 했다. 스칼렛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링컨 대통령이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챨스가 다시 스칼렛에게 구혼을 했다. 애슐리와 하니에게 복수를 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칼렛은 그의 구혼을 받아들였다.

제7장

        혼돈 속에 몇 개월이 지나갔다. 스칼렛과 챨스는 멜라니와 애슐리가 결혼하기 하루 전날 결혼했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가야 했고, 두 달 후 챨스는 홍역으로 죽었다. 스칼렛은 남자 아이를 낳았다. 아기 이름을 챨스가 존경한 그의 사령관 이름을 따 “웨이드 햄프턴 해밀튼”으로 지었다. 스칼렛은 미망인으로서, 아기 엄마로서의 짓눌린 생활이 지루하고 싫었다. 전쟁 때문에 떠들썩해하는 사람들도, 애슐리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싫었다. 그녀는 애틀랜타로 가서 멜라니와 숙모인 피티팻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

제2부

제8장

        1862년 5월 어느 날 아침, 스칼렛은 프리사와 웨이드를 데리고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기차역 중심지인 애틀랜타는 이미 군대가 주둔하고 군병원과 주물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피치트리 거리에 있는 해밀튼의 집에 도착하자 피티팻 숙모와 멜라니가 그녀를 반겨 맞았다. 피티팻의 동생인 헨리 삼촌도 있었다. 헨리는 챨스가 재산을 남겼는데, 이제 그 재산은 스칼렛의 것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에 스칼렛은 힘이 솟았다.

제9장

        군병원이 모금을 위해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 미망인인 스칼렛은 남편의 애도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예법을 어기고 바자회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미망인들과는 달리 바자회 참석을 못하고 다만 뒤치다꺼리만 해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녀와 멜라니는 바자회 부스를 맡게 되었다. 바자회에서 스칼렛은 남부의 영광스러운 대의명분에 관한 연설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애국심을 결여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춤을 추고 싶었다. 이제 유명한 전쟁상인이 된 레트 버틀러가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와 챨스의 결혼을 빈정댔다. 애틀랜타의 저명 인사인 미드 박사가 바구니를 돌렸다. 부인들이 기부하는 귀중품을 받는 바구니였다. 스칼렛은 꼴 보기도 싫은 결혼 반지를 기증했다. 그녀의 행동을 정의롭다고 오해한 멜라니도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바구니에 던졌다.

        미드 박사는 남자들이 숙녀와 춤을 추려면 돈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미망인으로서 스칼렛은 춤추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레트는 그녀와의 춤을 위해 1백5십 달라를 걸었다. 그 장면을 본 스칼렛이 놀랍게도 무도장으로 뛰어나왔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추며 레트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존경한다고 했다. 남부의 대의명분을 하찮게 생각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그 말에 스칼렛은 화를 내는 척했지만  또한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제10장

        다음 날 아침, 애틀랜타는 전날 밤 춤을 춘 스칼렛의 행동으로 떠들썩했다. 피티팻 숙모는 레트가 죽일 놈이라고 했지만, 그가 선물을 보내자 입을 다물었다. 레트는 멜라니가 기증한 결혼 반지도 돈을 주고 되찾아 왔다. 스칼렛의 아버지 제럴드가 와서 레트를 만난 본 후, 스칼렛을 데리고 타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떠나겠다고 했지만 제럴드는 도박으로 돈을 잃고 술에 만취가 된 채 밤늦게 되돌아왔다. 아침이 되어 스칼렛은 애틀랜타에 그대로 머무르고 싶고, 그렇게 해준다면 아버지의 그러한 부끄러운 행동을 비밀에 붙이겠다고 했다. 제럴드는 딸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제11장

        다음 주 스칼렛은 멜라니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녀가 애슐리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었다. 전쟁에 관해 회의가 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이야기에 스칼렛은 관심이 없었고, 다만 멜라니를 사랑한다는 말이 없어 안심했다. 애슐리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다.

제12장

        전쟁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항구가 봉쇄되어 식품과 의류 등 생활필수품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레트는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상인이었다. 그는 양키의 봉쇄선을 뚫고 배를 몰아 면화 등 남부의 물건과 생필품을 교환했다. 그는 사회적 관습을 무시하는 일로 악명이 높았지만 또한 가장 유명한 인사이기도 했다. 그는 스칼렛을 자주 찾았고,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격식이 무너진 걸 좋아했고, 따라서 활동적인 사회생활을 했다. 몇 달간 점잖은 행동을 했지만 레트는 마침내 남부의 이상주의적인 대의명분을 경멸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고, 자신은  대의명분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파티 석상에서 레트는 전쟁이란 자존심이나 정의 또는 영광이 아닌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을 하여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그와 마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멜라니가 레트 편을 들어 애슐리도 편지에서 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스칼렛은 자신의 눈부신 우상 애슐리가 전쟁에 관해 그 같은 악당과 생각이 같다는 걸 알고는 혼란이 일었다.

제13장

        해밀튼네 말고는 모든 사람들이 레트를 악당으로 생각했다. 그는 스칼렛을 계속 방문했고, 프랑스 파리산 멋쟁이 모자도 선물했다. 검은 상복도 벗으라고 했다. 어느 날 멜라니가 스칼렛에게 말하기를, 벨 와틀링이라는 창녀가 병원 헌금으로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했다. 그 돈은 손수건으로 쌌는데, 레트의 이름 첫 자가 쓰여 있더라고 했다. 레트가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스칼렛은, 그 돈을 쌌던 손수건을 불에 집어던졌다.

제14장

        식품부족과 질병, 가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낙관적이었다. 남부는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있었고, 게티스버그 전투를 끝으로 전쟁은 끝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됨에 따라 엄청난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사 앞에는 많은 여자들이 몰려와 전상자 명단을 기다렸다. 스칼렛과 멜라니, 피티팻 숙모는 애슐리가 살아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애틀랜타의 거의 모든 가정이 인명 피해를 입고 있었다. 스튜어트와 브렌트 타얼톤도 전사를 했다.

제15장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부는 패배했다. 크리스마스에 애슐리는 잠시 휴가를 받아 돌아왔다. 스칼렛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또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가 떠나기 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애슐리는 만일 자신이 죽을 경우 멜라니를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스칼렛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두 사람은 열렬한 키스를 했다. 스칼렛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자 그는 그녀를 떼어 놓은 후 괴로운 표정으로 서둘러 기차역을 향해 갔다.

제16장

        1864년 들어 남부는 전투에서 패배했고, 애틀랜타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았다. 레트는 식품을 매점매석하는 모리배로 알려져 애틀랜타 주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었다. 스칼렛은 애슐리가 포로가 되었고 멜라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애슐리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레트는 그가 남부를 배반하면 석방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애슐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스칼렛이 묻자, 레트는 그가 너무 신사라서 그렇다고 했다.

제3부

제17장

        1864년, 사령관 셔먼 장군이 지휘하는 북군이 조지아를 거쳐 애틀랜타에 접근하고 있었다. 레트는 남부가 양키들을 격퇴시킬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하여 미드 박사를 분노케 했다. 애틀랜타의 모든 사람들은 남부를 굳게 믿고 있었다. 전선이 가까워지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전사자와 부상자들을 기차로 실어 날랐다. 스칼렛은 더 이상 병원 일을 견딜 수 없어 몰래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레트를 만났다. 그는 전시의 물자 부족에 어울리지 않게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마차에 태워 피치트리 거리로 데리고 갔다. 가는 도중 한 무리의 노예를 보았고, 그들 가운데 타라 농장의 감독 일을 했던 늙은 빅 샘이 스칼렛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양키들이 오면 신사 숙녀들이 숨을 참호를 파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이며, 그 일을 하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실은 북군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한 남부 군대의 참호라는 걸 스칼렛은 금방 알았다. 마차를 몰던 레트는 스칼렛의 키스가 어색하다고 놀렸고, 이에 대해 스칼렛은 당신은 키스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레트는 그녀가 어린애처럼 너무 애슐리에게 집착한다고 했다. 그 말에 화가 난 스칼렛은 마차에서 내렸다.

제18장

        애틀랜타는 북군의 포위하에 들어갔다. 남자는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전투에 동원되었다. 존 윌키스와 애슐리의 늙은 부친도 민병대에 배속되었다. 오직 제럴드만 무릎이 아파서 면제되었다. 북군은 남군보다 수적으로 우세였고, 애틀랜타는 쏟아져 들어온 남군 부상병들로 넘쳐났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피티팻 숙모도 메이콘으로 가는 피난민 대열에 섰다. 스칼렛은 타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임신한 멜라니를 돌보자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출산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프리시는 많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제19장

        북군이 한 노선을 제외한 모든 철도를 장악했다. 애틀랜타에 포탄 세례가 쏟아졌다. 스칼렛은 정신없이 바빴고, 멜라니는 병이 나 누워 있었다. 헨리 삼촌이 휴가를 나와 윌키스가 전사했다는 말을 했다. 레트는 현관에서 울고 있는 스칼렛을 보았다. 그녀를 좋아하나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부인이 되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스칼렛은 미친 듯 화를 내며 자리를 피했다.

제20장

        포위가 된 지 한 달 후 애틀랜타는 조용해졌다. 양키(북군)가 타라 농장 근처를 지나는 존스보로 철도를 점령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장티브스에 걸렸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스칼렛은 점점 더 공포에 시달렸다. 9월 초하루, 타라는 북군이 점령하고 가족은 아직 무사하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타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멜라니를 돌보겠다는 애슐리와의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멜라니는 스칼렛에게 출산을 하다 죽을 경우 아기를 돌보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이었다.

제21장

        패배한 남부 군대가 애틀랜타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였다. 시는 북군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스칼렛은 야전병원으로 미드 박사를 만나러 가는 도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남군 부상자들의 대열을 목격했다. 미드 박사를 만나고 보니,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포기하고 멜라니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다. 멜라니가 진통을 계속했다. 프리시는 아기 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고, 이 말에 스칼렛은 프리시의 따귀를 때렸다. 그녀는 멜라니를 돕기 위해 서둘렀다.

제22장

        긴 진통 끝에 멜라니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애틀랜타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스칼렛은 프리시를 레트에게 보내, 빨리 와서 타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을 전했다.

제23장

        남부 군의 병사들이 레트의 말과 마차를 압류했다. 그러나 그는 늙은 말과 낡은 마차를 훔쳐 스칼렛 일행을 태우고 타라로 갔다. 후퇴하는 남부의 병사들이 양키의 약탈을 막기 위해 애틀랜타의 창고나 무기 생산 주물공장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들이 불타고 있는 거리를 지나는 동안 스칼렛은 레트의 강인함과 보호 본능에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마침내 그들은 애틀랜타를 벗어날 수가 있었고, 스칼렛은 다시 한 번 타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레트는 타라 근처의 숲에는 이미 양키들이 점령하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놀랍게도 레트는 이제 남군에 합류해야 하므로 그녀와 헤어져야겠다고 했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의 근육질 허벅지가 몸에 와 닿는 걸, 그의 코트 단추가 자신의 가슴을 누르는 걸 느꼈다. 그가 열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챨스로부터도 받아 본 적이 없는 키스였다. 그가 떠나겠다는 말에 스칼렛은 그의 따귀를 때렸다. 그가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스칼렛이 마차로 다가갔다. 무릅이 떨리고 있었다. 왜 그는 지고 있는 대의명분, 지고 있는 전쟁터로 가려고 하는가? 여인과 술, 좋은 음식, 편한 잠자리와 따뜻한 이불을 사랑하는 그가, 남부를 혐오하고 남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조롱하던 그가 왜 전쟁터로 가는가? 이제 그의 반짝이는 구두는 굶주림과 상처, 피로와 비탄으로 휩싸인 도로 위를 울부짖는 늑대처럼 걸어갈 것이고, 그 길 끝에는 죽음이 있을 것이다. 스칼렛은 수그린 말의 목에 몸을 기댄 채 흐느꼈다.

제24장

        다음 날 아침 스칼렛은 밤새도록 마차를 몰고 온 터라 대단히 피곤했다. 멜라니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마차에 그녀를 태운 다음 지친 말을 몰았다. 타라 별장과 어머니의 안전을 빌었다. 지나가는 길 옆 모든 집들이 비어 있거나 불에 탄 채였다. 타라는 불에 타지 않은 채 온전했다. 아버지가 맞아 주었고, 바로 전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여동생들은 모두 장티푸스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희망이 없는 노인이었고, 따라서 스칼렛이 모든 일을 도맡게 되었다. 그동안 타라는 양키의 사령부가 되었고, 농장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최근 딜시가 출산을 했고, 아이를 낳은 몸으로 멜라니의 아이도 돌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유모 마미가 상심을 하고 있었다. 딜시는 양키들이 목화밭에 불을 지르고, 어머니는 “필립”을 부르며 돌아가셨다고 했다. 스칼렛은 고난을 극복하고 재산을 일군 조상님들과 자랑스러운 가족사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다시 용기를 얻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제25장

        아침잠에서 깬 스칼렛은 머리가 아팠다. 전날 밤 단순한 피로 증세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건강이 사실은 노인성 치매라는 걸 알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식품을 구하기 위해 스칼렛은 트웰브 오크스로 갔다. 시든 채소가 조금 있었다. 한때 화려했던 장원이 불에 탄 잔해로 변한 것을 보고 다짐을 새롭게 했다. “다시는 궁핍하지 않게 하겠다” 라고 다짐했다. 전쟁을 잊고 타라 농장의 배고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같은 책임감으로 그녀는 점점 더 강인해져 갔다. 그러한 힘은 타라와의 관계, 토지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제26장

        어느 날 말을 탄 북군 기병이 권총을 빼든 채 타라로 들어와 약탈을 하려고 했다. 스칼렛이 챨스의 권총으로 그를 쏴 죽였다. 그가 말에서 떨어져 딩굴었고, 스칼렛이 눈을 들어 보니 계단 위쪽에서 멜라니가 챨스의 장검을 든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칼렛은 처음으로 그녀에 대해 경외심이 생겼다. 죽은 병사의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있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어쨌든 타라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일이었고, 양키로부터 귀중한 말과 돈을 빼앗은 건 다행한 일이었다.

        인근 폰테인 농장을 찾아가 보니, 그곳 여인들이 생필품을 나누고 싶어 하고 있음을 알았다. 스칼렛이 어려움을 말하자 폰테인 부인이 말하기를, 춥고 힘든 날을 위해 물자를 아껴야 한다고 했다. 폰테인 부인은 언젠가 그녀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 목화 따는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하층 백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타라로 돌아온 스칼렛은 “노예의 일”로 생각해 온 목화 따는 일을 시작했다. 오직 딜시만이 그녀의 일을 도왔다. 반면에 유모와 포크는, 자신들은 집안일꾼이므로 그 같은 바깥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멜라니는 아직 몸이 약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양식도 마련하고 돈과 말도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스칼렛은 생각했다.

제27장

        11월 중순이 되어 북군이 타라를 향해 오고 있었다. 식량과 집을 약탈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스칼렛은 가족과 함께 식량과 말을 늪지로 보내 숨겼다. 스칼렛은 멜라니와 함께 남았다. 곧 북군이 들이닥쳤고, 스칼렛은 정문에서 그들과 마주쳤다. 병사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약탈과 파괴가 시작되었다. 웨이드가 물려받은 할아버지의 군도를 어느 병사가 가져가려 하자 스칼렛이 막아섰다. 북군 상사에게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 성난 병사들이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지른 다음 밖으로 퇴각했다. 스칼렛과 멜라니는 온 힘을 다하여 불을 껐다. 스칼렛은 다시 한 번 멜라니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제28장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자 프랭크 케네디라는 남자와 몇 명의 남군 병사가 찾아와 식량을 도와달라고 했다. 프랭크에 따르면 셔먼 장군이 애틀랜타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고 했다. 이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도 했다. 프랭크는 후일 스칼렛의 여동생 수엘렌의 약혼자가 된다,

제29장

        이듬해 4월이 되어 전쟁이 끝났다. 스칼렛은 용기를 되찾고 목화를 심을 계획을 하였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이다. 도로의 안전은 물론 이웃 간의 상부상조도 회복되었다.

제30장

        귀향하는 남군 병사들의 행렬이 타라를 지나가고, 스칼렛은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헌신적으로 봉사 활동을 했다. 조지아 농부 출신의 윌 벤틴이라는 상이군인이 목발을 한 채 타라에 머물며 스칼렛을 도왔다. 타라로서는 뜻밖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고, 유능한 일꾼이었다. 윌은 스칼렛의 여동생 캐린을 연모하게 되었다. 캐린은 성경과 브렌트 타알톤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윌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피티팻 숙모의 노예인 피터가 애슐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는 살아 있으며 일리노이로부터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근심걱정으로 보낸 몇 주일이 지난 다음 마침내 애슐리가 도착했다. 그를 맞기 위해 멜라니가 뛰어 나아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스칼렛이 뛰어나가자 윌이 그녀를 막았다. 애슐리는 멜라니의 남편임을 잊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제4부

제31장

        존스보로를 다녀온 윌이 감당하기 힘든 소식을 가져왔다. 스칼라왜그(Scalawags: 남북전쟁 후 미국 재건을 위한 연방정부의 계획을 지원한 남부 백인)와 카펫배거(Carpetbaggers: 남북전쟁 후 미국 재건 시 남부에 정착한 북부 사람들)가 타라 농장에 세금을 중과하겠다는 소식이었다. 스칼렛은 세금을 낼 만한 충분한 돈이 없었다. 그녀는 조언을 듣기 위해 애슐리를 찾았다. 그는 조언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책감 때문에 현실과 싸워 나가기가 힘겹다고 했다. 전쟁 전의 남부가 그립다고 했다. 스칼렛은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함께 도망을 가자고 했다. 둘은 열렬한 키스를 했다. 애슐리도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멜라니를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스칼렛에 대한 사랑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칼렛의 손에 타라의 붉은 흙을 한 줌 쥐어주며 애슐리는 자신보다는 스칼렛이 타라를 더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칼렛은 타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생각했다. 발길을 돌리며 다시는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2장

        타라에서 해고된 조나스 윌커슨은 이제 해방노예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부인 에미 슬래터리를 위해 타라 농장을 사고 싶다고 했다. 스칼렛은 그가 바로 타라의 세금을 올린 장본인이라는 걸 알았다. 도움은커녕 그는 깔보는 듯한 어조로 그녀에게 이제 힘도 권위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가 멋진 마차를 타고 떠나자 스칼렛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낙담한 그녀는 애틀랜타로 가서 레트 버틀러와 결혼하기로 작정했다. 그와의 결혼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남부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많은 돈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 헤진 옷을 입은 가난한 모습으로 그의 마음을 끌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새 옷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가 남긴 초록색 벨벳 커튼으로 새 옷을 짓기로 했다. 만일 그가 자신과의 정식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타라를 구하기 위해 그의 첩이라도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모 마미가 옷을 만들기로 했다.

제33장

        스칼렛과 마미가 애틀랜타에 도착해 보니 전 도시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무너져 있었다. 거리는 푸른 제복의 양키 병사들과 해방된 노예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피티팻 숙모의 집에 도착하여 과거 애틀랜타의 저명 가문들이 모두 몰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레트 버틀러는 백인 여성을 모욕한 어떤 해방 노예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새로 형성된 KKK 단이 타라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피티팻 숙모의 말에 스칼렛은 크게 놀랐다.

제34장

        다음 날 아침 스칼렛은 감옥으로 가서 레트를 면회했다. 잘 지내는 척하며 유혹의 말을 건넸다. 그는 심한 일로 굳은살이 박힌 그녀의 손을 보았고, 면회를 온 그녀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했다. 그는 부인이 되어 주겠다는 그녀의 턱없는 제안을 거절했다. 또 만일 그녀에게 필요한 돈을 준다고 해도 양키들이 그 수표를 추적하여 결국은 자신의 전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자신은 교수형을 당할 것이니 그 자리에나 와 달라는 조롱의 말을 했다. 그녀는 고통과 수치심 속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제35장

        낙담 속에 형무소를 나온 스칼렛은 새 마차를 타고 오는 프랭크 케네디를 만났다. 그는 최근 새 점포를 갖게 되었으며, 이제 애틀랜타에는 재건축이 일어날 것이고 이는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곧 제재소를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비록 그가 동생 수엘렌의 약혼자였지만 부과된 세금을 내려면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수엘렌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남부의 좋은 가정 출신 남자들과는 달리 스칼렛은 자존심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제36장

        그로부터 2주일 후 스칼렛은 프랭크와 결혼했고, 프랭크는 그녀에게 돈을 주어 타라를 구할 수 있게 했다. 스칼렛은 수엘렌의 슬픔이나 이웃의 험담에 코웃음쳤다. 프랭크가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그를 도왔으며, 사소한 일 따위는 잊음으로써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곧 프랭크가 병이 들었고, 스칼렛은 그의 재산을 떠맡게 되었다. 어느 날 그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보았다. 프랭크의 사업 경영이 엉망이었고, 친구에게 빌려준 엄청난 돈을 못 받아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스칼렛은 자신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제재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옥을 나온 레트는 어느 날 스칼렛을 찾아가 그녀의 사업과 결혼을 축하했다. 연방정부 고위관리에게 뇌물을 써 풀려났다고 했다. 아직도 애슐리를 사랑하느냐고 놀리는 말과 함께 제재소를 매입하는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다만 그 돈을 애슐리를 돕는 데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스칼렛은 곧 빈틈없는 사업가가 되었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제재소를 운영했다.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다. 애틀랜타 유일의 여성기업인이 되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녀의 수완에 놀라고 당황한 프랭크는 아기가 태어나도 그녀의 사업 수완을 따르지 않았으면 했다.

제37장

        폰테인 농장의 아들 토니 폰테인이 어느 날 밤 겁에 질린 모습으로 스칼렛을 찾아왔다. 그는 조나스 윌커슨과 흑인 남자 한 명을 죽였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윌커슨이 자유 노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백인 여자를 강간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노예들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처제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인 것이라고 했다. 토니와 함께 복수에 나섰던 애슐리가 스칼렛 부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토니는 곧 되되돌아갔다

        스칼렛은 남부가 이제 위험한 곳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강력한 양키 정부와 자유노예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오직 돈을 지키는 일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새로 생겨난 KKK단이 폭력적인 자유노예들로부터 백인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북부의 신정부가 KKK단을 분쇄하기 시작하자 프랭크가 그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걸 기뻐했다.

제38장

        스칼렛은 출산 기간 중 제제소를 관리해 줄 정직한 사람이 필요했다. 비록 양키를 싫어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들과 사업을 시작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흑인들 면전에서 그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 양키 여인들에게 분노하기도 했다. 스칼렛은 레트를 자주 찾았고, 그럴 때마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브랜디를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스칼렛은 타라로 향했다.

제39장

        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스칼렛은 타라로 돌아왔다. 상이용사로 타라 농장의 일꾼인 윌 벤틴이 말하기를, 수엘렌이 돈이 급해 아버지를 속여 그로 하여금 북부에 충성 서약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취중에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부에 충성맹세를 하면 전쟁 중 잃은 재산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취중이었지만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를 알고 그 서약서를 찢어 버렸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말을 타고 도주했는데, 담장에 걸린 말이 쓰러져 그 충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윌은 수엘렌과 결혼을 하여 타라에 계속 머무르겠다고 해 스칼렛을 놀라게 했다.

제40장

        타라에 오면 언제나 스칼렛은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애슐리가 주도했다. 누구든 수엘렌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했다. 윌이 수엘렌과의 약혼을 발표했고, 그 약혼에 대해 아무런 뒷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폰테인 부인이 말하기를 성공의 열쇠는 불운을 딛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며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스칼렛은 혼란이 일었다.

제41장

        장례식이 끝난 후 스칼렛은 충성스런 하인 포터에게 보답하는 뜻으로 아버지의 금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애슐리가 멜리니와 함께 뉴욕으로 갈 계획임을 알자 스칼렛은 그에게 많은 임금은 못 주겠지만, 제재소에서 일을 하며 애틀랜타에 머머무르라고 했다 애슐리는 그녀의 연민을 받아 살아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또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 말에 스칼렛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나타난 멜라니가스칼렛의 친절을 받아들여 적대적인 북부보다는 애틀랜타에서 아들 보를 기르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애슐리는 스칼렛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엘렌과 윌이 결혼식을 올렸다. 스칼렛의 막내 동생 캐린은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애슐리 가족은 애틀랜타에 있는 피티팻 숙모의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집으로 옮겼다. 멜라니는 낙관적이고 관대했으며 남부의 고유 가치를 존중했으므로, 그녀의 집은 자존심 강한 남부 가정들이 모이는 사교 장소가 되었다. 애슐리는 자유노예들을 부려 이익을 내는 일에 무능했고, 따라서 스칼렛은 제재소에 죄수들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제42장

        스칼렛은 못생긴 딸을 낳았는데, 아기 이름을 엘랴 로레나로 지었다. 제재소 일을 다시 하고 싶었지만 프랭크는 반대를 했다. 애틀랜타는 위험한 곳으로 바뀌고 있었고 ,따라서 프랭크는 스칼렛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양키들은 KKK단을 뿌리 뽑으려고 했고, 이곳저곳에서 자유노예들의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애꾸눈에 외다리인 산골 출신 아치가 스칼렛의 신변 경호원이 되었다. 거칠고 위협적인 그는 곧 애틀랜타의 명물이 되었고 여인들의 한탄을 자아내게 했다. 스칼렛이 제재소에 죄수들을 고용하겠다고 하자 그는 스칼렛의 경호원으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간통한 아내를 죽인 죄로 40년을 복역한 자로, 죄수들을 사용하는 건 노예를 부리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스칼렛은 조지아 의회가 흑인의 시민권을 인정한 수정헌법 비준을 거부했음을 알았다. 비준 거부에 대해 많은 남부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했지만, 그 일로 인해 양키들은 애틀랜타에 더 무거운 압력을 가하리라는 걸 스칼렛은 알았다. 그녀는 열 명의 죄수를 제재소 일에 투입했고, 그들을 감독하기 위해 아일랜드 출신의 양키 조니 갤러허를 고용했다. 그녀의 단호함에 애틀란타 사람들이 놀랐고, 예상대로 아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갤러허는 일꾼들을 잘 부려 놀랄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애슐리의 임금보다 더 높아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43장

        어느 날 레트가 찾아와 애슐리를 돕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제재소 매입할 돈을 빌려 주었음을 잊지 말라고 했다. 이제 그에게 임금이 지불되고 있으니 약속을 어기는 거라고 했다. 이에 대해 스칼렛은 타라를 구하기 위해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레트가 웃으며 프랭크에게 더 많은 밤을 집에서 보내게끔 하라고 했다. 프랭크가 바람을 핀다는 걸 암시하는 말투였다. 그가 웃으며 자리를 뜨자 스칼렛은 혼란이 일고 분노가 치밀었다.

제44장

        3월이 되어 조지아 주는 흑인에 대한 투표권 부여를 거부함에 따라 심각한 군사 통치하에 들어갔다. 자유노예 남부 백인, 양키 군인, KKK 단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어느 날 스칼렛은 흑인 거주 지역인 샨티타운을 지나가다가 양키를 살해한 혐의로 현상수배된 빅 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타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돕기로 하고 그날 밤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녀가 말을 타고 제재소로 가 보니 감독 갤러허가 죄수들을 굶기면서 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이에 스칼렛이 크게 분노하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면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죄수들을 다루기 힘든 사정을 설명했다. 스칼렛에게는 진퇴유곡이었다. 그가 지금 그만둔다면 그녀 자신이 밤을 지새워 죄수들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그가 돈을 벌벌어 준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의 처지를 눈치챈 갤러허가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그녀는 이를 수락했다. 햄을 먹고 있는 가엾은 죄수 노동자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다.

        샨티 타운을 지나 돌아오던 길에 스칼렛은 어떤 가난한 백인과 그의 동료인 흑인의 공격을 받았다. 그 때 빅 샘이 나타나 그들을 물리친 다음 스칼렛의 마차로 뛰어올라 말고삐를 잡았다. 고마운 마음에 스칼렛은 울음을 터뜨렸다.

제45장

        그날 밤 프랭크는 스칼렛을 멜라니에게 보낸 다음 애슐리와 함께 정치적인 모임에 참석한다고 했다. 멜라니의 집에는 몇 명의 여인과 아치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레트가 나타나 애슐리와 프랭크가 어디로 갔는지 멜라니에게 물었고 ,이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했다. 그들은 설리반 농장으로 갔다고 멜라니가 대답했고 이 말을 들은 레트는 곧 자리를 떴다. 멜라니는 스칼렛에게 말하기를, 프랭크와 애슐리는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KKK 단원이 되었고, 스칼렛을 공격한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을 찾아갔다고 했다.

        양키 수색대가 들이닥쳐 남자들의 소재지를 물었다. 마침내 레트와 애슐리 그리고 휴즈 엘싱이라는 남자가 술에 취한 채 그들의 앞에 섰다. 레트는 그동안 다른 친구들과 함께 벨 와틀링의 매춘업소에서 보냈다고 했다. 수색대 대장은 마침 레트의 친구로 의심하면서도 곧 물러갔다. 레트는 아치에게 KKK 단원 복장을 불태우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스칼렛 테러범 시체를 처리하라고 했다. 애슐리는 취하지는 않았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스칼렛은 정치적인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한 그들의 말이 모두 꾸며낸 것임을 알았다. 애슐리에 대한 걱정으로 그녀는 남편 프랭크가 옆에 없는지도 몰랐다. 결국 프랭크는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다고 레트가 말했다.

제46장

        다음 날 양키 법정으로부터 벨과 애슐리 그리고 레트에게 두 사람의 피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알리바이에 관한 벨의 증언으로 그들은 곧 혐의를 벗었다. 멜라니가 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멜라니처럼 교양 있는 부인이 자신과 같은 창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을 본 벨은 어쩔 줄을 몰랐다. 한편, 애틀랜타의 백인 여자들은 사건의 책임을 스칼렛에게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제47장

        스칼렛은 침실에 홀로 앉아 브랜디를 마시며 죄의식에 빠져 있었다. 프랭크를 꼬드겨 결혼을 했고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의식이다. 레트가 찾아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놀란 그녀가 거절을 하며 자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미로 결혼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레트가 말했다. 그가 그녀를 안고 키스를 했다. 비몽사몽간에 스칼렛은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레트가 말하기를 장기간 여행을 해야 하므로 여행에서 돌아오는 즉시 결혼을 하자고 했다. 이 결혼 소식은 애틀랜타 사람들에게 추문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스칼렛은 개의치 않고 레트와 결혼했다. 그들은 뉴올리언스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제48장

        스칼렛과 레트는 뉴올리언스에서 화려한 신혼여행을 보냈다. 그곳을 떠나기 전날 밤 스칼렛은 악몽을 꾸었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찾아 타라 근처에 내린 안개 속을 내달리는 꿈이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레트가 그녀를 안심시키며, 별일 없을 거라고 했다.

        그녀가 원하는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많은 돈을 주겠지만, 사업을 위해서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애슐리 윌키스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제49장

        KKK단의 공격으로 남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스칼렛에게 화가 난 애틀랜타의 여인들이 그녀와 레트가 사회 활동을 못 하도록 하기로 했다. 멜라니가 적극 나서 스칼렛을 변호하고 공동체가 그녀를 배척하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스칼렛은 애틀랜타의 아름다운 저택 건설을 감독했고 부유하고 부패한 공화파 인사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녀는 부자가 되는 것을 사랑했고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남부의 사교 클럽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레트는 그녀의 새로운 사교계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사회 활동 비용을 도맡았다. 레트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애틀랜타의 옛 사회와의 단절을 후회할 것이라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스칼렛은 민주당 집권 가능성을 무시했다.

제50장

        비록 레트가 가끔 그녀를 조롱하고 무관심하게 대했지만, 스칼렛은 그와의 생활을 그런대로 즐거워했다. 어느 날 오후 스칼렛은 놀랍게도 자신이 임신을 한 걸 알았다. 그녀는 낙태를 원했지만 레트는 펄펄 뛰었다. 어느 부인이 낙태를 하다가 죽었고, 스칼렛을 절대로 그런 위험에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스칼렛은 딸을 낳았고 사람들은 딸을 얻은 레트의 뻔뻔한 사랑놀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기 이름은 유지니 빅토리아로 지었다. 그러나 멜라니는 아기의 눈동자 색깔이 남부의 깃발 색과 같은 푸른 색깔이었으므로 아기의 별명을 ' 보니 블루 버틀러'라고 지었다.

제51장

        스칼렛은 재제소로 가서 애슐리와 함께 회계장부를 보았다. 애슐리는 레트를 질투한다는 말을 했다. 애슐리의 그 말은 아직도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뜻이었으므로 전율을 느낀 스칼렛은 레트에게 침실을 따로 쓰자고 했다. 이는 레트와의 부부관계가 끝나는 걸 뜻했다. 이 말에 레트는 다른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겠다고 무관심한 듯 대답했다. 그가 떠난 다음, 스칼렛은 잠들기 전 레트와 나눈 대화라든가 악몽을 꾼 후 그의 품에 안겼던 일 등 그와 함께 했던 침대를 보며 흐느꼈다.

제52장

        레트는 자신과 스칼렛이 사교계로부터 배척을 당했으므로 애틀란타에서 보니를 기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남부의 여성들로부터 호의를 회복하기 위한 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공화당과의 관계도 단절하고 민주당이 권력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렇게 해서 자신과 보니의 명예를 서서히 되찾아 갔다. 그러나 스칼렛과 그녀의 친 공화당 행적은 여전히 애애틀랜타 여인들의 경멸 대상이었다. 보니가 두 살이 되어 어둠공포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레트는 보니의 침실에 매일 밤 등을 켜 놓도록 했다.

 제53장

        멜라니는 애슐리의 생일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칼렛은 제재소로 가 애슐리를 만났다. 둘은 전쟁 전 함께했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스칼렛이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애슐리가 지금 불행한 것은 과거의 신사다운 삶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희미해져 이제 우정과 동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한 생각으로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자 애슈리가 포옹을 하며 위로했다. 애슐리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낀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아치와 애슐리의 여동생인 인디아가 그들의 포옹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치가 레트에게 그들의 포옹 장면을 일러바쳤다. 스칼렛은 곧 소문이 퍼질 것으로 알고 애슐리의 생일 파티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는 그녀를 레트가 꾸짖으며 지체 없이 파티에 가라고 했다. 그 일에 대해 스칼렛은 누구도 아닌 멜라니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그녀가 파티장에 들어서자 모두들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그들 속에서 멜라니가 나오며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손님을 영접하자고 했다.

제54장

        그날 밤 스칼렛은 자신에 대한 멜라니의 헌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브랜디를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그곳에 레트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스칼렛을 사랑하며, 만일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애슐리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가 돌발적으로 스칼렛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옷을 벗긴 다음 불같은 키스를 퍼부었다. 열정의 밤이 지난 다음, 스칼렛의 레트에 대한 사랑은 다시 새로워졌다. 그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가 집을 떠나 며칠간 돌아오지를 않았다. 다시 돌아온 그는, 창녀 벨의 집에 다녀왔다고 태연히 말을 했다. 다시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레트는 보니와 장거리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제55장

        멜라니는 변함없이 스칼렛의 편에 서서 도왔다. 애틀랜타의 모든 저명 가문들은 두 패로 갈려 반목하고 있었다. 애슐리와 인디아와의 관계, 멜라니와 피티팻 숙모의 관계도 끝나가고 있었다. 피티팻 숙모의 집에는 인디아가 살고 있었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함께 이제 멜라니의 보호막 뒤로 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56장

        레트는 3개월간 멀리 가 있었고, 스칼렛은 그를 그리워했다. 그가 떠나기 전날 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임신은 그녀를 기쁘게 했다. 그가 돌아왔고 임신 사실을 알렸다. 힘을 내라는 말과 함께 아마 유산을 할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화가 치민 그녀가 주먹을 휘둘렀다. 레트가 뒤로 물러서며 스칼렛이 긴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이 사고로 그녀는 유산을 하고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이다. 멜라니가 옆에서 지켜 주었다. 레트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며 멜라니에게 스칼렛을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제57장

        한 달 후 스칼렛은 건강 회복을 위해 타라로 갔다. 애슐리가 스칼렛으로부터 제재소를 사주었으면 하는 말을 레트가 멜라니에게 했다. 그 매입자금을 아무도 몰래 애슐리에게 빌려줄 터이니 애슐리가 그렇게 하도록 독려하라고 했다. 애슐리가 제재소를 소유하게 되면 보를 하버드에 보낼 수 있는 경제력도 생기고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걱정도 줄어들 것이므로, 멜라니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애슐리는 제재소를 샀고, 이를 축하해 그들은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애슐리가 조니 갤러허를 해고하고 죄수들을 모두 내쫓으려고 하자 스칼렛이 반대를 했다. 애슐리는 불법적으로 번 돈으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에 스칼렛이 항의를 했지만, 레트는 지금까지 그녀가 번 돈으로 행복했었느냐고 빈정대듯 반문했다. 이에 그녀는 아무 말 못했다.

제58장

        레트는 보니를 돌보는 일과 민주당에 모든 시간을 다 바쳤다. 그는 애슐리와 함께 조지아 KKK단이 반생산적인 단체임을 그 회원들에게 설득시킨 다음 해체했다.

        1871년 10월이 되어 레트나 애슐리 같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민주당은 의회의 다수당이 되었고 그 결과 성공리에 개혁을 완수할 수가 있었다.

제59장

        보니는 점점 장난꾸러기가 되어 갔지만, 레트는 딸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말을 타고 싶어 하니 레트는 조그만 조랑말을 사들여 보니에게 장애물 극복 훈련을 시켰다. 어느 날 보니는 높은 장대를 넘겠다고 했고, 레트는 위험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과는 달리 그렇게 하라고 했다. 보니의 눈빛이 스칼렛의 아버지 제럴드 씨의 눈처럼 빛이 났다. 보니가 “내 모습을 보라”고 외쳤고, 그 말은 죽기 전 아버지의 외침과 같다는 생각에 스칼렛은 소리를 쳐 중단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 뛰어오른 말이 장대를 넘지 못했고 그 순간 보니가 말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보니가 죽은 것이다. 보니가 어두움을 싫어했으므로, 어두운 지하에 딸을 묻어야 하는 장례식을 거부한 채 레트는 방에 틀어박혔다. 스칼렛은 보니의 죽음에 레트를 탓했지만, 그는 보니를 돌본 적이 있었느냐고 그녀에게 반문했다. 멜라니가 레트를 설득하여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고, 그녀는 보니의 시신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제60장

        보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몇 주가 지나, 스칼렛은 외롭고 쓸쓸하여 레트의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술을 마셨고 적대적이었고 슬퍼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벨 와틀링 매춘업소에서 보냈다. 스칼렛은 보니의 죽음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옛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멜라니나 애슐리 그리고 피티팻 숙모 말고는 모두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제61장

        스칼렛이 조지아의 마리에타를 방문 중에 레트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멜라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스칼렛은 병상의 멜라니를 보았다.

        몸이 허약한 멜라니는 더 이상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되었지만, 임신을 했고 유산을 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멜라니로부터 격려와 보호를 받았으며, 반면 자신은 그녀를 얼마나 잘못 대했던가? 스칼렛은 상실감으로 절망했다. 스칼렛은 멜라니에게 애슐리와 보를 잘 돌보겠다는 말을 했다. 그녀가 애슐리를 만나 위로의 말을 했다. 그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자 스칼렛은 자신이 지금까지 사랑해 온 사람은 자기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만들어낸 어떤 환영임에 틀림없다는 걸 알았다.

제62장

        스칼렛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멜라니도 잃고 꿈에서나 있을 법한 애슐리에 대한 사랑도 잃었다는 생각에 갈피를 못 잡았다. 짙게 내린 안개 속을 걸으며 그녀는 적막한 사위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것을 찾아 안개 속을 내달았던, 언제가 꾸었던 악몽과 같다는 것을 알고는 공포에 떨었다.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곧 레트를 향해 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은 그를 사랑하고 그 역시 한 결 같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그를 향해 뛰었다.

 

제63장

        스칼렛이 그녀의 감정을 레트에게 고백했을 때 그는 피곤한 듯 말하기를, 이제 그녀에 대한 사랑도 식었고 떠나야겠다고 했다. 그녀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레트는 그곳을 떠나 남북전쟁에서 그와 남부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하고 위엄 있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그가 떠나면 스칼렛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대여, 내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라고 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떠나갔다. 슬픔과 충격 속에 스칼렛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타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그녀를 위로해 줄 유모 마미가 있는 것이다.

        “위험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패배라는 걸 모르는” 옛 남부의 용기 있는 사람들처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굴을 들었다. 레트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에 둔 남자치고 그녀의 손에 들어오지 않은 남자란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일 타라에 도착해 다시 생각해보겠다. 나는 할 수 있어. 그가 돌아 올 수 있는 길, 내일이면 생각날 거야. 무엇보다, 내일이 또 있어.” (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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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미첼(Margaret M. Mitchell, 1900-194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녀가 남긴 유일한 소설임. 이 소설로 1937년 Pulitzer상을 받음. 그러나 최근 그녀가 소녀 시절 쓴 중편 "Lost Laysen" 과 습작품들이 발견되어 출판되었음. 기타, The Atlanta Journal 지에 투고한 글 모음집도 출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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